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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영남의 젖줄, 1300리 낙동강 발원지 황지
▲ 황지 영남의 젖줄, 1300리 낙동강 발원지 황지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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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돌이 되어도 좋다
거기 내 사랑 흙탕물에 휩쓸린다면
열 번 백 번 천 번 만 번 뒤돌아보며
손 길게 내밀어 꼬옥 잡으리라
십 년 백 년 천 년이 흐르고 만 년이 흘러
내가 이리저리 부서지고 문드러져
모래가 되고 먼지가 되면
비 내릴 땐 빗물 타고 바람 불 땐 허공 타고 가리라
가서 이무기 된 내 사랑 비늘이 되어
이른 새벽마다 아침이슬에 쌍무지개 띄우리라
십 년 백 년 천 년이 또 흐르고 만 년이 또 흐르고 흘러
내 사랑 기억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도 
영원히 샘솟는 물이 되어 흐르리라
1300리 산모롱이 들녘 곳곳에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허공이 되어
내 사랑 삼라만상으로 뿌리 내리게 하리라

이소리, '황지-사랑' 모두       

가을빛 예쁘게 물드는 그 연못에 서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옛 사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연못을 동그랗게 거머쥐고 있는 연초록빛 물속에 쌍꺼풀 예쁘게 진 그 가시나의 까아만 눈동자가 깜빡거린다. 단풍빛 언뜻언뜻 내비치는 숲 속 공원에 서서 아이 업은 채 연못을 돌아보고 있는 그 돌 며느리상 앞에 서면 가슴이 찡해진다.  

영남의 젖줄, 1300리 낙동강 발원지 황지(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깊어가는 가을날 황지 앞에 서서 연초록빛 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갑자기 시가 떠오른다. 시아버지(황부자)와 며느리에 얽힌 그런 시가 아니라 아련한 기억 속에 묻혀 있는 첫 사랑이 담긴 시가 황지에 떠도는 낙엽처럼 맴돈다.

첫사랑 그 가시나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가시나도 길라잡이처럼 가을빛이 물씬 묻어나는 어느 연못 앞에 서서 그때 그 아픈 사랑을 떠올리고 있을까.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낙동강 1300리만큼이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그 가시나. 어느새 황지 물속에 비친 길라잡이의 눈동자가 그 가시나 눈동자로 깜빡거린다.

황지 황지는 처음 '하늘 못'이라는 뜻으로 천황(天潢)이라 불렀다
▲ 황지 황지는 처음 '하늘 못'이라는 뜻으로 천황(天潢)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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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황지는 상지와 중지, 하지로 나뉘어져 있다
▲ 황지 황지는 상지와 중지, 하지로 나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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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못'이라는 뜻으로 천황이라 불렸던 황지

9월20일(토) 낮 12시. 흘러드는 물길 하나 없는 데도 하루에 5천여 톤이나 되는 물이 퐁퐁퐁 솟아난다는 황지 앞에 선다. 연초록빛 물 위에 낙엽 서너 개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처럼 쓸쓸하게 떠돌고 있다. 저만치 황지공원 숲 속에는 아이를 업은 채 황지를 뒤돌아보는 돌 며느리상이 우뚝 서 있다.

한반도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는 낙동강. 낙동강은 여기 황지에서 샘솟아 태백 시내를 가로질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곳곳에 수많은 평야와 호수를 낳으며 부산광역시 을숙도를 휘돌아 바다와 한 몸이 된다. 놀라운 일이다. 이 자그마한 연못에서 솟아나는 물이 한반도 남동쪽을 한껏 살찌우고 있다니.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황지는 처음 '하늘 못'이라는 뜻으로 천황(天潢)이라 불렀고,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서도 낙동강의 근원지라 밝혀 놓고 있다. 태백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는 황지는 상지와 중지, 하지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셋 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다고 한다.

태백시 안내자료에 따르면 둘레가 약 100m정도 되는 이 연못은 태백을 둘러싸고 있는 태백산과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 산줄기를 타고 땅 속 깊숙이 스며들었던 물이 솟아올라 이룬 것이다. 신비스럽다. 하긴, 대자연의 조화를 어찌 사람의 짧은 잣대로 가늠할 수 있으랴.   

황지 둘레가 약 100m정도 되는 이 연못의 물은 태백을 둘러싸고 있는 태백산과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 산줄기를 타고 땅 속 깊숙이 스며들었던 물이 이곳에 솟아올라 연못을 이룬 것이다
▲ 황지 둘레가 약 100m정도 되는 이 연못의 물은 태백을 둘러싸고 있는 태백산과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 산줄기를 타고 땅 속 깊숙이 스며들었던 물이 이곳에 솟아올라 연못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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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황지에는 아이를 업은 채 홍수에 가라앉는 집을 뒤돌아보다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는 황부잣집 며느리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 황지 황지에는 아이를 업은 채 홍수에 가라앉는 집을 뒤돌아보다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는 황부잣집 며느리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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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뒤돌아보다 그만 돌이 되고 만 황부잣집 며느리

낙동강의 자궁 황지에는 아이를 업은 채 홍수에 가라앉는 집을 뒤돌아보다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는 황부잣집 며느리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은 연못이 되어버린 황부잣집 전설을 빗대 3개의 연못 중 상지는 집터, 중지는 방앗간터, 하지는 화장실터라 여기고 있다.

