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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강아지
 아이와 강아지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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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셋째날(28일)에는 삼랑진에서 밀양 상동까지 30㎞를 걸었다. 이 날은 밀양강의 강뚝길을 걷는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를 걸으려니 어찌나 힘들던지, 다들 지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단다. 그런 날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끝없이 이어진 강뚝길을 걸었으니, 오죽 힘이 들었을까.

오전 8시, 숙소 앞에서 간단한 준비체조를 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삼랑진교를 건너 마을로 들어갔다. 어느 집 담 옆에 키위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가 보인다. 탐스럽게 달린 키위를 보니 따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야 쓰나. 사진만 찍었다. 그런데, 이거 키위 맞나? 참다래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동네에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한 아이를 보았다. 이 아이, 강아지를 묶은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니까 아이는 폼을 잡는다. 그런데, 강아지가 말썽이다. 아이 옆에 잘 앉아있던 이 녀석, 갑자기 옆에 세워 놓은 트럭 아래로 들어가 버린다. 아이는 강아지를 끌어내려고 새끼줄을 잡아당기고, 강아지는 안 끌려가려고 버팅기고.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게 하는 귀여운 아이였다.

초등학생 현근이도 30㎞ 잘만 걷네

국토대장정 최연소참가자 이현근.
 국토대장정 최연소참가자 이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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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대장정 최연소 참가자는 현근이다. 인천 영선초등학교 5학년이란다. 현근이는 엄마와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참가했다. 얼떨결에 엄마를 따라왔단다. 물론 엄마의 설명이다. 어른도 하루에 30㎞를 걷기가 쉽지 않은데 현근이는 힘들어하면서도 잘 걸었다.

현근이 엄마는 "혼자 왔다면 힘들다고 투덜거렸을 텐데 현근이를 챙기느라 정작 나는 힘든 줄도 모르겠다"면서 웃었다. 이들은 3박4일 예정이었는데 하루를 더 걸었다. 대단한 현근이!

가장 나이가 많은 참가자는 닉네임 '노을'님이었다. 이 분은 15박16일을 꽉 채울 예정이라고 했다.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이유를 물었다.

"이 땅에 내 발자취를, 내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어요."

가족들은 힘들다며 하지 말라고 반대를 했단다. 그래도 꼭 하고 싶으셨단다.

'국토대장정' 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주부도 있고, 교사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퇴역군인도 있다. 친구와 같이 온 사람들도 있고, 혼자 온 사람들도 있다. 서울에서 온 사람도 있고, 부산에서 온 사람도 있고, 강원도 정선에서 온 사람도 있고, 대전에서 온 사람도 있고, 광주에서 온 사람도 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낯설었으나, 밥을 같이 먹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자다 보니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길에서 헤어지지만 다시 길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그들과 헤어질 때 다음에 길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한다.

실·바늘에 스포츠테이프까지... 물집이 무서워

밀양강 강뚝길
 밀양강 강뚝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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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강뚝길을 걸었다. 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햇볕은 뜨겁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떠있다. 멀리 산 능선이 보인다. 강뚝길은 멀리서 볼 때는 운치가 있지만 직접 걸으니 힘들다. 땡볕만 아니라면 걷기가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

그늘을 찾아 다리 아래로 내려가 쉰다. 이럴 때 그늘이 참 고맙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발의 상태를 살펴본다. 아직 물집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물집이 생긴 사람이 여럿 있다. 실을 꿴 바늘로 물집을 터뜨리고 1회용 밴드를 붙이고, 스포츠테이프까지 붙인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나처럼 3박4일 일정인 사람은 괜찮지만 15박16일을 저 발로 어찌 걸어가나, 걱정스럽다.

다시 강을 따라 걷는다. 덥다, 정말 덥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은 손수건이 푹 젖었다. 짜면 물이 나온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 때 도착한 곳이 승학사. 승학사 옆에는 터널이 하나 있다. 길이는 길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터널 끝에서 불어온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절로 들어가 화장실에 다녀오고 물통에 물도 채운다. 땀을 많이 흘리니 갈증이 심해지고,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러니 물이 떨어지면 안 된다.

승학사 스님과 보살님,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고맙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도 있지만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야, 이 놈들아, 할 일 없으면 논에 들어가 피나 뽑지 뭐하는 짓들이여!"

둘째날, 어느 동네를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일행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약주를 한 잔 하신 것 같았다.

터널 안에서 쉬고 있으려니 트럭 한대가 온다. 이런, 차가 다니는 도로였던 것이다. 부랴부랴 돗자리를 걷고 비켜준다.

낙동강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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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걷는데, 밥은 어떻게 먹지?

다시 강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마을길을 걷고, 철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듬성듬성 집이 보이고, 밭이 보인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어느 마을의 마을회관을 빌리려고 했는데 거절 당했다. 해서 그 동네의 커다란 팽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나무가 어찌나 크고 우람하던지 몇 백 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큰 나무의 그늘은 역시나 넓었다. 70여명이 그 그늘 아래서 쉬었으니까.

점심을 먹은 뒤 돗자리 위에서 낮잠을 잤다. 햇볕은 뜨거웠으나, 나무그늘 아래에 누워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에서 부는 바람인가 보다.

국토대장정 길에 오른 사람들은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까? 매 끼니를 사 먹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식사당번을 정해서 직접 해먹는다.

