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전은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길다
▲ 국보 제227호 정전 정전은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길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왕들은 죽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왕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자신이 다스릴 때 죽은 백성을 불러 모아 왕 노릇을 계속하고 있을까. 그 나라에도 이승처럼 왕이 사는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궁궐이 있고, 신하들이 줄지어 서 있고, 곱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있을까.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종묘. 2001년에는 종묘제례 및 제례악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에 등록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종묘. 1963년 1월18일 사적 제125호로 등록된 종묘(서울 종로구 훈정동 1-2)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죽은 뒤에 왕이 된 왕과 왕비들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유교사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정밀하고도 장엄한 건축물 중 하나라는 종묘는 태조 3년, 1394년 10월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 9월에 다 지었다. 종묘가 지어지자 태조 이성계는 곧바로 개성에 있는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이곳에 모셨다.

종묘(5만6천5백3평) 경내에는 종묘를 상징하는 국보 제227호 정전이 있다.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길다는 이 정전은 처음 태실 7칸, 좌우에 딸린 방 2칸이 모두였다. 하지만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년, 1608년에 고쳐지었고, 영조와 헌종 때 다시 고쳐지어 지금의 태실 19칸이 되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종묘
▲ 종묘 정문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종묘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길이 보기에도 시원스런 짙푸른 녹음과 관광객들 뒷모습에 꼬리를 감춘다
▲ 녹음 사이 난 길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길이 보기에도 시원스런 짙푸른 녹음과 관광객들 뒷모습에 꼬리를 감춘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널 오래 기다렸는데 넌 인제서야 날 찾아왔니?

죽은 왕들이 사는 천국 종묘로 간다. 지난 달 13일(일) 점심 때, 갑갑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고파 호올로 찾았던 종묘. 종묘 외대문(정문) 주변에는 눈부신 햇살이 바늘로 내리꽂히고 있다. 따갑다. 종묘 외대문 맞은 편 나무그늘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듬성듬성 모여 앉아 점심내기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있다.

푹푹 찌는 무더위 탓에 목이 몹시 타는 지 막걸리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는 노인들도 여럿 있다. 매표소에 가서 표를 끊고 외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일직선으로 쭈욱 뻗은 길이 보기에도 시원스런 짙푸른 녹음과 관광객들 뒷모습에 꼬리를 감춘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며 고목들이 드리운 그늘을 조금 더 밟자 왼 편에 예쁜 연못 하나가 나그네를 반긴다.

초록빛 물을 담은 자그마한 연못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섬 하나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나그네 마음처럼 둥실 떠있다. 잠시 연못 앞에 서서 그 섬과 눈빛으로 말을 주고받는다. 나그네가 너는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냐고 묻자 그 섬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너 태어나기 훨씬 앞부터 이곳에 서서 널 기다렸는데 넌 인제서야 날 찾아왔니?'...

그랬다. 나그네는 서울에서 오래 살았다. 하지만 종묘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종묘는 당연히 거기 그렇게 있는 조선시대 왕들의 사당이라 여기며 그저 지나치는 곳이었다. 근데, 7월12일(토) 촛불집회에 갔다가 날밤을 샌 뒤 찜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갑자기 종묘가 떠올랐다. 종묘가 나그네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나그네 또한 조선시대 죽은 왕들의 혼백을 송두리째 모신 종묘에 가서 묻고 싶었다. 당신들이 다스리다 왜놈들에게 빼앗긴 나라, 그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냐고. 지금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착한 국민을 무차별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를 혼낼 따끔한 말은 없냐고.

고목들이 드리운 그늘을 조금 더 밟자 왼 편에 예쁜 연못 하나가 나그네를 반긴다
▲ 종묘 고목들이 드리운 그늘을 조금 더 밟자 왼 편에 예쁜 연못 하나가 나그네를 반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망묘루는 왕이 제향을 할 때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던 곳이다
▲ 망묘루 망묘루는 왕이 제향을 할 때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던 곳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사랑에는 국경도 죽음도 없다

한동안 초록빛 연못에 둥실 떠 있는 섬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햇살이 너무 따가워 다시 발걸음을 뗀다. 저만치 망묘루가 보인다. 망묘루는 왕이 제향을 할 때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던 곳이다. 망묘루 앞에 서서 나그네도 왕처럼 마음을 가다듬는다.

남녘 창원에 묻혀 있는 부모님을 추모하며 이명박 정부가 '제 정신 차릴 때'(?)까지 끝까지 촛불을 들 것이라고 마음 심지를 다시 곧추세운다. 망묘루 그 옆에 공민왕신당이 나란히 서 있다. 공민왕신당 앞에 서자 그림 속에 있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사랑에는 국경도 죽음도 없어'라며 나그네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공민왕신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신당이다. 이곳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그린 영정과 준마도가 있다. 망묘루와 공민왕신당 뒤에 향대청이 보인다. 향대청은 제례에 사용하는 향과 축, 폐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제향을 나가는 제관들도 이곳에서 기다렸단다.

향대청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 처마를 한껏 치켜들고 뽐을 내고 있는 기와숲 땜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 건물이 저 건물 같고 저 건물이 이 건물 같다. 땀방울을 또 한 번 훔치며 매표소에서 받은 종묘 안내 팸플릿을 편다. 안내자료를 살펴보면서 여기저기 보물섬처럼 박혀 있는 건물을 바라보자 그제서야 눈이 조금 뜨이는 것 같다.