태백시 안내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30여 년 앞까지만 하더라도 연못에 큰 나무기둥이 여러 개 잠겨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그 나무기둥들이 황부잣집 대들보와 서까래라고 여겼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연못 주변에 있는 지반이 약해 오래된 나무가 연못에 쓰러져 썩지 않고 있었을 것으로 어림짐작하고 있다.

황지에 얽힌 전설을 간략하게 더듬어보자.

아주 오랜 옛날, 한 노승이 황부잣집으로 시주를 받으러 왔다. 이때 욕심 많은 황부자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준다. 이를 바라본 놀란 며느리가 노승에게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주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한다. 그러자 노승은 "이 집 운이 다해 곧 큰 일이 생길 테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시오"라고 말한다.

노승은 아이를 업고 뒤따라오는 며느리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라고 말한다. 며느리가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자 갑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이 때 며느리가 노승의 말를 깜빡 잊고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보는 순간 그대로 돌이 되고 말았다.

황부자 또한 그때부터 연못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집에서 사는 큰 이무기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연못은 1년에 한두 번씩 갑자기 흙탕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고 있는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황지 황지 옆에 딸린 작은 연못에는 자그마한 두꺼비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돌로 만든 아치교가 하나 걸려 있다
▲ 황지 황지 옆에 딸린 작은 연못에는 자그마한 두꺼비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돌로 만든 아치교가 하나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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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그 아치교 아래 작은 연못 한 켠에는 돌다리가 놓여져 있다
▲ 황지 그 아치교 아래 작은 연못 한 켠에는 돌다리가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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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바라보고 서 있는 애처로운 며느리 눈빛

황지 옆에 딸린 작은 연못에는 자그마한 두꺼비 두 마리가 지키고 있는 돌로 만든 아치교가 하나 걸려 있다. 그 아치교 아래 작은 연못 한 켠에는 돌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 돌다리 옆에는 목만 살짝 내민 거북이 한 마리와 동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각 진 돌 받침대 위에 동그란 그릇 두 개가 물에 잠겨 있다.

아치교 위에서 젊은 연인 한 쌍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물에 잠긴 그릇을 향해 던진다. 퐁! 소리와 함께 동전은 보기 좋게 그릇 밖으로 떨어진다. 길라잡이가 젊은 연인들에게 다가가 "저기에 왜 동전을 던지느냐"고 묻자 "저기 그릇 안에 동전이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하며 또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씩 던진다.

하지만 동전은 좀처럼 그릇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물 위에 목만 살짝 내민 거북이가 젊은 연인들을 향해 '메롱!'하는 것만 같다. 누가 그릇과 거북이를 만들어 저 연못에 놔두었을까. 누가 이런 소문을 퍼뜨렸으며 물에 빠진 저 동전들은 또 누가 거두어갈까. 시에서 저 동전을 거두어 이 공원 관리비에라도 보태려 했을까.         

아치교를 뒤로 하고 공원 숲에 외로이 우뚝 서있는 돌 며느리상 앞에 선다. 등에 갓난 아이를 업고 황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며느리의 눈빛이 애처롭다. 때 아닌 가을비까지 추룩추룩 내리고 있어, 황지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서 있는 돌 며느리상이 마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만 같다.  

황지 돌다리 옆에는 목만 살짝 내민 거북이 한 마리와 동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각 진 돌 받침대 위에 동그란 그릇 두 개가 물에 잠겨 있다
▲ 황지 돌다리 옆에는 목만 살짝 내민 거북이 한 마리와 동전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사각 진 돌 받침대 위에 동그란 그릇 두 개가 물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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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 에 갓난 아이를 업고 황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며느리의 눈빛이 애처롭다
▲ 황지 에 갓난 아이를 업고 황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 며느리의 눈빛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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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동남쪽 땅에 살고 있는 뭇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을 포동포동 살찌우게 하는 낙동강의 뿌리 황지. 길라잡이가 태어나 자란 창원도 이곳 황지에서 흘러내리는 낙동강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 까닭에 길라잡이는 황지가 흘려보낸 물을 먹고, 황지가 펼쳐놓은 들판에서 자라는 먹을거리를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황지 앞에 서는 순간 길라잡이는 마치 고향에 안긴 듯 마음이 포근했다. 황지에서 잃어버린 첫 사랑의 그 여자가 떠오른 것도 황지가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길라잡이의 마음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행여 아내에게 들키면 크게 혼날 첫 사랑의 비밀을 은근슬쩍 털어놓을 정도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신림나들목-영월-정선군 신동읍-38번국도-태백시내-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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