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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자전거
 고물자전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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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 가을이다. 주말(5일) 오전에 자전거를 타고 안양 삼막사로 향했다. 안양8경 중 하나인 '남녀근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어떤 모양이길래 안양 8경 중 하나가 됐을까 궁금했다.

남녀근석은 83년 9월19일 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고 삼막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녀근석은 가공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돌로 그 모양이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남녀근석'이라 이름 지어졌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득녀 득남, 집안의 번영, 무병장수를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한다.

타고 가야 할 자전거를 끌고 오르다 보니

삼막사 에서 내려오는길
 삼막사 에서 내려오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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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막사에 가려면 비탈진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법과 차 한 대 정도가 지나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내가 선택한 길은 당연히 포장도로 길이었다. 안양시 석수 1동에 위치한 경인 교대를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여행 목적 중에는 자전가 타기가 포함되어 있기에 안간힘을 내서 엉덩이를 실룩실룩거리며 언덕길을 올랐다. 하지만 기어도 없는, 아니 좀 더 분명히 말하면 기어도 고장 난 고물 자전거는 금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무리 페달을 열심히 밟아도 고물 자전거는 그륵그륵 신음 소리만 낼 뿐 앞으로 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끌고 등산객들 틈에 끼었다. 자전거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인지 금방 숨이 턱에 찼다. 내 고물 자전거에는 유아용 의자도 달려 있어서 꽤 무겁다. 

산뜻한 라이딩 복장을 갖춰 입고 날렵해 보이는 자전거를 탄 '라이더'들은 기어를 바꿔가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들을 보며 불현듯 '나 라이더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들이 볼 때 자전거를 끌고 산에 오르는 내가 한심해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자격지심과 함께.

"삼막사 가려면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요?"
"한참 더 힘 쓰셔야겠네요."

제법 산사람 티가 나는 등산객에게 물으니, 지쳐서 헉헉 거리는 모습이 우습다는 듯 빙긋 웃으면서 힘 좀 더 쓰라고 말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한 시간쯤 오르자 스님이 염불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희망의 메시지였다. 삼막사가 가까이 있다고 알려주는 소리였다.

"어~~ 여긴 어쩐 일이야. 절에 다니나?"
"아니요. 자전거 타고 한 번 올라와 봤어요."

남녀근석, 보자마자 웃음이 나오려고

남근석
 남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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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자전거 기인 이창남(72)씨다. 자전거 열심히 타서 암도 이겨낸 의지의 한국인이다. 지난 겨울에 인터뷰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다. 여전히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안장 없는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역시 기인이다.

"이 줄은 어떤 줄이죠?"
"아~ 이거 국수 먹는 줄여(이창남씨는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
"국수라니요?"
"삼막사에서 12시부터 1시까지 등산객들에게 국수를 나눠주고 있어."

그랬다. 공짜로 나눠주는 국수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줄 서 있던 것이다. 내친김에 국수 맛을 보기로 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국수에 단무지 서너 개 얹어 주었지만 시장했던 터라 그런지 무척 달았다.

국수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이창남씨와 함께 남녀근석이 있는 칠성각으로 향했다. 좁은 돌계단을 5분 정도 오르자 남녀근석이 모습을 나타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진짜 비슷했다. 자연석이라는데 어떻게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일이다. 무엇인가 소원을 빌고 있는 주변 사람들 표정이 너무 엄숙해서 차마 웃을 수 없었다.

남근석에는 동전이 붙어 있다. 누군가 동전을 붙이며 소원을 빈 모양이다. 열심히 동전을 붙이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느냐고 묻자, 대답은 하지 않고 수줍은 미소만 지어 보인다. 더 묻는 것을 포기하고 위에 매달린 연등을 보니 '학업성취'라고 쓰여 있다.

내리막길 브레이크 고장 어쩌지!

여근석
 여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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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내려갈까?"
"전 그냥 올라온 길로 내려 갈게요."
"아녀! 기왕 올라왔응께 운동 좀 해야지. 등산로 타고 내려가면 되어. 자전거는 내가 메고 갈게."

이렇게 말하고는 무거운 내 자전거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멨다. 이창남씨가 가자고 하는 길은 일반 등산로다. 아무리 기인이라지만 칠순 노인이 유아용 의자까지 장착된 무거운 자전거를 메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무거우니 내려놓으세요. 가뿐한 산악용 자전거가 아니라서 힘들어요. 내려가서 예술 공원으로 갈게요(예술공원에서 막걸리 한잔 하기로 했다. 실제, 예술공원에서 만나 막걸리 마셨음)."

이렇게 말하고 극구 만류하니 마지못해 자전거를 내려놓았다.

내려가는 길은 기대가 컸다. 헉헉대며 올라오면서 내리막길을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자전거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았던 터다. 삼막사 입구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 바퀴가 주는 편안함을 만끽하며 시원하게 내달리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자전거 기인 이창남(72) 씨
 자전거 기인 이창남(72)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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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맛 때문에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는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공포가 엄습해 왔다. 아뿔싸!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평지에서는 그럭저럭 말을 듣던 브레이크가 내리막길에서는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양쪽 브레이크를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꽉 잡았다. 그래도 속도가 좀처럼 줄어들지를 안았다. 앞쪽은 급커브길이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멋지게 자전거를 타고 곡예를 하듯 급 커브길을 내려가든지 아니면 볼썽사납게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넘어지고 구르든지.

순간적으로 후자를 택했다. 폼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우선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펄쩍 뛰어 내렸다. 구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몸이 두세 바퀴 굴렀다. 자전거도 내려오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굴러가다 나무를 들이받고 멈췄다.

천만다행으로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많은 등산객들 앞에서 무지무지 창피 당했다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일어나자마자 누가 볼새라 자전거를 끌고 뛰었다. 그 길로 산 아래까지 자전거를 끌고 뛰다시피 내려왔다.

월요일 아침, 온 몸이 욱신욱신 쑤셨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며(물론 자전거 타고) 얻은 교훈 한 가지. 라이딩은  절대 무리 하면 안 된다는 것. 자전거 성능과 몸 성능이 되는데 까지만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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