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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장용전 씨의 허락 하에 취재기자가 시각장애인의 시점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기자 주>

외출 준비를 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지금 너희 집 앞에 도착했어. 내려와~!"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안산에 있는 노적봉 폭포공원에 가기로 한 날이다. 날이 흐릿하긴 한데, 덥지는 않아서 나들이하기에 딱 좋을 듯하다.

혼자서 여기저기 다니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인데도, 정작 집 가까이에 있는 폭포공원엔 가본 적이 없었다.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니 노적봉 폭포공원이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뒷편의 인공암벽에서 흐르는 폭포와 이 분수가 한 시간씩 교대로 운영된다.
▲ 노적봉 폭포공원의 분수 뒷편의 인공암벽에서 흐르는 폭포와 이 분수가 한 시간씩 교대로 운영된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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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분수에 마음까지 시원~

시원하게 뻗는 분수의 물줄기가 더위를 잊게 한다.
▲ 노적봉 폭포공원 시원하게 뻗는 분수의 물줄기가 더위를 잊게 한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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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을 걸어 올라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에 가까워지자 얼굴에 시원함이 확 느껴졌다. 나무로 전망대처럼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곳에서 분수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모양인데, 우리가 밟고 서있는 나무 바닥 아래에서도 물이 찰랑대고 있었다.

분수 뒤로 높이 23m, 폭133m의 커다란 암벽이 있다는데, 그 암벽을 타고 폭포가 흐르는 모양이다. 인공폭포와 분수를 한 시간씩 교대로 가동한다고 한다.

분수 옆에는 장미원이 꾸며져 있었다. 장미밭 사이를 걸으며 산책을 했다. 오른쪽에 빨간 장미, 왼쪽엔 노랑장미,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엔 흰 장미와 분홍장미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산책을 하고 있노라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물 냄새와 풀 냄새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우산을 받쳐 들고 산책을 계속 했다. 장미원은 계단식으로 점차 높아지는 형태였는데, 아래로부터 빗면-평지-빗면-평지로 이어지는 모습이 계단식 논밭을 연상시켰다. 빗면엔 장미가 심어져 있고, 장미와 장미 사이 평지에는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놓았다. 길이 꽤 울퉁불퉁하다고 생각했는데, 길에는 널찍한 사각형 바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깔아놓은 것이란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보기에 좋으라고 바닥에 돌을 듬성듬성 놓았을 테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는 그것이 조심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졌다. 그냥 잔디밭길이라면 잔디가 푹신하게 밟혀서 느낌이 더 좋았을 텐데….

비가와도 물놀이는 계속된다!

 커다란 맷돌모양의 조형물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구불대는 물길을 타고 흐른다.
▲ 노적봉 폭포공원 커다란 맷돌모양의 조형물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구불대는 물길을 타고 흐른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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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인데도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꽤 많았다.

'아~ 아이들 방학기간이구나!'

아이들은 분수 곁에 따로 마련된 낮은 높이의 물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 쪽으로 다가가니 수영장에 나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커다란 맷돌모양의 조형물에서 쏟아져 나온 물은 구불대는 물길을 타고 흐르며 아이들 발을 적시고 있었다. 물길을 따라 걷노라니 '꾸르럭 꾸르럭' 물을 들이키는 소리가 난다.

자신의 임무를 마친 물이 물길의 마지막에서 바닥으로 사라지는 소리였다.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꼬맹이들은 물장난이 한창이다. 노적봉 폭포공원은 아장아장 어린아이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까지 좋은 놀이터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나도 어렸을 때는 눈이 많이 나쁘지는 않아서 동네 어른들을 보면 인사도 잘하고 길도 잘 다녔다. 생활에 별 지장을 느끼지 못하고 지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칠판이 잘 안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맹학교로 옮기게 됐다.

시력 상실의 원인은 불명. 병원에서도 그저 어릴 적에 다친 충격 때문일 거라는 짐작뿐이다. 2살 때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다. 그 후 안구진탕이 생겼다. 안구진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알이 제멋대로 흔들리는 증상을 말하는데, 이 때문에 눈에 초점도 잘 못 맞추고, 글자나 사물을 선명히 보기 힘들게 된다.

