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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천명을 앞둔 지금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어머니'만큼 살가운 존재는 아니다. 왜 그럴까. 아버지로 인해 유년시절 치유 받지 못한 상처가 많은 까닭이다. 내게 아버지는 언제나 답답한 벽이었다. 조그만 일 하나도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기기보다는 '이렇게 해라'는 식의 명령과, '말대꾸하지 말라'는 권위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언제나 먼 당신이었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버지! 유년시절 내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언제나 강한 모습만, 권위를 앞세우며, 복종을 강요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던 폭군이었다(다소 심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와 우리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주 가족을 다그치며 버럭 화를 냈다. 따뜻한 헤아림보다는 닥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그럼에도 쓸쓸한 뒷모습을 보였다. 가족이 당신이 힘겨워하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그렇게도 가슴 아파하며 싫어했던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아들을 대하는 데 있어 내가 더 심한지도 모른다.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것보다 일정한 잣대를 갖고 그 틀을 무너뜨리지 않고 있다. 그러니 자연 아들과 대화 뜸해지고,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종국에는 밋밋하게 지내고 있다. 골이 깊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이미 성년이 된 아들의 유년의 기억에 좋지 않은 상처를 많이 남겼다. 난 아들에게 얼마나 이해받고 있을까. 참 낯부끄러운 일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는 아버지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씁쓰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 가운데 만난 김병후 박사의 <아버지에 대한 변명>은 긴 가뭄에 단비 같았다. 정작 나와 같은 아버지를 위한 변명을 이야기한 책이다. 섣부른 아버지 노릇에 대한 깨우침이 많았다. 이 책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은 적이 없고,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우리 시대 모든 아버지들의 눈물겨운 자화상이다. 저자는 2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다양하게 만난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아버지들이 겪는 내외적인 갈등을 이야기한다.

 

사례에 등장하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평소 가족을 위한다 자신하면서도 오히려 그 위에 군림하는 가부장적인 모순의 끈을 놓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다.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 아버지들일수록 가족에 더 의지하고 싶어하는 나약한 아버지였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젊은 아빠 시절에 아이들과 애틋한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때문에 바깥일에 치중했던 아버지가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성취했을 즈음이면 아이들은 어느새 아버지를 타인으로 생각할 정도에 놓인다. 이쯤 되면 아이와 함께 대화하고 싶어도 의도하는 바와 달리 더 두터운 장벽만 쌓는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아버지 모습과 그렇지 않은 경우로 아버지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녹록찮은 상담사례와 비교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변명>에 물꼬를 트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 얘기 꼭지마다 저자 자신의 가정 내에서의 실제 생활모습을 진솔하게 소개함으로서 저자 자신도 젊은 시절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한 여느 아버지와 똑같은 전철을 밟았음을 밝힌다. 저자의 아들딸이 이 책을 읽었다면(물론 반드시 읽었겠지만) 젊은 시절 아버지 김병후와 지금의 아버지 마음을 좀더 헤아리지 않았을까.

 

많은 아버지들이 더는 가족 안에서 이방인이 되지 않아야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많은 아버지들이 아버지로,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여 든든한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고 사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일에 쫓겨 가족의 따스한 품을 도외시한 채 이방인으로 늙어가고 있다.

 

그 동안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농경시대 아버지의 존재기 가족을 '장악'할 수 있는 강한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면, 요즘 사회의 아버지는 가정을 벗어나 노동자로 전락했기에 과거의 아버지의 권위는 이미 빛이 바랜지 오래다. 이는 그만큼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실질적인 경제결정권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구나 우리 사회가 안정화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가족 모두가 스스럼없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자상한 아버지'를 원한다. 그러니 예전과 같이 권위로만 똘똘 뭉친 고루한 아버지는 더 이상 '자상한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좋은 아버지'라고 자신할지라도 가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학습이 필요하다

 

남자들이 성장하면서 성인이 되고 결혼하면서 또한 아이를 갖게 되면서 가족과 아버지의 역할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면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아버지로 남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아버지'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밝히고 있다.

 

아이를 키울 때 대부분 남성들은 경험 부족으로 자신의 아이지만 아이와 어떻게 노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성적인 친밀도가 높을수록 남자들의 육아 참여도가 더 늘어난다. 젊은 남성들은 사회 지위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급하다고 단정하나, 이 시기에 아이와 노는 것을 방치할 경우 아이는 물론, 아내에게도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그럴 경우 아내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아이를 키울 때 아이와 놀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내에게는 남편의 사랑과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전제가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내 입장에서도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 많다. 젊은 아버지들이 많은 시간을 집 이외의 공간에서 보내는 것은 결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만 산업화된 사회제도가 아버지들을 밖으로 내모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전제는 남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를 위한 변명>은 이와 같이 가정과 직장에서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는 아버지들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해보고자 하는데서, 나아가 가정에서 늘 이방인과 같은 존재인 아버지들을 가정 안에 온전히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 씌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 시대에 아버지들이 처해 있는 다양한 현실에 대한 상담사례를 중심으로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모든 아버지들이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을 함으로써 자신을 포함해 가족 모두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좋은 아버지를 위한 지침서'다. 일독을 권한다. 

 

끝으로 저자는 "나쁜 아버지는 가족에게도 나쁘지만 아버지 자신에게도 나쁘다. 따라서 나쁜 아버지에서 좋은 아버지로의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따뜻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변명

김병후 지음, 리더스북(2006)


태그:#변명, #아버지, #존재,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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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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