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추석을 앞둔 9월 10일, 강남고속터미널 너머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터미널과 병원을 잇는 육교에 올라서자 웅장한 글씨가 눈을 가로막는다. '2009년 5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개원합니다.' 이천억 원을 들여 짓는다는 가톨릭 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오늘 내가 병원을 찾는 이유는 아파서다. 손목이 부러지거나 화상을 입어서 찾는 것은 아니다. 오장육부가 뒤집어져서 찾아가는 길이다. 내 병이 MRI나 내시경을 통해서 진단된 것은 아니다. 약물이나 수술로 치료될 병도 아니다. 그런데 왜 강남성모병원을 찾아가는가?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사와 호흡을 맞춰 간호 보조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고용된 사람들이다. 2년을 계약하고 들어왔고, 계약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 찍소리 할 필요도 없다. 계약을 그리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해고에 아무 문제가 없다. 2006년 10월 1일에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2년을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으니 2008년 9월 30일에는 계약대로 집에 가서 푹 쉬면 그만이다.

 

홍석. 그는 서른 일곱이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홍석씨는 오년 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을 통해 강남성모병원에 취직을 했다. 이때는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을 맺었다. 홍석씨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돈보다는 환자들에게 봉사도 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고된 일도 흥겹게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2006년 9월 28일, 낡아서 잘 굴러가지도 않는 침대를 힘겹게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으며 침대에 누운 환자를 검사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호출기가 울렸다.

 

"파견업체로 가라는 거예요. 더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딱 3일 남겨두고 파견업체로 가든지 아니면 출근을 하지 말든지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정말 얼떨결에 파견업체로 간 거예요. 별 수 없잖아요. 파견업체로 가지 않으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데, 그것도 3일 남겨놓고 통보를 하는데 어쩌겠어요."

 

홍석씨만이 아니었다. 간호보조업무는 2002년 이전에는 모두 정규직이 담당하던 일이었다. 이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형태를 바꾸더니 2006년에는 파견업체로 떠민 것이다. 노동자들은 선택을 할 생각은커녕 시간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와 다를 바 없다. 천 원에 팔리다가 해질녘에는 500원에 막판떨이 신세가 되어도 그냥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팔려나가면 그만인 존재다.

 

올해 서른둘 이미경씨도 마찬가지다. 다니던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자 이미경씨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때 강남성모병원에서 사람을 뽑고 있었다. 3교대로 일을 한다지만 하루 8시간 근무니 해볼 만했다. 물론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서를 썼다. 이리 큰 병원이면 안정되게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었다. 말이 8시간 근무지, 잠시도 숨 돌릴 겨를이 없다. 꼬박 8시간을 잰걸음으로 쉴새없이 뛰면서 근무를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겨우 짬을 내서 식당으로 가 식판에 밥을 푸는 순간 호출기가 울린다. 호출기가 울리면 허기졌던 뱃속과는 달리 입맛이 싹 사라진다. 식판의 밥은 고스란히 잔반통으로 들어가기가 일쑤다.

 

제 시간에 근무가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잔업을 해야 한다. 수당도 없는데 말이다.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다가 퇴근시간이라고 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일은 교대 근무자가 오더라도 자신이 끝내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보조업무라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아픈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닌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하루 8시간 넘게 병원 복도와 층계를 오르내리며 뛰어다녔으니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다. 그리고 몸이 아픈 환자를 상대를 하다 보니 그 긴장은 육체의 피로를 몇 곱으로 가중시킨다.

 

물론 이미경씨도 홍석씨가 있던 자리에 2년 전에 함께 있었다.

 

"너무 억울했어요. 찍소리도 못하고 파견업체로 팔려간 거잖아요. 배추시래기처럼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그날 황당하게 파견업체로 버려진 사람들이 터미널 앞 호프집에 모여서 술을 한 잔 했어요. 울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다짐을 했죠. 이건 아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당하지 말자."

 

그리고 두 해가 지나고 9월이 왔다.

