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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파티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특별선물이라고나 할까. 매일 방으로 배달되는 한국어판 안내문(STAR NAVIGATOR)을 보니 저녁 6시경 아시아 각국의 전통의상 패션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화려한 한복을 기대하며 파티장으로 향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만 있지 들어설 곳조차 없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땅한 자리를 물색하느라 애를 먹었다. 간신히 비좁은 곳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나라 의상은 남녀가 한 쌍을 이뤄 패션모델들이 나오는데 유독 우리나라 한복을 입은 모델은 혼자 나와 포즈를 취한다.

 

공연히 눈물이 나려 한다. 다른 나라에 밀리는 기분이 들어 난 그만 캠코더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함성이 들리고 관객들의 호응이 커졌다. 얌전히 절하는 모습에 우리일행이 큰 박수와 함께 격려의 소리를 하니 옆에 있던 분들까지 함께 박수를 보낸 것이다.

 

갈라디너 때 입을 옷을 준비하면서 양장보다는 한복을 준비해 가자는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가져가려고 하니 챙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그냥 평소에 입던 원피스를 가져갔다. 여자 혼자 나온 모델을 보니 우리 일행 중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한복을 가져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한국승무원이 1명밖에 없어 혼자 모델출연을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한복은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는 말에 속이 상했다. 앞으로 크루즈여행을 가는 분들에게 한복을 준비해 가시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가져가려다가 번거롭게 생각하고 그만둔 우리는 돌아와서까지 후회했다.

 

예쁜 모양의 카나페와 함께 여러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등 음료가 나와 그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음료를 선택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인사도 하니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했다. 갈라디너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1부에 참여해서 선장님과 승무원들의 소개를 듣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오늘 저녁은 특별한 음식으로 먹어야 이 들뜬 기분이 이어질 것 같다.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이태리요리 전문식당으로 마음을 정했다. 문 앞에서 "Do you have a reservation?(예약 하셨나요?)"라고 묻는 종업원의 이야길 듣고서야 예약을 했어야 했음을 알았다. 당연히 "No!"를 외칠 수밖에.

 

▲ 이태리요리 전문식당에서 고풍스런 접시와 여러 종류의 포크와 나이프, 크기가 다른 유리잔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취향에 맞게 음식을 시켰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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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상을 아래위로 훑어보다시피 하고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여섯 명의 좌석을 마련해 주었다. 고풍스런 접시와 여러 종류의 포크와 나이프, 크기가 다른 유리잔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이번엔 제대로 취향에 맞게 음식을 시켰다.

 

배 안의 유일한 1명의 한국승무원은 만나기도 어렵다. 배에 승선할 때와 기항지에 내릴 때 봤을 뿐인데 우리가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가지 않아 찾아다닌 눈치다. 칵테일파티 전에 예약상황을 알아보려고 찾아다니다 우리끼리 해결하자고 결정한 것이다. 이곳은 꽤 비싼 유료식당인데 이곳에 왔냐며 승무원이 놀라는 표정이다. 발코니룸 손님에게 주어지는 룸당 홍콩달러 1500불의 음료나 식사이용 혜택이 아니라면 우리도 그곳엔 가지 못했을 것이다.

 

특별한 날의 특별한 음식! 게다가 종업원의 특별한 이벤트가 즐거운 저녁시간이 되게 하였다. 남편은 냄비뚜껑만 들었다 놓았다 하며 "써프라이즈"만 외쳤지 음식은 한식만 못하다고 했지만, 난 아니다.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음식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고 부지런히 맛봐야 했다.

 

우리는 와인까지 주문하여 우아한 저녁을 즐겼다. 방에 돌아와 남편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천국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천국에 온 것 같다나. 늦은 밤인데도 어두운 밤바다를 내려다본다. 우리를 태운 배는 쉬지 않고 홍콩으로 가고 있었다.


태그:#크루즈, #갈라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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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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