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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 김용택 '섬진강 1' 몇 토막

 

거기 그곳에 열일곱 소녀의 파아란 꿈이 하얀 물방울 톡톡톡 튕기며 끝없이 끝없이 흐른다. 거기 그곳에 전라도 실핏줄처럼 흐르는 강물을 꿀떡꿀떡 마시며 자라는 산과 들, 살가운 사람들이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강촌마을 사이로 뿌우우∼칙칙폭폭~ 뿌우우∼칙칙폭폭~ 아련한 추억 속의 증기기관차가 실뱀처럼 달린다.

 

거기 섬진강 파아란 강물 속에 은어와 다슬기, 참게가 사이좋게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 거기 샌프란시코 금문교를 닮은 붉은 빛의 두가교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흔들 '구름다리'로 휘청거린다. 거기 작은 오솔길에 핑크빛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지쳐가는 녹음 사이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바람처럼 내달린다.    

 

거기 강물이 거슬러 내리며 쑤욱쑥 낳은 초록빛 풀밭 위에 누렁이 소 몇 마리 예쁜 송아지에게 퉁퉁 불은 젖을 빨리며 풀을 뜯고 있다. 거기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진초록빛 풀밭 위에 강물빛 쏘옥 닮은 하늘빛 텐트가 총총총 놓여 있다. 거기 시원스럽게 굽이쳐 흐르는 강물에 정강이까지 담근 낚시꾼과 다슬기, 참게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올 여름엔 갑자기 바다보다 강이 더 좋아졌어

 

"아빠! 올 여름은 섬진강에서 보내자."

"바닷가에 가자고 해 놓고 갑자기 웬 섬진강?"

"갑자기 바다보다 강이 더 좋아졌어. 강물은 바닷물처럼 짜지도 않고, 수영을 하고 난 뒤에도 샤워를 따로 할 필요가 없잖아."

"니들이 섬진강에 대해서 좀 알아?"

"응. 김용택 시인의 시도 읽어 보았고, 거기 가면 기차까지 탈 수 있잖아."

 

아무리 자주 찾아도 언제나 마음의 묵은 때를 깨끗하게 헹궈주는 섬진강.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에서 샘솟아 전라북도 남동부와 전라남도 북동부, 경상남도 남동부를 흐르고 흘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티 한 점 없이 맑은 물살 곱기로 이름이 높은 강이다. 총길이 212.3km.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인 섬진강은 강 너비가 비좁고 강바닥에 울퉁불퉁한 바위가 많아 래프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며, 금빛 모래가 곱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맑고 푸르른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곳에는 아름다운 산과 들, 한적한 강변마을 등이 많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옛 고향의 향수에 젖게 한다.

 

섬진강(蟾津江)이란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고려 말엽 우왕 1385년에 광양만과 섬진강 곳곳에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하루는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려 할 때 진상면 섬거에 살던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와 진을 치고 울었다.

 

이에 깜짝 놀란 왜구들이 두꺼비의 울음소리를 군사들의 함성으로 착각해 '걸음아 날 살려라'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강을 두꺼비가 나타난 강이라 하여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전남 광양군 다압면 섬진마을에 서 있는 '섬진강 유래비'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실핏줄을 섞어주는 살가운 강

 

전라도와 경상도의 실핏줄을 섞어주는 살가운 강 섬진강. 섬진강은 재첩이 많이 잡히는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의 고운 모래와 풍경도 참 곱다. 하지만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곡성 압록유원지에서 옛 곡성역까지 마악 용트림을 하고 있는 청룡처럼 흘러내리는 얕은 강물과 금빛 모래밭, 빼어난 산과 그 산자락에 올망졸망 붙어있는 들이 특히 아름답다.  

 

섬진강에는 낚시터도 꽤 많다. 압록유원지에는 북을 싣고 가다 빠뜨렸다 하여 '북소'라 부르는 낚시터는 물론 강 하류 곳곳에도 붕어, 잉어, 메기 등이 많이 낚이는 낚시터가 수두룩하다. 특히 이곳 압록유원지에서 곡성 쪽으로 섬진강과 어깨동무하며 흐르는 54km의 강변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딱이다.