내 시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졌고, 지금은 전혀 보지 못한다. 게다가 각막의 중앙부가 얇아지고 앞으로 돌출하여 원추형을 이루는 원추각막 증상으로 인해 두 차례나 각막이 터지기도 했다. 시력이 온전한 경우라면 각막이식 수술을 기대해보겠으나, 시각장애의 근본적인 원인이 다른 곳에 있을 경우 각막이식을 받아도 시력을 되찾을 수 없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산다는 것

비가 내리는 터라 앉을 수 있는 의자들 중 반 가량은 이미 젖어버렸고, 지붕이 덮인 의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쉴만한 장소를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다니던 끝에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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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적봉 폭포공원의 분수 앞에서 -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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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에 외출한 것이 참 오랜만이다. 평소라면 일을 마치고 한참 자고 있을 시간인데 말이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안마사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직장인들과 활동시간이 달라서 친구들을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가끔 쉬는 날 저녁에 친구들과 술을 한잔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밤 골목을 혼자 걸을 때면 묘한 감동이 느껴진다. 내가 보통 이들과 다른 시간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여행이나 나들이는 역시 지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 흰 지팡이 하나 들고 혼자 여행을 다니노라면, 길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혼자만의 생각 속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여행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되곤 한다. 물론 그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서울에서는 길을 물으면 대답 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이 꽤 많은 반면, 지방에서는 백이면 백 모두 친절하게 응답한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응답한 다섯 명 중 한 명은 길을 정확히 안내해주는 반면, 지방분들에게는 정확한 대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마 시각장애인을 많이 보지 못해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몰라 난감해하는 듯하다.

"저리로 조금만 더 가면 돼요"라 말해도 나로선 어느 방향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안내받는 사람도 서로 답답한 상황이 되고 만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할 때는 인터넷에서 여행 장소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찾고, 콜택시 번호도 미리 챙겨놓는다. 기차에서 내리면 택시를 불러서 원하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혼자 여행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 혼자만의 여행은 한두 번 해 볼만 한 것이긴 한데, 자주할 것을 못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폭포가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폭포가 흐를 시간을 기다리며 노적봉에 오르기로 했다. 폭포공원 뒤로 보이는 산이 노적봉인데, 천천히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한다. 

비는 연신 내렸다 개었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로 접어드니 숲의 향기가 기운을 돋운다. 길가의 평상에 앉은 이들의 악기 연주 소리와, 짝~짝~ 화투 패 맞추는 소리가 흥을 돋운다. 도심 속 휴양처로 한가로이 여름휴가를 온 모양이다. 산 중턱쯤엔 운동하는 사람도 꽤 많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날이 습해서인지 정상에 도착할 즈음엔 얼굴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 노적봉에서 바라본 안산시내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날이 습해서인지 정상에 도착할 즈음엔 얼굴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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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잘 닦인 산책로였는데, 중반을 넘으니 나무뿌리가 가로지르고 곳곳에 돌맹이가 박혀있는 산길이 시작됐다.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올라갔다.

'여기가 꼭대기가 맞나?'

내리막이 시작되는 거 보니, 아마 정상인 모양이다.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날이 습해서인지 정상에 도착할 즈음엔 얼굴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노적봉에서 내려와서 시원한 음료수로 땀을 식혔다.

앗! 그런데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폭포 가동 시간은 아직 안됐다 해도 왜 분수도 가동이 안 되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그때, 일행 중 한명이 '우천시 가동 안함'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단 얘기를 꺼냈다.

"헉!!"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폭포 가동시간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폭포는 가동되지 않았다.

거대한 암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시원한 폭포를 기대하며 폭포공원에 왔건만…, 아쉽다.

오늘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던 멋진 분수를 만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찾아와야겠다. 맑은 날에~!

덧붙이는 글 | 한국점자도서관 기획홍보팀 기자로 취재한 내용입니다.



태그:#시각장애, #노적봉, #폭포, #안산,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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