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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Live'에서는 장애인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고 방영한다. 왼쪽부터 패널로 참여한 정유미씨, 진행자 배은주씨, 초대손님 안선영씨.
 '바투Live'에서는 장애인들이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고 방영한다. 왼쪽부터 패널로 참여한 정유미씨, 진행자 배은주씨, 초대손님 안선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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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라디오 진행자 정유미(32)씨를 만나기로 한 날. 약속장소 근처에 도착해 유미씨에게 전화를 하자 "저도 거의 다 왔어요, 이제 횡단보도만 건너면 돼요"라는 밝은 목소리가 휴대폰으로 흘러나온다.

마침 횡단보도 즈음을 걷고 있던 나. 횡단보도 건너 서 있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눈에 유미씨를 찾을 수 있었다. 가녀린 체구, 전동휠체어에 몸을 싣고 있는 유미씨. 그녀는 6살 때 심한 홍역에 시달리며 류마티스병을 얻어 거동이 불편한 장애 여성이다.

"방송은 장애인으로서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곳은, 영등포구 당산동에 소재한 장애인미디어센터 '바투Live'였다. 바투Live는 장애인이 직접 영상작품과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하는 방송국으로, 지난 2006년 개관한 국내 최초 장애인 전문 미디어센터이다.

유미씨는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 <CCM 클릭>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시사 따라잡기>라는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유미씨가 바투Live에서 라디오 진행을 맡은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유미씨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봄온 아나운서 아카데미가 오디션을 통해 뽑은 '장애인 아나운서' 출신이다. 약 3개월 동안 유미씨는 뉴스 리딩 및 진행, DJ, 리포팅 등 집중적인 아나운서 훈련을 받은 후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유미씨는 "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장애인 중에는 열정, 재능, 끼가 많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장애인은 방송접근권이 제한돼 있죠. 장애인으로서 매스컴의 주인공이 되기는 힘든 현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장애인인)나도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애여성으로서의 '나'를 드러내는 방법 깨우쳐"

'바투Live'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정유미씨.
 '바투Live'에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정유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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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건강치 않아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가 몰려온다는 유미씨. 하지만 방송을 할 때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에너지가 솟는 것 같다고 한다.

유미씨의 표정과 목소리는 늘 밝다. 류마티스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밝은 성격이었는지 묻자 유미씨는 "학창시절은 정말 암울했고,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며 "세상에 나를 내보인다는 것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내성적이었던 유미씨가 세상으로 한 걸음 내딛게 된 것은 20대 초반,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접하게 된 장애인 모임에 나가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 모임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장애인분들을 만나면서, 장애인 중에도 자신감 있게 즐기며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중, 특히 멋진 장애인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뇌성마비 장애로 말을 하는 것도 힘든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 언니는 머리도 길고, 옷도 잘 입고, 한마디로 '화려함 그 자체'였어요. 언니를 보면서 장애여성으로서 '드러내고 산다'는 것이 멋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 이후로 유미씨는 2003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연극 활동을 하고 '장애여성공감'이라는 장애여성 인권운동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는 등 사람들과 많이 만났다. 그들과 부대끼고, 상처도 받고, 또 그 상처를 이겨나가면서 유미씨는 장애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조금씩 깨우쳐왔다고 한다.

"나부터 나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정신적 독립 중요"

그러나 그 동안 유미씨에게도 몇 번의 굴곡이 있었다. 특히 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유미씨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맞서야 했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요리부터 시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홀로 남겨졌다'라는 것을 절감했죠. 그렇지만 모든 일은 '겪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 했어요.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살아갈 방향과 방법을 찾으면서 내가 조금 더 단단해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유미씨는 "부모님이 항상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독립'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미씨는 "장애인들이 단순히 혼자 나와서 사는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은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일찍 깨우쳐요.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죠. 그 벽을 빨리 깨고 나와야 해요. 나 자신부터 나를 사랑해야 남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고, 남들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줄 수 있거든요.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장애인 문화인'을 꿈꾸는 정유미씨.
 '장애인 문화인'을 꿈꾸는 정유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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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씨의 꿈은 '장애인 문화인'이다. 유미씨는 "방송뿐만 아니라 연극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몸짓과 목소리로 사회에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유미씨는 라디오 진행을 맡고 있는 지금도, 미디어센터에서 계속해서 아나운서 교육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나를 채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녀의 말과 눈빛에서 꿈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유미씨에게, 방송인을 꿈꾸는 다른 장애인들을 위한 한마디를 부탁했다.

"사람들은 모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장애인들은 '몸도 이런데 하려는 일이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뭔가 실패하게 되면 위축감이 더 들죠. 그렇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꿈이나 자신의 비전에 대한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요.

자신이 하면서 정말 행복을 느끼는 일이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실패를 하게 된다고 해도,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은 스스로에게 값지게 남거든요. 그 교훈을 바탕으로 꿈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도전하세요."

덧붙이는 글 | 하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장애여성, #바투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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