 

6월14일(토). 마음이 쓸쓸할 때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마다 늘상 눈에 밟히는 섬진강을 찾았다. 그것도 홀로 살가운 고향을 찾듯이 그렇게. 그날 나그네는 곡성 압록유원지를 거쳐 구례군과 경계를 이루는 곡성 가정역과 산허리를 옆구리에 낀 옛 곡성역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윤슬이 톡톡 터지는 섬진강을 은어떼처럼 거슬러 올랐다.

 

나그네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압록유원지. 티 없이 맑은 섬진강 금빛 모래밭 곳곳에는 돗자리에 앉아 참외와 토마토, 수박을 먹는 사람들,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 올린 채 다슬기와 참게를 잡는 사람들, 루어낚시를 하는 사람들, 파아란 강물에 온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신나게 치는 아이들이 하나의 풍경화로 다가선다.

 

진초록빛 산과 연초록빛 들, 청자빛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을 담은 섬진강과 푸르르게 푸르게 흘러내리는 강물에 사람까지 한데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넋을 빼게 만든다. 그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새까맣게 그을린 까까머리 소년도 들어 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나그네의 어린 날의 모습이다.

 

 

발 담그면 속살까지 보일 것 같은 푸르른 강물

 

압록유원지에서 다슬기 수제비를 한 그릇 먹고 마음의 거울처럼 흐르는 섬진강을 거슬러 가정역으로 향한다. 가정역 근처에 닿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섬진강변 풀밭에서 송아지에게 젖을 빨리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낯익은 누렁이소다. 오랜만에 조선 토종 누렁이소를 바라보자 가슴 한 곳이 찡해진다.

 

저렇게 멋진 우리 소를 두고, 광우병이 의심되는 30개월 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얄밉다. 누렁이소를 뒤로 하고 저만치 붉은 색으로 걸려 있는 두가교와 그 옆에 쌍둥이처럼 놓여 있는 두가세월교를 바라본다. 두 개의 다리가 빤히 바라다 보이는 섬진강변 풀밭 곳곳에는 가족형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청소년 야영장이 있다.

 

곡성군 고남면 두가리에 만들어진 이 야영장 주변의 강변 풍경은 특히 뛰어나다. 윤슬을 톡톡 터뜨리고 있는 강물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산, 저만치 바라다 보이는 낡은 증기기관차, 산허리 곳곳에 박혀 있는 방갈로, 발을 담그면 속살까지 다 보일 정도로 티 없이 맑게 흐르는 푸르른 강물. 나그네도 "어 시원해"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이곳 야영장에서는 방갈로와 텐트 등도 대여한다. 이 야영장을 이용하려면 미리 연락을 해야 한다. 야영장 가까이 있는 곡성 섬진강 천문대(오후2시~밤10시)는 낮에는 태양을, 밤에는 별자리를 관측할 수 있는 곳이다. 야영장 주변 강가에는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산책로를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으며, 자전거도 대여한다.

 

이곳에서 압록유원지까지 래프팅도 즐길 수 있다. 야영장 주변에는 강당, 식당, 래프팅 사무실, 매점, 취사장, 세면장, 화장실 등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야영비는 1팀당 1박에 2만 원(전기사용료 별도), 자전거 대여료는 1인 3천 원, 2인 4천원, 1시간30분 걸리는 래프팅은 1인 2만5천 원. 곡성 섬진강천문대 입장료 어른 1천8백 원(야간 3천원), 청소년 1천2백 원(야간 2천 원).

 

 

추억의 증기기관차 타고 섬진강 거슬러 오르며 예쁜 추억 하나 새긴다

 

야영장 건너편 산비탈 한 귀퉁이에 추억의 기차가 세워져 있는 가정역이 있다. 곡성 기차마을에서 운행하는 기차가 이곳에서 멈춘다. 이곳 가정역에서 섬진강을 끼고 다니는 곡성 기차마을까지 다니는 추억의 증기 기관차를 탈 수 있다. 기차표는 www.gstrain.co.kr로 신청하면 된다.

 

이곳에 갔다면 티 없이 맑게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다니는 증기기관차를 타보는 것도 또 하나의 예쁜 추억이 될 수 있다. 가정역에서 '섬진강 기차마을'로 변한 옛 곡성역까지 13.2km를 태극기를 달고 시속 30~40km로 달리는 증기기관차. 이 기관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스치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스스로 풍경이 된다. 왕복 1시간10분. 312명(좌석 162명) 탑승.