식사당번은 저녁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책임진다. 메뉴도 알아서 정한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식기는 식사당번조가 설거지를 하고 밥그릇과 국그릇은 개인이 지참하는 필수품으로 사용 후 각자 씻는다.

저녁에 식사당번조는 한 시간쯤 일찍 숙소에 도착해서 식사준비를 한다. 아침에도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 점심식사는 걷는 도중에  길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점심밥을 해서 진행차량으로 실어 나른다.

2시 반에 다시 길 위에 선다. 밀양역을 지나고, 밀양우체국을 지난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우체국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침에 가족에게 엽서를 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엽서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메일이 아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엽서를 쓰거나 받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나도 긴 여행길에 오르게 되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직접 엽서를 써야겠다. 그런데, 받은 이들이 반가워하려나?

밀양 시내에 들어가니 영화 <밀양>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밀양에는 처음 와 본다. 다음 휴식지는 밀양세무서였다. 밀양세무서의 직원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쉬라고 했단다. 어머, 고마워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쐰다. 그래도 덥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날, 뙤약볕 아래를 걷게 될 줄이야.

나만 지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죄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만 걷고 싶어진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계속 걸어야 한다.

모텔에서 침낭 덮고 잤다, 모텔에서 빨래했다

똥개촬영지 용평터널
 똥개촬영지 용평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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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개> 촬영지인 용평터널이 나타난다. 밀양시에서 표지판을 만들어 놨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서 영화 장면을 떠올리려고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터널 안은 시원하다. 서늘한 습기가 느껴진다. 터널이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기대보다 터널 길이가 짧다.

이 날 우리가 묵을 숙소는 무인모텔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무인'이 아니라 '유인'이었다. 주인이 나와서 우리를 맞이했으니까. 그렇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했다는 건 아니고.

이 모텔, 기억에 남는다. 아주 싼값에 빌렸기 때문에 이불이나 베개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침낭을 덮고 잤다. 그래도 물은 펑펑 나와서 좋았다. 덕분에 빨래도 마음 놓고 할 수 있었으니까. 모텔 욕실에서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라니…. 도보여행을 하다 보니 별짓을 다한다.

저녁식사는 모텔에서 할 수 없어 강 옆에서 했다.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어 식사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녁식사 메뉴는 북어국에 돼지고기 두루치기. 특별메뉴였다. 솔낭구 대장님이 고기값을 내는 데 아까워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는 농담을 해 한참을 웃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날이 저문다. 길에서 보낸 하루가 또 간다. 내가 걸어온 길에는 내 흔적이 남아 있을까? 길에는 흔적이 남지 않아도 내 마음에는 내가 걸었던 길이 오래도록 남지 않을까? 마음에 새기면 아주 오래 간다는데...

3박4일의 마지막 날(29일), 처음 계획은 하루를 꼬박 걷는 것이었으나 청도역에서 빠지기로 했다. 가창 삼거리까지 걸어가서 다시 역을 찾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이유이긴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날은 36㎞를 걸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리 예약했던 숙소에서 잘 수 없게 되어 6㎞를 더 걸어야 한단다. 게다가 그 길에는 팔조령의 오르막길 4㎞이 포함되어 있단다. 오르막길만 있나, 내리막길도 4㎞란다. 그것도 산길이 아니라 아스팔트길.

그 이야기를 듣자 그만 걷고 싶어졌다. 물집이 생긴 발바닥은 그만 걸으라는 듯 쿡쿡 쑤셔대고 있었다. 이 날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사람은 나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물집이 나보다 더 심하게 잡힌 상태였다. 이들과 함께 청도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손을 흔들어 준 신도마을 할머니들
 손을 흔들어 준 신도마을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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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짓 다시는 안해 안해 안해... 해

청도로 가는 길은 국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길 옆에는 무궁화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그 뿐인가. 복숭아나무도 많았고, 감나무도 많았다. 청도가 소싸움 뿐만 아니라 복숭아와 감도 유명한 모양이었다.

새마을운동 발상지인 신도마을을 지나간다.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고, 새마을기가 줄지어 꽂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길가의 그늘 아래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있다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신다. 길 아래로 철길이 보이고, 화물차가 요란한 소음을 뿜어내며 지나간다.

아, 드디어 청도역이다. 3박 4일간의 일정이 청도역에서 끝났다. 일행과 청도역에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부산에서 청도까지 3박4일을 걸었다. 걸을 때는 아주 먼 거리 같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걸은 거리를 따져보니 100㎞쯤 된다.

나는 왜 이 길을 걸었을까? 아무도 내게 이 길을 걸으라고 강요한 사람이 없다. 내가 걷고 싶어서 걸었을 뿐이다. 쉽지 않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은 덕분에 등과 허리 주변에 땀띠가 잔뜩 났다. 이렇게 많은 땀띠가 나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발바닥에는 커다란 물집이 생겼다. 이것도 태어나서 처음이다.

청도역에서 기차표를 살 때까지만 해도, 아니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할 때까지만 해도, 아니 영등포역에 내릴 때까지만 해도 이번 경험으로 충분하니 다시는 국토대장정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길 위로 나설 것 같다.

국토대장정에 나선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이들의 일정은 8월 10일에 서울시청 앞에 도착하면서 끝날 예정이다. 그들이 모든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태그:#도보여행, #국토대장정, #청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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