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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대학생이 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다 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는 50대 여자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에는 대학생이 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다 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는 50대 여자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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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빛 세계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몸과 마음이 떨렸다... 황홀이란 말이 이런 순간에 어울릴 것만 같았다. 초록은 어쩌면 원초적 색깔이 아닐까. 문득 선머슴처럼 덜렁거리다 대학생이 되어 옷을 하나씩 사 입다 보니 이상하게도 초록색 일색이었던 지난 일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 40쪽, '세상을 벗고 무릉도원에 갔다 왔다네' 몇 토막

오래 전에 떠나버린 애인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처럼 아득하게 남아 있는 자연을 품에 꼬옥 안으려는 여자는 아름답다. 저만치 서서 오래 전에 잊혀진 까마득한 추억처럼 이따금 손짓하고 있는 산과 강, 들. 그 산과 강, 들을 찾아 배낭을 메고 떠나는 50대 여자의 등산화 신은 발걸음은 바람처럼 가벼워 보인다.

자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하는 그대, 그 아름다운 유혹에 빠져 몸과 마음을 떨며 이따금 일탈을 꿈꾸는 여자가 있다. 시인 최영미처럼 서른 잔치가 끝난 나이도 아니고, 불혹의 마흔 잔치까지 끝낸, 그리하여 지천명의 50대 잔치를 자연 속에서 또 한바탕 멋들어지게 벌이려는 50대 여자.

그 여자가 여행작가 김연옥이다. 지금 마산에 있는 한 여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그이는 세상살이에 지치거나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이따금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을 포옥 담근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만난 애인처럼 그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들춰보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갈 미래의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이 책은 산행, 국내여행, 역사기행, 외국여행 등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다
▲ 책 본문 이 책은 산행, 국내여행, 역사기행, 외국여행 등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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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단조로운 일상을 잘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

"우습게도 사람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늘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는가. 어쩌면 까탈을 부리지 않는 수더분한 사람,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말에 날을 세우지 않는 무던한 사람, 얄팍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담백한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 '책을 내면서' 몇 토막
   
교사생활 틈틈이 <오마이뉴스>에 여행, 교육과 관련된 기사를 쓰고 있는 뉴스게릴라 김연옥(52). 그이가 지난 6월 끝자락 <이따금 자연의 품속으로, 이따금 사람의 흔적을 찾아>(도서출판 선)라는 제목의 첫 여행서를 펴냈다. <오마이뉴스>에 썼던 여행에 관한 기사를 가려 뽑아 씨실과 날실로 새롭게 엮은 것.   

시인 신경림, 백석, 안도현, 황인숙, 정규화 등 여러 유명시인들의 시를 콩고물처럼 살짝 곁들인 이 책은 산행, 국내여행, 역사기행, 외국여행 등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다. '아름다운 불일폭포에서 물방울로 부서지다', '여자 넷이 떠난 전라도 나들이', '파랑새는 왜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아세요' 등 50여 편의 여행기가 그것. 

김연옥은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삶의 든든한 힘이라고 한다면 마음의 잔잔한 떨림으로 길을 떠나는 여행은 그 일상을 새롭게 받아들이며 잘 버텨나가게 해주는 버팀목이 된다"고 말한다. 단순하고 딱딱한 일상이 주는 지리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 삶의 신선한 희망을 찾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

김연옥은 역사기행에서 마음에 스치는 세월의 바람을 느낀다
▲ 책 본문 김연옥은 역사기행에서 마음에 스치는 세월의 바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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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애틋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무학산

"갑자기 세찬 물소리가 들려와 올려다보니 작은 폭포가 보였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여름을 왈칵 쏟아내겠다는 기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추락의 아름다움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 폭포가 아닌가. 떨어지는 물소리가 주는 유쾌함이 점차 내 마음 속으로 녹아들었다." - 51쪽, "무척산 천지못, 어떤 곳인지 '무척' 궁금하죠?" 몇 토막

김연옥은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줄곧 마산에서 살아온 여중 영어교사이자 여행작가이다. 그래서일까. 제1부 '산행'에는 그이가 직장인 여중을 오가며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며 오랜 애인으로 삼은 마산의 진산 무학산과 그이의 집 뒤에 오도카니 엎드려 있는 청량산에 대한 산행기가 피붙이, 살붙이처럼 실려 있다.

