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라 제30대 문무왕(674)이 별궁으로 창건한 곳으로 이곳 연못에서 약 3천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 안압지 신라 제30대 문무왕(674)이 별궁으로 창건한 곳으로 이곳 연못에서 약 3천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 손은영

관련사진보기


"지금이 절정이래! 얼른 가방 챙겨! 휴대폰은? 카메라는? 내 수첩 못 봤어? "

벌써 6월 중순부터 경주 안압지의 수련이 한창이란다. 7월을 9일이나 보낸 이곳저곳의 블로그에선 이미 만개한 수련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소풍객의 모습이 자주 보였다. 4만㎡로 펼쳐진 수련과 연꽃이 신라 문무왕의 연못인 안압지 바로 옆에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날짜 잘못 본 거 아니야? "

"이게 뭐야, 다 꽃봉오리잖아? 날짜나 사진 잘못 본 거 아니야? "

함께 간 부모님과 나는 꽁꽁 입을 다문 수련 모습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미리 사전조사도 않고 무작정 떠난 게 문제다. 보통 수련이나 연꽃은 오전 10시 부터 오후 1시 까지 만개한 후 점차 꽃잎을 닫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때는 이미 오후4시를 훌쩍 넘은 시각이었으니 꽃잎들이 닫혀도 단단히 닫힌 뒤다.

국립경주박물관 내 전시장 중 하나인 '고고관'에서는 주제별, 시대별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 금으로 만든 장신구 중 귀걸이 국립경주박물관 내 전시장 중 하나인 '고고관'에서는 주제별, 시대별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 손은영

관련사진보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 곳은 '국립경주박물관'이었다. 옥외전시장을 제외한 세 곳의 전시장은 각각 주제별, 시대별로 신라의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띈 것은 세밀하게 세공한 장신구들이었다. 엄마와 함께 화려한 장신구를 보며 신라시대 여성들의 생활을 잠시 가늠해 보기도 했다.

새롭기만 한 경주의 유물과 '코 없는 불상'

박물관 내 많은 수의 불상이 코가 없다.
 박물관 내 많은 수의 불상이 코가 없다.
ⓒ 손은영

관련사진보기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여러 불상을 만날수 있다. 아이의 손바닥 크기만 한 금동불부터 석조미륵삼존불상, 금동삼존판불 등 종류도 다양하다.

분명히 중학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왔는데도 전혀 기억에 없어 수많은 불상의 모습이 새롭기만 하다.

하지만 박물관 내 많은 수의 불상이 코가 없다.다행히 코가 남아 있어도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난다. 불상의 코를 만지거나 코의 돌가루를 물에 타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의 속설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간절한 순간이 오면 신을 찾는다. 자신의 능력 밖 영역을 신의 기적으로 대신 메우길 바란다.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은 조상의 문화재 훼손만을 탓하지만, 힘 없는 백성의 신분으로 신앙밖에 기댈 곳 없었을 민중을 생각하면 왠지 서글프다.

옥외전시장에 나가자마자 우리 세가족의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란 잔디 위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앉은 '머리 잘린 불상'이다.

얼굴이 없는 불상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에 의해 잘린 역사도 적지 않다.
▲ 머리 잘린 불상 얼굴이 없는 불상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에 의해 잘린 역사도 적지 않다.
ⓒ 손은영

관련사진보기


머리 잘린 불상이 가지는 의미

"왜 불상의 머리가 없을까? "라고 친절하게 적힌 안내문을 읽으면 기가 막힌다.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머리가 소실되기도 했지만, 조선시대를 거친 억불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한다. 시대가 흉흉할 수록 민중은 종교에 의지하기 마련인데, 이 때 지방 곳곳에서 등장하는 '눈물 흘리는' 혹은 '땀 흘리는' 불상이 민심을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군주는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돼 버린 종교를 물리적으로 처분하기에 이른다. 목조불상을 불태우고, 석조불상의 머리를 부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물에 버리기도 했다. 숭배의 대상을 짓밟음으로써 '본보기'를 삼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종교계의 숭고하기까지 한 촛불을 서울 시청 앞에서 보았다. 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50여 일이 흐른 후, 처음으로 자정에 집회가 끝났다. 하지만 이례적인 평화의 밤을 보낸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은 '촛불 종교인 형사처벌 검토' 발언으로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불상의 머리를 자른다고 해서 민심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평화적 시위까지 엄중 처벌해 본보기로 삼으려는 정부의 태도도 부질없긴 마찬가지다. 폭력은 불신을 낳을 뿐이다.


태그:#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 #촛불시위, #머리 잘린 불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