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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남긴 것, 주권 그리고 생명

 

지난 두 달, 대한민국은 실로 '촛불혁명'을 겪었다.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미친 불도저 같은 정책들에 짱돌을 던졌고, 대통령 지지율을 20% 이하로 끌어내렸다. 쇠고기 재협상이라는 결정적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대선 이후 좌절하고 있었던 개혁적 시민들이 집결했으며 그들의 자신감을 회복되었다. 백만의 촛불 바다에서 시민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

 

촛불의 메시지는 이랬다. 첫째, "우리가 주권자다". 둘째, "생명이 우선이다". 87년 민주항쟁의 성과인 '직선제'는 국민주권의 한 단계 확장이었다. 그런데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통치자는, 그가 시장지상주의자든 인종주의자든 우리는 그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권력이 합법적이란 이유로 참아야 한다면 국민주권은 무엇인가?

 

세계화를 앞세운 경제논리에 꾹 눌려있던 국민 앞에 촛불소녀가 나서 외쳤다. "난 열 다섯 살이야. 죽기 싫어!" 국민이 그제야 깼다. 그래, 생명보다 우선하는 경제가 어딨어? 그런 경제를 강요하는 세계화라면 우리는 거부할 수 있지 않아? 근데 이 일을 부시의 골프카트나 모는 저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거야?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해!

 

국민주권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넘어 생명과 안전-이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한나라당은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도 아니고… 정권 퇴진은 촛불이 변질된 증거다"라고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정부는 필요하다면 끌어내려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촛불광장에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집회' 자체를 처음 와 본다면서도 입을 모아 "이명박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촛불은 실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단기속성코스'였다.

 

촛불의 에너지를 담아 낼 정당정치가 필요하다

 

촛불을 아직 끌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이더라도, 촛불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분명히 있다. 특히 생활 속으로, 지역 속으로 촛불을 가져가자는 의견이 많다.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민주주의의 단기속성코스'는 빨리 배운 만큼 빨리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촛불의 역능이 제도정치를 변화시키고, 그 안에 영토를 구축해야만 한다. 

 

이는 '직접민주주의냐, 제도정치냐'하는 잘못된 이분법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 거리의 운동 없는 제도정치는 가장 좋은 상황에서도 관료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도정치의 변화가 없으면 거리의 운동으로 얻어내는 성과는, 그것이 근본적 대혁명이 아닌 이상, 언제나 불안한 것이다. 당장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쇠고기와 대운하 문제를 잠시 미룬 채 대체복무제, 분양가 상한제 등의 개혁성과부터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 촛불이 완전히 잠잠해지는 순간 쇠고기와 대운하 역시 다시 출발점으로 가져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거리의 촛불을 1년 내내 유지할 수 있는가? 기네스북에 올라야 마땅한 두 달의 장기항전이었다. 특히 여성, 청소년, 가족 단위의 참여가 핵심이었다. 피로의 누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을 매일 매일 이어가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제도정치를 보자면, 거긴 촛불의 입장에서 무덤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떤 통쾌한 변화를 저 국회에 기대하겠는가? 촛불의 뜻이 어떻게 반영될 수 있겠는가? 진보정당이 대안이라고 한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여전히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높이 뛰었을 때도 합쳐서 10~15%다.

 

 

진보정당들은 이번 촛불정국에 성실히 참여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성실한 참여자 이상의 역할을 했는가? 민주노동당은 '강달프'의 기백으로 버텼고 진보신당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칼라TV> '리포터'였으며 사회당은 시민들이 직접 쓴 피켓으로 시청 앞에 매일 '시민산성'을 만드는 것으로도 벅찼다.

 

이것은 진보정당들의 능력 부족이기도 했지만, 시민들 스스로 표현하고 발언하려는 의지가 정당들의 지도력을 능가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결국 여기에 답이 있다. 촛불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정치의식을, 역시 그렇게 다양하게 반영하는 정치가 제도 내에 가능해야 한다. 즉 더 많은 정당, 더 활발한 정당정치가 탄생해야 한다.

 

'아고라당'을 만들자, '촛불당'을 만들자고 한다. 환영한다. 하지만 두 가지를 지적한다. 하나는, 아고라 안에도 격렬한 논쟁이 잠재된 의견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촛불을 함께 들었다는 이유로 하나의 통일정당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또 하나는 현재 한국의 정당법이 그런 역동적 당 창건운동을 철저히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의 민주주의는 더 많은 정당들의 민주주의 속에서 성장·전화하게 될 것이다. 아고라 당, 촛불당 주장이 그저 냉소적 반(反)정치를 뜻하는 슬로건이 아니라면, 정당정치를 바꿈으로써 실제로 아고라당과 촛불당이 가능하도록 함께 시민행동에 나서야 한다.

 

촛불소녀의 정당가입을 허하라!

 

 

그럼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단적으로 한국의 정당법은 청소년의 정당가입을 불허하고 있다. 독일 사민당의 경우 14세면 당원가입이 가능하다. 당원 1천명의 시도당 5개를 요구하는 규정도 돈과 조직을 가진 정치세력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중앙당을 서울에만 두는 '전국정당' 규정도 완화되어야 한다. '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그런 깃발을 보았다)이 지방선거에 왜 정당의 이름으로 출마할 수 없는가? 그밖에 공무원, 교사의 정당가입 허용, 완전 선거공영제의 실시, 텔레비전 광고의 정당별 의무배당,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의 도입도 꼭 필요한 개혁이다. 

 

평소에는 각자 다른 이름으로 지역과 부문에서 생활정치를 펴며 진보의 영향력을 확대하다가 선거 시기에 '선거연합'으로 모이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 독일좌파당의 약진은 2005년 좌파 정치세력들이 선거연합을 통해 출마하여 의미 있는 득표를 얻었기에 가능했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은 99년 '제5공화국운동'이라는 선거연합을 통해 당선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의 목적은, 더 많은 정당이 생겨나고 합종연횡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것이 정당의 '난립'을 가져온다는 우려는, 촛불의 힘이 바로 다양성에서 나왔음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생물종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도 다양성이 건강함의 지표이다.

 

기존의 진보정당들도 정당정치 개혁에 절실하게 나서야 한다. 자신의 깃발을 크게 만들고 쪽수를 얼마간 늘리는 것만이 노력의 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의 정치인 일부는 과거에도 군소정당의 정치진출을 용이하게 할 관계법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자조직의 전망을 넘어 촛불운동 전체의 전망을 봐야만 한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초록당, 생명평화당, 아고라당, 촛불당, 배운여자당 등등 모두 깃발을 들자. 생활에서 현장에서 각자 더 많은 국민과 누리꾼의 요구를 수렴하고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자. 같이 싸우자. 정당법과 정치관계법을 개정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자. 백만 서명운동에 나서자. 2010년을 향한 촛불정치의 네트워크를 만들자.

 

촛불의 진화는 끊임없이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잿빛의 여의도정치를 무지갯빛 시민정치로 바꿔내는 것, 여기 우리의 과제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오준호 기자는 사회당 서울시당 위원장입니다. http://blog.naver.com/interojh


태그:#촛불, #정당, #사회당,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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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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