 

가정역 바로 앞에는 붉은 빛의 두가교와 두가세월교가 나란히 놓여 있다. 이 다리는 곡성 고달면 두가리와 구례 오곡면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에 세워진 다리(총길이 168m)이다. 다리 위를 걸어가면 출렁출렁 흔들린다 하여 일명 '흔들다리', '구름다리'라 불리는 이 다리에 얽힌 사연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안내판에 씌어진 두가교 유래에 따르면 여름철 큰 비만 오면 불어난 강물로 인해 여러 날씩 고립되어 그 불편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1979년 6월에는 계속되는 장마로 나룻배 밧줄이 낡아 사고가 있을까 염려하여 마을 사람 6명이 새로 밧줄을 매던 도중 급류에 휩쓸려 모두 실종되는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강물에 발 담근 채 납작돌 하나 집어 물수제비 날려보자

 

이러한 딱한 사정을 들은 전남도지사가 현수교 형식의 옛 두가교(두가세월교)를 1981년 12월에 놓았다. 하지만 1997년 8월 집중호우로 교각이 붕괴돼 철거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이 희생자들을 기리고자 이 자리에 기념비까지 세워 추모하고 있어 붕괴된 옛 두가교를 그대로 보존하고, 그 옆에 지금의 두가교를 2003년 8월 새롭게 세웠다.  

 

두가교 앞에 선다. 두가교 들머리에 있는 등나무 넝쿨이 우거진 초록 동굴이 무더위를 또한번 시원스럽게 쫓아낸다. 두가교에 올라서자 출렁출렁 온몸이 흔들거린다. 그 흔들거림 속에 푸르른 섬진강이 맑은 강물을 촐싹이며 흔들리고, 산과 들이 흔들리고, 저만치 강물에 시원스레 발을 담근 채 루어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따라 흔들린다.  

 

가정역에 도착하자 거기 나그네가 초등학교 다닐 때 보았던 기차와 간이의자가 추억처럼 남아 있다. 가정역에서 섬진강가로 내려와 다슬기가 있는 바닥까지 환히 보이는 맑은 강물에 손을 담근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정강이까지 끌어 올리며 발까지 담근다. '으~'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시원하다. 수영복만 가져 왔더라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강물 속에 뛰어들어 물장구라도 치고 싶다.

 

강물에 발을 담근 채 납작한 돌 하나 집어 물수제비를 날려본다. 톡, 톡, 톡, 세 번 튄 납작 돌이 뽀르르 강물 속으로 말려든다. 저만치 산비탈에 시원스럽게 뚫린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연인 몇 쌍이 쌩긋 웃으며 강물의 흐름에 맞추어 페달을 밟는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다가선다.

 

곡성군 관계자는 "곡성군은 관광자원은 별로 없는 가난한 군으로 갈수록 인구조차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곡성군 관광사업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섬진강변을 달리는 기차마을 사업"이라며 "이 사업으로 해마다 외지 관광객 60만 명 정도가 찾아와 8억 원 정도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섬진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거슬러 오르다가 섬진강에서 직접 잡은 은어구이와 다슬기 수제비, 참게탕도 먹어보자. 더불어 가정역 가까이 있는 농촌체험학교, 심청마을, 호곡나루터, 섬진강 기차마을 등도 둘러보자. 그래도 심심해지면 티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른 섬진강물에 발을 담그고 루어낚시나 래프팅을 즐기는 것도 불볕더위를 쫓는 생활의 지혜다.

 

여름철 불볕더위를 한꺼번에 쫓아내는 피서의 고향 섬진강. 그날 나그네는 티 없이 맑고 시원스럽게 흐르는 섬진강을 마음의 고향으로 새겼다. 칙칙폭폭~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증기기관차, 비록 녹음된 소리이기는 하지만 뿌우우 하고 달리는 추억의 그 소리, 섬진강변의 산과 들을 내 마음의 앨범에 곱게 접어 넣었다.

덧붙이는 글 | ☞가는 길 / 서울-순천(곡성방향)-압록유원지-17번 국도-두가교-곡성 섬진강 천문대-청소년 야영장-가정역-곡성 섬진강 자연학교(자전거 대여)-섬진강 하이킹 

*주변 볼거리 / 곡성 태안사, 순천 선암사, 낙안읍성, 고인돌 공원, 송광사, 감로암, 구례 천은사, 화엄사.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섬진강, #가정역, #두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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