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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인 산성을 허물어 자기만을 위한 탑을 쌓다니요

 

지난 월요일(8일), 반 아이들과 창녕 화왕산에 올랐습니다. 스물아홉 중에 열여섯 아이가 동참했지요. 화왕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집니다. 오늘 우리가 오르는 자하곡과 관룡사로 오르는 길입니다. 그 길에는 나뭇가지 뻗치듯 곁가지 길이 더 나 있습니다. 우리는 자하곡의 곁가지 '목마산성 길'을 택했습니다. 목마산성 길은 처음부터 팍팍한 길입니다. 너무나 가팔라서 오르는 짬짬이 한참을 쉬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힘들지 않는다는 듯이 뛰어다니는 날다람쥐도 있었습니다. 가다가 누군가 '깔딱 고개'라고 해서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깔딱 고개'를 거의 오르자 '목마산성'이 턱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허물어져 성이라기보다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일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산성을 뜯어다가 돌탑을 쌓아놓았습니다. 쌓은 사람들이야 재미로, 소원을 빌기 위해 그랬겠지만, 문화재인 산성을 허물어가며 자기만을 위한 탑을 쌓았다는 것은 못난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문화재는 있는 그대로 아끼고 보전해야 하는데, 참 안타까웠습니다.

 

목마산성을 벗어나 다시 숲속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다람쥐 청설모가 기웃댑니다. 곳곳에 두더지가 흙을 들춰낸 곳이 많았습니다. 나무도 보고 풀도 보며 한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숲속 공기는 참 상큼했습니다. 가을 풀꽃들의 향긋한 냄새도 코끝을 간질입니다. 모든 게 좋아 보였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아이들도 제각기 기분 좋은 얼굴입니다.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폈습니다. 순간, 아이들의 얼굴은 풀꽃처럼 환해졌습니다. 모두 싱글벙글한 얼굴로 자리를 잡아 가방을 풀었습니다. 많은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도깨비 방망이 흔들어 놓은 것처럼 푸짐했거든요. 김밥이 대부분이었지만, 누군가는 볶음밥과 주먹밥, 유부초밥을 싸 왔습니다. 맨밥을 싸 온 아이는 반찬을 여러 가지 챙겨와 더 환영을 받았습니다. 다들 입이 툭툭 불거지도록 빵빵하게 먹어댔습니다. 평소 집이나 학교급식으로 먹는 양보다 두 배는 더 먹었을 겁니다.

 

'야호'하는 습관, 산짐승과 풀벌레를 놀래킵니다

 

다시 정상을 향해 가는 숲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길은 다른 산에서는 보기 드물게 소나무로만 우거진 길입니다. 숲 속에 접어들자 향긋한 소나무 향기가 물씬 배어났습니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다른 등산객은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올라오면서 딱 한 분을 만났을 뿐이었으니까요. 아뿔싸! 앞서 가던 한 아이가 길섶 벌집을 걷어차는 바람에 화가 난 벌들이 마구 날았습니다. 모두 자세를 낮추고 꼼짝도 하지 않아 얼마 후 벌떼는 진정됐습니다. 다행히 벌에 쏘인 아이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덕암산에 이어 두 번째 산행입니다. 화왕산은 덕암산보다 백여 미터나 높은 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손나발을 만들어 '야호!'를 외쳐댔습니다. 출발하면서 산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풀 나무를 함부로 꺾으면 안 된다고 약속했는데, 너무 기분 좋은 탓인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간혹 산에 올라가면서 '야호'를 외쳐 대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좋은 산행방법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산에 사는 풀벌레와 산짐승들은 심하게 놀랍니다. 우리가 산행하는 것조차 그들에겐 삶의 터전을 침입하는 것이 됩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날씨가 좋아 멀고 가까운 곳이 다 드러나서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아이들은 제 스스로가 대견스러운 듯 상기된 표정이었습니다. 발아래 억새가 꽃무더기를 이뤘습니다. 화왕산 억새밭에 가 보셨나요? 전국에 걸쳐 억새 군락지는 많지만 화왕산처럼 산 정상에 이렇게 무리를 지어 팬 억새는 드물답니다. 그것도 5만6천 평에 이르는 방대한 억새군락, 한번 만나 보세요. 아, 하는 탄성이 그저 터져 나올 겁니다.

 

억새 숲에서 뛰노는 것은 좋지만, 억새를 망가뜨리면 안되겠죠

 

아이들은 잘 놀아야 잘 큽니다. 때문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억새를 만난 아이들은 마냥 좋습니다. 졸졸졸 억새 숲을 번갈아 다니며 술래잡기를 합니다. 그러나 담임은 아이들을 불러 모읍니다. 억새 숲에서 맘껏 뛰노는 것은 좋지만, 자칫 억새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섭니다. 아이들이 말을 잘 따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살짝 볼을 꼬집어줍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고 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화왕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도 억새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억새밭을 지나 산성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이들은 그새 억새랑 친해졌는지 떠나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렇지만 먼저 앞장을 섰습니다. 억새밭을 비껴나니 이내 산정을 휘돌아 감은 화왕산성이 기다랗게 다가섭니다. 화왕산성입니다. 원래 산성에 올라서서는 안 되지만, 오늘은 아이들과 산성에 섰습니다. 아이들, 1595년 그날처럼 함성이 대단했습니다.

 

모두 1592년 임진왜란 때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이 되었습니다. 다들 그때 태어났다면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키는 의병으로 왜군들과 맞서 싸웠답니다. 생각이 야무진  아이들의 눈매, 혼자 지켜보기에 아까웠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화왕산에는 어디로 보아도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없었습니다. 산성만 보란 듯이 그때 역사를 말해줄 뿐이었습니다. 그게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지금 딛고 선 화왕산성이 옛 모습 그대로인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모습을 새롭게 되살려 놓은 거라고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사실 예전에 익히 보았던 산성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물론 문화재가 허물어지고 훼손되면 최대한 옛 모습을 살려가며 손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번만 더 생각하였더라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새로 쌓지는 않았을 겁니다.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한다면 충분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오늘 산행은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 어렵고 힘든 산행을 용케도 잘 이겨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들 목말라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으면 정상에 샘물이 졸졸 흘렀는데, 여름 가뭄이 심해서 화왕샘은 말라버린 상태였습니다. 달래서 한 시간 정도 냅다 걸어야 산 아래 약수터까지 가는데, 갈증을 참아낼 수 있을지. 애써 아이들 다그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화왕산 억새는 그때까지도 아이들 곁에서 나풀거렸습니다. 참 아름다운 산행이었습니다.

 

아이들, 오늘 산행으로 '하면 된다.'는 다짐 하나 알토란 같이 쟁였을 겁니다. 뙤약볕 아래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긴 산행을 마무리 짓습니다. 열세 살 아이들 정말 대견합니다. 언제고 다시 화왕산을 다시 찾게 되면 오늘 하루 추억이 새로울 겁니다. 아이들 하나하나 챙겨봤습니다. 어디 아픈 곳이 없나, 생치기라도 난 데 없나. 다음 산행은 마산 '무학산'입니다.

 


태그:#화왕산, #억새, #화왕산성, #목마산성, #부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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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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