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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떠나는 여름휴가도 못가고 유난히 더운 올해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내 꼬락서니가 한심하기만 하다. '그래 집이 훨씬 낫지. 나가봐야 고생만 하지'라고 혼잣말로 위안을 삼고 지나치기에는 늦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이래저래 짜증이 났다. 어딜 가도 휴가 이야기뿐이고 다녀온 이들이 수영장에서 보여주는 검게 그을린 멋진 모습에 샘이 날 지경이다.

이런 내 마음이 통한 걸까? 우연찮게 모임에서 국내크루즈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이왕이면 멀리 가 보자고 해외크루즈를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여행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었다. 어느 날 알아보다 그만둔 여행이 지금도 가능하느냐고 지나가는 말로 여행사에 물어보게 되었다. 여행 계획을 늦춘 게 잘한 일일까? 오히려 특별할인 혜택까지 있는 여행상품으로 세 부부가 떠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 쌍의 부부가 4박 5일 여정의 크루즈 여행을 함께 떠났다.
▲ 여행의 동반자들 세 쌍의 부부가 4박 5일 여정의 크루즈 여행을 함께 떠났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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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안내자를 동반한 해외여행을 하던 버릇 때문인지 가이드 없이 떠나는 여행을 불안해  하는 남편을 설득하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난생처음 크루즈여행을 하게 된다는 기쁨으로 모든 일에 콧노래가 나올 정도다.

"그만 자랑하면 안 돼요?"

주위 분들이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크루즈여행 이야기를 했다. 함께 떠나자는 이야길 꺼내다 보니 당연히 '자랑'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크루즈여행을 다녀와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여행 전날 과연 우리끼리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남편도 나도 잠을 설쳤다. 왜냐하면 이곳 청주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새벽 3시50분에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잠을 자다 깨다 하다가 아예 잠을 안 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거운 여행 가방을 두 개나 끌고 배낭을 짊어졌음에도 가볍게 느껴지는 건 크루즈여행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여행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기차나 버스보다 배를 탄다는 기쁨이 더 컸다. 우리 일행이 떠나는 버스에 대고 손을 흔드는 아들 걱정도 집 걱정도 모두 잊고 오로지 이제부터의 관심은 여행뿐이다.

관광객과 승무원을 합하여 총 3000여명에 이르는데 뒤로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크루즈호 앞에서 남편 관광객과 승무원을 합하여 총 3000여명에 이르는데 뒤로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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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버고호', 우리가 탈 배이름이다. 배를 타려면 홍콩까지 가야만 한다. 인천공항에서 홍콩까지의 비행시간이 제주만큼 가깝게 느껴진 것은 버고호에서의 생활을 그리며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날씨보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후덥지근한 홍콩의 날씨로 인해 잠시 짜증이 났다. 홍콩공항에서 부두로 가는 길에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배를 타러 갔다. 배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출입국심사대 주변 사람들로 더 덥게 느껴졌고, 절차도 비행기보다 오히려 더 까다롭고 복잡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워낙 많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 아닐까? 승선인원이 자그마치 1900여 명, 승무원만도 1100명이라니 어마어마한 규모이긴 하다.

홍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큰 배를 몇 걸음 걸어가 바로 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는 사실도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홍콩이 무역도시인 것도 수심이 깊어 큰 배가 바로 정박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와 홍콩은 시차가 1시간이라고 한다. 그곳 시각으로 오후 4시경 오랜 기다림 끝에 승선을 했다. 환영 세레나데가 울리고 각종 인형을 쓴 이벤트 팀과 전속 사진사가 사진까지 찍으니 승선의 기쁨이 한껏 고조되었다.

팡파르처럼 울리던 음악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내가 멀리 온 것을 느낀 것은 생김새와 차림새가 모두 다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 배 안 로비에 들어서서다. "우와, 너무 멋지다!" 로비 조형물과 잔잔히 흐르는 음악, 해마와 기하학적인 모양이 수놓인 멋진 칼라의 양탄자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불빛이 들어오는 엘리베이터 세 대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도 로비에서 본 멋진 풍경중 하나다.

7층 리셉션에서 승선카드를 받았다. 우리는 발코니 룸이라 빨강색 띠가 들어간 승선카드를 받았다. 앞으로 배안에서의 모든 생활이 이 카드로 이루어진다. 결재도 물론. 곧바로 선박안내(십 투어)가 이루어졌다. 이천 명 되는 승객 중 한국 사람은 단 열두 명뿐이다. 그래서인지 선박안내는 영어와 중국어로만 했는데 우리는 영어로 하는 안내를 받았다. 그들의 손짓과 표정으로 반은 알아들었다. 나머지는 부족한 영어이긴 하지만 들리기는 했다.

이 시간만큼은 모든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 안전훈련 이 시간만큼은 모든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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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승무원 옆에서 조끼를 입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안전훈련의 '시범조교(?)' 남편이 승무원 옆에서 조끼를 입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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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선하자마자 승객들은 모두 안전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중요한 훈련이기에 안전훈련시간만큼은 모든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우리 일행 여섯은 모두 우리파트의 안전훈련에 참여했다. 우리를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오해해서 하마터면 다른 곳에 가서 훈련을 받을 뻔 했다. 난 순간 영화 <타이타닉>을 떠올렸다. 구명조끼를 입고 호루라기를 부는 시범을 보여주는 승무원을 보니 영화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살려달라던 모습이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안내방송을 잘못 듣고 방에서 구명조끼를 안 가져와 실제 입어 보지도 못하고 남들이 하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는데, 어디서 났는지 남편이 승무원 옆에서 조끼를 입고 시범을 보여준다. 아이들도 어른도 모두 안전훈련에 열중했다.

드디어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긴 된 것 같다. 4박 5일의 여정을 함께 할 크루즈호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 순간 문득 청주에서 누군가 나에게 했던 질문이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크르주가 어디에요?" 꼭 웃을 일만은 아니다. 다만 아직 우리에게 크루즈 여행은 생소한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태그:#크루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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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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