공민왕신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신당이다
▲ 공민왕신당 공민왕신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지은 신당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향대청은 제례에 사용하는 향과 축, 폐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 향대청 향대청은 제례에 사용하는 향과 축, 폐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종묘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아름답고도 웅장한 건물들

종묘 안에는 망묘루, 공민왕신당, 향대청뿐만 아니라 재궁, 공신당, 칠사당, 정전, 정전수복방, 별묘인 전사청과 영녕전, 정전 악공청, 영녕전 악공천 등이 짙푸른 나뭇잎을 비집고 가끔 내비치는 햇살처럼 빼곡히 숨어 있다. 영녕전 악공천을 지나 한동안 숲길을 걸어가면 창경궁과 이어지는 문이 있다.

재궁 앞에 선다. 아담한 모습을 한 재궁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에 앞서 목욕을 하고 몸을 단장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 있는 건물은 어재실이고, 동쪽 건물은 세자재실, 서쪽 건물은 어목욕청이다. 덥다. 이마와 목,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나그네도 왕처럼 어목욕청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부모님께 제례를 올리고 싶다.

재궁을 지나면 공신당이 있다. 길게 쭈욱 뻗어나간 기와가 멋들어진 공신당에는 조선 역대 왕들을 위해 큰 공을 세웠던 공신 83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하지만 공신 83명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문이 꼭꼭 닫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선을 세울 때 피바람을 일으켰던 배극렴, 정도전, 이지란 등 개국공신과 정사공신, 좌명공신 따위가 아니겠는가.

공신당에서 정전 정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칠사당이 아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칠사당은 운명과 집, 음식, 거처, 성문의 출입, 형벌, 길을 주관하는 일곱 소신의 위패를 모시고 사계절에 걸쳐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공신당과 칠사당 사이에 정전 정문이 있다.

정전 오른 편에는 전사청이 있다
▲ 전사청 정전 오른 편에는 전사청이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영녕전에는 16실에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를 합쳐 모두 34위가 모셔져 있다
▲ 영녕전 영녕전에는 16실에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를 합쳐 모두 34위가 모셔져 있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정전,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

정전은 종묘의 중심건물이다. 예전에는 이 정전만을 종묘라 불렀다. 앞마당에 길게 다듬은 돌을 채곡채곡 채워 넣은 드넓은 월대(궁전이나 누각 앞에 세워 놓은 섬돌)가 특징인 정전은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로 총 길이만 101m이다. 정전에는 19실에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왕의 신주 19위, 왕비의 신주 30위를 합쳐 모두 49위를 모시고 있다.

공설운동장처럼 드넓은 앞마당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섬돌을 밟으며 바라보는 정전. 그 끝없는 길이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이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정전을 만든 장인은 누구였을까. 문득 까마득하게 보이는 정전 지붕에서 정전을 만든 장인의 피땀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만 같다. 섬돌 곳곳에 백성들의 피땀이 박혀 있는 듯하다.

정전 오른 편에는 전사청이 있다. 언뜻 지체 높은 양반집처럼 보이는 전사청은 제례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전사청에서 정전을 끼고 돌아 나와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정전보다는 크기가 작지만 종묘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인 영녕전이 떡 버티고 있다. 보물 제821호인 영녕전은 정전에서 옮겨진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는 별묘이다.      

영녕전은 세종 3년, 1421년에 지었다. 영녕전에는 16실에 왕의 신주 16위, 왕비의 신주 18위를 합쳐 모두 34위가 모셔져 있다. 영녕전은 처음에는 태실 4칸, 동서에 곁방 각 1칸씩 6칸 규모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1년, 1608년에 10칸 규모로, 그 뒤 계속 고쳐 지어 지금의 16칸이 되었다.

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음악을 연주하던 악공들이 기다리던 곳이다
▲ 악공청 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음악을 연주하던 악공들이 기다리던 곳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영녕전 앞마당에 빼곡히 깔려 있는 섬돌을 밟으며 밖으로 나온다. 저만치 창경궁으로 가는 길 한 모퉁이에 영녕전 악공청이 짙푸른 녹음 사이로 가슴을 활짝 열고 있다. 기둥만 있고 벽이 없이 탁 트인 악공청은 종묘제례 때 음악을 연주하던 악공들이 기다리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울창한 숲속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가 악공이 켜는 음악 같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종묘. 아름드리 고목 속에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또 하나의 풍경화를 빚고 있는 종묘. 그곳에 가면 단돈 천 원으로 산림욕도 즐기고, 조선시대 죽은 왕들의 천국까지 샅샅이 훑을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역사 속에 흐르는 자화상이 뚜벅뚜벅 걸어 나와 힘겨운 세상살이를 사는 지혜를 심어준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도보 5분 거리(1호선-11번, 3호선-8번, 5호선-8번 출구) ※관람료 / 어른 1천 원, 7~18세 5백 원. ※관람시간 / 3~10월까지 09:00~18:00(토~일 19:00), 11월~2월까지 09:00~17:30



태그:#종묘, #정전, #영녕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