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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려면 꼭 거쳐 가는 길이 있었다. 지금은 노선이 바뀌어 지나치지 않는 일도 많지만 ‘이제 시내에 다 왔다’는 신호였던 그 건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안 다니는 것 같고, 낡고 녹이 슬어버린 꺼림칙한 건물. 바로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은행이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유흥주점으로 쓰였던 듯 간판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조선은행 건물. 소유권이 민간에 넘어간 후로 화재가 있었고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다.
 조선은행 건물. 소유권이 민간에 넘어간 후로 화재가 있었고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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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물품들을 자국으로 옮겨가던 곳이었다. 내항 인근에 위치한 옛 조선은행 건물은 지난 7월 3일 국가등록문화재 374호로 등록되었다. 일제강점기 건물인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 ‘한 몫’ 했던 은행이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새삼스러워 찾아간 옛 조선은행. 버스를 타고 지나친 적은 많아도 그 앞에 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현재 개인의 소유지로 화재가 난 후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이제 문화재로 등록도 되었겠다, 보상도 이루어지고 슬슬 예전 모습을 되찾을 준비를 해가고 있을까 싶어 찾아간 그 곳. 내년에 국비로 보수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지만 건물은 여전히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무단 침입 시 형사고발하겠다는 주인의 경고문만 여기저기 매직으로 쓰여 있을 뿐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 도로변에 위치한 비석이다. 여기에 조선은행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오는데 채만식 '탁류' 주인공의 직장으로 등장했다는 내용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 도로변에 위치한 비석이다. 여기에 조선은행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오는데 채만식 '탁류' 주인공의 직장으로 등장했다는 내용이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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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에 가려 못 알아보고 지나쳤을 작은 비석이 건물 앞에 있다. ‘이런 것도 있었어?’ 이곳이 조선은행이었음을 알려주는 그 비석에는 이 은행이 채만식의 <탁류> 속 주인공의 직장이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20년 군산 토박이인 나도 처음 서 본 조선은행 군산지점. 깨진 유리, 휑하니 뚫린 벽이 사면을 에워싸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이곳이 문화재로 등록된 곳이라고는 생각 못 할 광경이었다. ‘(경)국가등록문화재 등록(축)’이라는 플래카드도, ‘보수공사 예정, 접근금지’라는 경고도 없다.

매번 보았던 건물 앞을 지나 주변을 뱅 돌아보았다.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없을까 싶어 둘러보는데 건물 옆 광장 쪽 담이 허물어진 것을 봤다.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들어가는 데 제지를 당하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이미 예전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건물인데 문화재 등록 이후에도 접근이 차단되지 않음은 관리 소홀이다. 이보다 앞선 올해 2월 28일, 문화재로 등록된 나가사키18은행도 마찬가지로 여기가 정말 문화재로 등록된 곳인가 싶을 정도로 전혀 생색내지 않고 있었다.

허물어진 담을 넘어 더 가까이에서 본 조선은행 건물. 건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데도 시에서는 어떠한 접근금지 조치도 없었다.
 허물어진 담을 넘어 더 가까이에서 본 조선은행 건물. 건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데도 시에서는 어떠한 접근금지 조치도 없었다.
ⓒ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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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어른부터 중·고등학교 사회과 선생님들까지 ‘군산이 대단한 도시’였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우리가 ‘근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어요?’라고 질문하기도 전에 어른들은 무슨 정부, 어떤 대통령 얘기를 해주었다. 정치도 뭣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지역감정이 생기곤 했다.

몇 십 년 전부터 퇴행을 거듭해오던 군산은 중앙으로부터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이제 찬란한 과거를 보듬기로 했다. 내항을 중심으로 한 과거 도심을 복원해 근대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을 비롯한 근대 건물 복원이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다.

지방 자치제가 활성화 된 이상 지역을 발전시키고 특화하는 건 지역의 몫이다. 시민들도 잘 모르는 문화재 등록 소식, 문화재 등록 이후에도 변함없는 외관 등은 시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시민들의 관심도, 시가 계획한 근대 문화 공간도 군산의 부지런한 행동과 실천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태그:#조선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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