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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돌아왔다. 작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한 김연수가 이번에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눈을 돌렸다. 간도지방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모티프로 한 <밤은 노래한다>로 역사의 한 장면을 소설에 담은 것이다.

 

그 시절의 간도 지방은 상당히 애매한 위치였다. 중국과 일본이 그것을 점령하려 애쓰는 사이 상당수의 조선인들도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의 땅인지를 쉽게 판가름할 수 없는 곳이었다.

 

<밤은 노래한다>의 주인공 '김해연'은 그곳에서 만철 용정 지사의 측량기사로 일하고 있다. 조선인으로는 상당히 출세한 셈이다.

 

김해연은 그곳에서 여학교 음악 선생인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해연의 인생은 남부러울 만큼은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웠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대립을 곤두세우고 있든 말든 크게 신경 쓸 바 아니었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독립운동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사랑에 빠진 음악 선생의 죽음

 

하지만 이정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에 김해연의 인생은 달라진다. 이정희가 조선공산당 혁명 전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간도지방에 '‘민생단'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운명은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진행되어가고 마는 것이다. 조국, 이념, 독립 등의 단어들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린다.

 

김해연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밤은 노래한다>는 슬픈 소설이다. 작은 것으로 본다면 김해연이라는 남자가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것이 그렇겠지만 크게 본다면 조선인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핵심은 '민생단' 사건이다. 이 사건은 무엇인가? 중국인들은 간도에 온 조선인이 일제의 앞잡이라고 생각했다. 설득력이 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민족 정서가 짙어진 그때에 조선인이 온 뒤에 일본인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증오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조선인은 민족주의 관점이 아니라 계급투쟁으로 살 길을 모색했다. 계급투쟁은 나라의 개념이 없었다. 중국인이든, 조선인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계급에 의해 동지가 되는 것이니 일을 하기가 좀 더 수월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족주의 관점으로 살 길을 모색하려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꿈꿨다. 또는 간도에서 조선인들만의 자치단체를 만들려고도 했다. 이렇듯 간도는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핵심은 민생단 사건

 

이런 때에 조선인 안에서 일제에 협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조선인들은 서로 의심한다. 그 의심이 지나쳐 처지가 다른 사람을 제거하는 모든 수단이 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민생단이라 그렇다 하여 처형하고, 열심히 일하면 민생단인데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 그렇다 하여 처형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에 의해, 어제의 동지에 의해, 죽어가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연수는 그 모습을 <밤은 노래한다>에서 객관자적인 위치에서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주인공이나 권력자의 위치가 아닌, 누군가의 역사적 사명, 어느 세력의 대의에 의해 사라져가는 '개인'에 초점을 맞춰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에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 시대 그곳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더 아프고,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민생단' 사건을 모티프로 한 <밤은 노래한다>, 평범한 것에서 이념과 조국, 생과 사를 끄집어내는 힘이 녹록하지 않다. 비극을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노래하는 그 솜씨는 어떤가. 김연수 소설이 그렇듯 짙은 여운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문학과지성사(2008)


태그:#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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