 

홍석씨와 이미경씨에게, 강남성모병원 간호보조업무 파견 직원들에게 너희가 2년 계약하고 들어왔으면서 이제 와서 못 나가겠다고 하는 게 맞느냐며 손가락질 할 사람 있습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 고용된 직원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강남성모병원에 고용된 사람입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서 일했습니까,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습니까? 이들이 찍소리 하지 않고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가라사대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꽃을 만들었듯이, 강남성모병원 가라사대 간호보조업무가 정규직이 되라하고 비정규직이 되라하고 파견직이 되라하면, 그 가라사대에 따라 고용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가톨릭의 정신입니까? 그게 생명존중입니까? 수천억을 들여 짓는 새 병원 담벼락에 자랑스럽게 써 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인가요?

 

새 병원에는 70평짜리 초호화병실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기업 CEO들이 입원을 해서도 회의를 할 수 있는 초특급병실을 갖춘다고 하는데요, 가톨릭에서는 돈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고, 돈 없는 이들은 2년마다 해고를 묵묵히 감수하며 일하는 세상이 옳은가요?

 

간호보조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간호부 소속 사원으로 되어있던데, 간호부의 부장님 과장님들이 수녀님이시던데, 수녀님! 당신 부서의 사원들이 시장판 배추시래기 취급을 받고 있는데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심지어 앞장서시는 것이 당신이 믿는 신앙에 따른 행동이신가요?

 

홍석씨와 이미경씨와 배추시래기가 된 간호보조업무를 하던 파견사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참을 성모상 앞에서 기도도 하고 한탄도 하고 호소도 하였다. 그리고 추석이 지났다.

 

강남성모병원에 비정규노동자들이 천막을 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천막이 세워진 몇 시간 뒤 강남성모병원은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천막을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 비정규여성노동자가 폭행을 당했다는, 정말 헛소문이기를 바라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일이 세 번인가 되풀이되어 들려왔다.

 

9월 30일. 하나님 가라사대 홍석씨와 이미경씨가 강남성모병원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날,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스무날 전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미경씨의 눈이 탱탱 부어 있었다. 웃을 때마다 콧잔등에 주름을 가득 지으며 까르르 자지러지던 이미경 씨는 보이지 않았다. 분홍 근무복 위에는 가을하늘 빛깔을 가득 담은 조끼를 입었다.

 

결국 조끼를 입고 마는구나. 칙칙한 청색도 뜨겁게 달궈진 붉은색도 아닌 가을 하늘빛 조끼라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설마 저 푸른 가을하늘이 이들의 소박한 소망을 저버리겠는가 하는 위안을 했다.

 

"언제부터 로비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가셨어요?"

"연좌농성 아니에요. 아침부터 병원 돌며 저희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로비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왜 저희가 이런지 호소를 하는데 무릎이 팍 꺾여 이 자리에 주저앉은 거예요. 그동안 설움이 복받쳐 올라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인사팀 직원들이 다가와 설움에 복받쳐 주저앉은 이들에게 나가라며 협박을 하였고, 병원의 연락을 받은 서초경찰서는 정보과 형사를 보내 연행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다. 일어설 힘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연행을 하든 말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투석을 받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에 온다는, 자신도 '아이엠에프' 때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아저씨 한 분은 꼭 강남성모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라며 요구르트를 전한다. 휠체어에 링거를 달고 온 한 환자분은 바나나 우유와 빵을 담은 허연 비닐봉지 2개를 건네고 사라진다.

 

비닐봉지를 열던 박정화 조합원이 갑자기 굵은 눈물을 쏟아내며 병원 로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손에 자그마한 쪽지 하나를 보여준다. 방금 전 우유를 건넨 환자가 봉지 안에 담아둔 쪽지다.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

 

이미경씨 병동에 있던 분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안다. 이들이 얼마나 병원에서 소중한 사람인지를. 아픈 자신들에게 이들이 보여준 헌신과 애정을 환자들은 안다. 함께 일한 간호사들도 알고, 병원 청소를 하는 용역 아줌마들도 알고, 주차관리를 하는 용역 아저씨들도 안다. 파견 간호보조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직원임을 알고, 반드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정말 환자들의 생명존중만큼 노동자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함을 세상은 알고 있다.

 

아파서만 우는 게 아니고, 아파서만 병원을 찾는 것은 아니다. 약물로도 수술로도 치료될 수 없는 병이 이천구년 광우병, 멜라민과 함께 온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비정규직, 당연시되는 사회가 무섭다. 가톨릭에서조차.

덧붙이는 글 | 월간 작은책과 개인블로그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