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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주민자치센터는 8월 한 달 동안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영화를 보여준다. 목요일 저녁만 되면 온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하여 삼삼오오 모여든다. 영화뿐만 아니라 음료수·생수·팝콘까지 제공되니 열대야로 지친 몸을 식히는 좋은 피서를 하는 셈이다.

 

지난 14일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보여주었다. '우생순'을 보지 않은 아내는 반드시 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여름 한철 제대로 비 한 번 오지 않았던 경남 진주에 영화 상영이 임박하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과 번개까지 치자 불안했지만 영화가 상영되자 사람들은 이미 우생순에 몰입되어 버렸다. 영화에서 승필(엄태웅 분) 감독이 무단이탈을 한 미숙(문소리 분)을 엔트리에서 제외하겠다고 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혜경(김정은 분)이 불암산 등반 훈련에서 자신이 먼저 완주하면 미숙의 엔트리 자격 박탈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고 승필이 받아들였다. 혜경과 승필 서로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뛰는 장면에서 결국 영화상영이 중단되었다.

 

그날 이후 아내는 우생순에 빠졌다. 끝까지 보지 못한 장면을 보기 위해 비디오를 보겠다고 했지만 아직 빌려보지는 못했다. 여자 핸드볼 경기는 빠짐없이 본다. 지난 21일 노르웨이와 준결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이다.

 

"야, 골이다!"

"아니 축구도 아니고 골이 들어갈 때마다 소리는 왜 질러요?"

"우생순이잖아요. 우생순! 아니 우리나라 선수는 너무 착하고 순해요. 노르웨이 선수들은 비열해요."

"노르웨이 선수들이 왜 비열해요?"

"힘으로 밀어붙이고, 반칙도 교묘하게 하잖아요?"

"사실 우승을 하려면 교묘한 반칙도 필요하답니다. 핸드볼 같이 치열함 몸싸움을 펼치는 종목은 강한 체력과 강한 압박, 교묘한 반칙을 통하여 상대 선수들을 제압하는 방법도 필요해요."

"나는 그런 방법으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달갑지 않아요."

 

참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볼은 어떤 종목보다 치열한 몸싸움을 한다. 치열한 몸싸움에는 교묘한 반칙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교묘한 반칙이 스포츠 정신과는 맞지 않지만 상대 선수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포츠 정신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신이 배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신사답다는 이유를 들었지요? 배구는 몸싸움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핸드볼 같은 몸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종목은 반칙이 있을 수밖에 없고, 당신 같이 순수한 사람이 보면 비열하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우리 선수들도 때로는 너무 정직한 플레이만 하지 말고 변칙 플레이도 필요해요."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은 스포츠 정신이에요. 스포츠 정신이 빠져버린 올림픽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우생순은 지금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생순을 좋아하는 이유는 금메달 때문만은 아니에요. 스포츠 정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이 나는 좋아요."

 

후반전에 들어서자 노르웨이가 앞서나갔다. 네 골 차이로 벌어지자 나는 아예 자리를 떴다. 자리를 떠는 나에게 아내는 말했다.

 

"당신은 우생순을 사랑하지 않아요? 우생순을 사랑하면 지는 경기도 끝까지 볼 수 있어야 하며, 이기고 있을 때보다 지고 있을 때 응원을 더 많이 해야 힘을 얻어 이길 수 있잖아요?"

"원래 나는 핸드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핸드볼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가 중요하지 않아요. 우생순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우생순 보지 않고 올림픽 봤다고 하지 마세요!"

"그래 우리 이미경 여사님 훌륭하십니다. 저는 그래도 지금은 보고 싶지 않네요."

 

아내는 조용했다. 계속 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골을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손뼉을 쳤는데 전혀 그런 반응이 없었다. 우생순이 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아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니 같이 응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생순 아직 지고 있어요?"

"이제 한 점 차예요."

 

시간을 보니 29분 31초였다. 공은 노르웨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경기는 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는 법이다. 29초는 핸드볼 경기에서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을 노르웨이와 경기에서 경험했다.

 

"29초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어요. 우생순이잖아요! 야 골이다 골이다."

"아빠 들어갔어요? 동점이에요."

"야 정말 동점이다. 연장전이다."

"어 어 어 들어갔어요?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왜 어떻게 해 연장전에 들어갔잖아요?"

"방금 보지 못했어요. 노르웨이가 골을 넣었어요!"

 

이런 일을 두고 어안이 벙벙하다고 했던가? 5초 만에 두 골이 들어간 것이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이것은 골이 아니야. 분명 오심이다.!"

"여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임영철 감독은 "노, 노, 노(No)!"를 외쳤고, 선수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없이 흘리는 눈물이 더 서러운 법이다. 주루룩 흐르는 눈물이 더 안타까운 법이다. 올림픽에 5번 나온 36살 오성옥 선수는 후배들이 다 빠져나간 뒤 눈물을 흘리며 나왔다. 아내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다른 종목과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생순은 쓰리고 아팠다. 오심과 편판 판정 때문만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 때문도 아니다.

 

그냥 쓰리고 아팠다. 왜 아프고 쓰린지 말을 해보라고 하면 답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아팠고 쓰렸다. 아내를 보았다. 말이 없다. 말이 아니라 얼굴 표정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아프다는 말이다.

 

그 순간만은 경기 내용분석과 오심 논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로지 우생순 그들만 보기로 했다. 세상에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고, 예쁜 14명의 우리 핸드볼 여자 선수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내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은 스포츠 정신이에요. 스포츠 정신이 빠져버린 올림픽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우생순은 지금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생순을 좋아하는 이유는 금메달 때문만은 아니에요. 스포츠 정신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이 나는 좋아요."

 

금메달이 아니라 핸드볼을 자기와 하나로 만든 우생순이 정말 위대했고, 아름다웠다. 우생순 파이팅!

덧붙이는 글 | '그 경기, 난 이렇게 봤다' 응모글


태그:#여자 핸드볼, #우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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