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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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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잔뜩 꾸려 넣은 배낭은 묵직했다. 무게를 달아보니 7kg이 조금 넘는다. 이걸 지고 하루에 30km를 걸을 수 있을까? 7월 16일부터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 배낭의 무게는 10kg이었다. 그래서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넣으려고 노력했다. 등산보다 도보여행이 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매트리스와 침낭을 넣은 비닐가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볍다. 매트리스와 침낭은 진행차량에 실어준다고 했으니 무거워도 상관은 없으리라.

지난 7월 26일,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은 부산시청에서 15박 16일의 일정으로 서울시청까지 480km를 걷는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나는 3박 4일 동안 이들과 함께 부산시청에서 청도역까지 걸었다.

3박 4일 정도라면 크게 무리하지 않고 가뿐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 걸어보니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땡볕 아래에서 하루에 꼬박 30km 이상 걷기는 쉽지 않았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파고들었고, 발에는 물집이 잡혔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길게 뻗은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아 걷다가 고개를 들어 길을 보면 막막함이 밀려들었다. 언제 저 길을 다 걷나.

나는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국토대장정에 나선 '인도행' 회원들은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청도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탈 때만 해도 마음이 가벼웠는데 막상 돌아오니 몸만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길 위에 있는 것 같다.

부산시청에서 서울시청까지 걷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부산시청 앞에서 발대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부산시청 앞에서 발대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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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청을 출발한 시간은 오후 3시. 출발에 앞서 간단한 발대식을 했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사람은 63명. 이들 중 40명 가량이 완주를 하고, 나머지는 휴가 기간을 이용해 2박 3일, 3박 4일, 7박 8일 등의 일정으로 참가한 부분 참여자다. 중간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첫날(26일)은 부산시청부터 구포역까지 14km를 걸었다. 구포역 앞의 숙소인 모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30분경. 3시간 반쯤 걸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걸음이 빠르다. 이 정도야 뭐 가뿐하지, 이런 분위기라고나 할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구포역 앞에 도착하기 전에 시장을 지나왔는데, 그 시장에서 본 개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시장 입구에는 유난히 '건강보신원'이 많았다. 그 보신원 앞마다 쇠창살 우리가 하나씩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덩치가 크고 털 색깔이 누런 개들이 갇혀 있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 개들의 어떤 운명에 처할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래서인지 개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걸음을 빨리 해서 그곳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면서 좋은 것만 봐야 하는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산길을 걸으면 나무도 보고 풀도 보고 꽃도 보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볼 수 있지만 저자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보일 수밖에 없다.

둘째날(27일)은 구포에서 삼랑진까지 33km를 걸었다. 구포대교를 건너 낙동강과 만났고 김해대교를 건넜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 다리들을 걸어서 건널 수 있어 기쁘다고. 언제 다시 이 다리를 건널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더 기쁘다고.

김해에서는 어느 아파트 단지 앞 비탈길의 그늘 아래서 쉬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쉬고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쳐다본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궁금한 모양이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서울시청까지 갑니다. 혼자라면 그런 시선들이 버거울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리라.

안전하게 걸으려면 편안한 휴식은 필수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스포츠테이프를 미리 붙인다.
 물집을 예방하기 위해 스포츠테이프를 미리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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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때는 신발을 벗는 것은 물론, 양말까지 벗는다. 오래 걸으려면 아무래도 발이 잘 버텨줘야 하기 때문이다. 발에 물집이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물집 잡힌 발로 걷기, 그거 엄청난 고통이다. 그래서 미리부터 스포츠테이프를 붙여 물집을 예방한다. 하지만 오래 걸으면 아무래도 물집은 생기기 마련.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맞더라.

김해천문대 입구의 쉼터에서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을 포함한 휴식시간은 2시간 반.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그래야 걷는 데 무리가 없다. 서둘러서 빨리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안전하게 걷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일정은 오전 6시부터 시작된다. 6시에 기상, 7시부터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출발한다. 50분 걷고, 10분간 휴식하기를 반복하면서 12시까지 걷는다. 12시부터 2시 반까지 점심시간 및 휴식시간. 오후에도 50분 걷고 10분간 쉬기를 반복하면서 숙소까지 걷는다. 내가 걷는 동안 이 규칙은 아주 잘 지켜졌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에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고 빨래를 한다. 15박16일간 입을 옷을 전부 짊어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옷을 빨아 입어야 한다. 그러니 빨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배낭에 매달린 빨래들. 양말이 매달린 것도 보인다.
 배낭에 매달린 빨래들. 양말이 매달린 것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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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빨래가 말라주면 좋으련만 그거야 희망사항일 뿐. 안 마른 빨래는 배낭에 매달고 걸으면서 말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걷기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나면 배낭 위에 온갖 빨래가 걸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날씨가 좋을 때의 이야기다. 비라도 내리면 빨래는 배낭 안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배낭에 매달린 빨래 때문에 재미있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도보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일행 중의 한 사람(남자)이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걷고 있었다. 맨 위에 반바지가, 그 아래에는 반소매 웃옷이 걸려 있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그러려니 했는데 일행 중 짓궂은 사람 하나가 걷다가 그 빨래들을 하나씩 들췄다.

반바지 들추니, 웃옷 나오고, 웃옷 들추니… 저런, 남자용 삼각팬티가 숨어 있는 거라. 팬티 주인, 놀라서 달음박질 쳐서 도망가고… 저렇게 꽁꽁 숨겨서야 팬티가 마르겠나.

국토 대장정이라고 하면 비장하게 마음을 다지면서 걷는 것을 상상할 수 있지만 이런 일도 일어나 한바탕 웃기도 한다. 덕분에 즐거워진다. 어떤 이는 사각 팬티를 아예 내놓고 말리기도 한다.

걸으면서 빨래 말리기,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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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으로 가는 국도를 걸었다. 마을을 지나고 또 다른 마을을 지난다. 땡볕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걸었더니 이런, 종아리가 벌겋게 익었다.

햇볕은 얼굴은 물론이고 드러난 팔이나 다리를 사정없이 태운다. 여름 햇볕, 참으로 무섭다. 피부가 벌겋게 익은 사람이 여럿이다. 여자들은 이런 저런 것들로 얼굴과 팔, 다리를 가렸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그냥 드러내고 있어서 피부가 벌겋게 익어 버렸다.

저거, 엄청 쓰라릴 텐데… 걱정스럽다.

국도를 걸을 때는 자동차와 마주보면서 걷는다. 그래야 앞에서 차가 오는 것이 보여 위험한 순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갓길이 있는 경우는 그래도 낫지만 갓길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길을 걸을 때 대형 트럭이나 대형버스가 달려오면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대형차가 지나갈 때는 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서 걸어야 안전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국도를 걷자니 지루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다. 걷기에 익숙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잠시, 발바닥에 모래가 박힌 것 같다. 이거, 좋지 않은 징조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불길한 조짐이다.

50km 울트라도보를 할 때,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 걷다가 여러 번 신발을 벗어서 털었다. 그런데도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집이 생길 때 그런 느낌이 든단다.

둘째날 숙소는 무척산 관광예술원이었다. 무척산은 경상남도 양산시와 김해시 생림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03미터. 정상부근에 천지라는 호수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숙소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샤워실의 물이 부족해 씻을 때 애를 먹었다.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서 씻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씻고 나서 저녁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 메뉴는 카레덮밥이었다.


태그:#도보여행, #국토대장정, #부산시청, #구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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