그이에게 있어서 무학산은 "늘 애틋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산"이며, 청량산은 "산을 찾는 기쁨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산"이다. 하지만 그 산들을 애인이나 자식처럼 너무 깊이 껴안았기 때문일까. 무학산과 청량산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산행을 하면서 느낀 아름다운 감정만 있을 뿐, 두 산의 속내에 숨겨져 있는 모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경남 곳곳에 뿌리 내리고 있는 황매산과 지리산 피아골, 소백산 비로봉, 남덕유산, 조계산 산행 등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매끈한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개발의 독침까지 보았다면 참 좋았을 것을. 하지만 장점과 단점은 항상 공존하는 것. 이번 여행기의 장점은 어쩌면 산이 숨겨놓고 있는 단점을 애써 외면하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세월의 바람에서 역사의 깊은 영혼의 울림이 들린다

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자
▲ 김연옥 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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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문, 툇마루, 장독대와 아궁이 등 하나 하나 정겹지 않은 게 없었다. 생활의 편리함만 좇아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정감 넘치는 풍경은 마음의 고향처럼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친구들과 그저 하하 웃으며 돌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가하게 산책하니 술래잡기하며 뛰놀던 어린 시절도 아련히 떠올랐다." - 133쪽, '여자 넷이 떠난 전라도 나들이' 몇 토막
     
제2부 '국내여행'은 산행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온 살가운 흔적을 찾아 떠나는, 조금 왁자지껄한 나들이다. 송광사,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순천 낙안읍성, 보성 녹차밭, 진주 남강 등은 대부분 여자들끼리 수다를 마구 떨며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제3부 '역사기행'은 우리의 오랜 역사의 흔적과 숨결을 찾는, 약간 정숙한 나들이다. 신라 불교미술의 보고 경주 남산, 월출산 도갑사와 무위사, 한반도 최남단 해남 땅끝마을, 달마산 미황사, 구례 연곡사와 화엄사, 서산 해미읍성과 마애삼존불상, 천불천탑이 있는 운주사, 부석사 무량수전 등이 그것.

김연옥은 역사기행에서 마음에 스치는 세월의 바람을 느낀다. 그 세월의 바람에서 역사의 깊은 영혼의 울림까지 들으려 애쓴다. 돌계단 하나, 불상 하나, 현판 하나 등에서 옛사람들의 걸어온 삶의 흔적이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서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본다.

50대 여자, 에메랄드빛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이 되다 

"말을 타고 화산섬 정상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 나는 말을 처음 타서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 자꾸 몸이 흔들흔들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는데, 갑자기 내 마부 옆으로 여자 아이가 바싹 붙더니 나보고 콜라를 사주라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나중에 알아서 팁을 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마부가 그 콜라를 마시지 않을 거라는 짐작도 갔지만 모르는 척하고 그냥 1달러를 줬다." - 228쪽,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아세요?' 몇 토막

제4부 '외국여행'은 영어교사인 김연옥의 어학연수와 인솔교사로 참석했을 때 보고 듣고 느낀 점을 담은 외국 여행기다. 그이는 한 달 동안 경남 중등 영어교사 국외 어학체험연수를 떠났던 필리핀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경남지부와 태국 유네스코의 자매결연 사업인 '홈스테이를 통한 학생 교류 프로그램'의 인솔 교사로 참석한 태국 여행에서 이색적인 모습과 문화에 흠뻑 젖어든다.

필리핀 여행에서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흰 모래가 환상적인 보라카이 섬,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을 볼 수 있다는 따가이따이, 색깔이 요란스럽고 화려한 까닭에 예쁜 장난감 자동차를 떠올리게 하는 필리핀 명물 지프니 등을 바라본다. 그이는 또 어학연수를 떠난 교사가 여행만 다녔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여행을 부지런히 다닌다. 

태국 여행에서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섬들을 돌아보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으로 인기를 끄는 끄라비(Krabi),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대는 에메랄드 불상을 볼 수 있는 방콕의 왕궁(The Grand Palace) 등을 이야기한다. 50대 여자 김연옥은 이곳에서 예쁜 물고기와 사람이 함께 헤엄칠 수 있는 바다와 섬에 취해 그대로 바다가 되고 섬이 된다.

지난 6월 끝자락 마산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 출판기념회 지난 6월 끝자락 마산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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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자

"에메랄드 불상은 여름, 우기와  겨울(건기) 해서 1년에 세 번 국왕이 직접 행차하여 옷을 갈아입힌다고 한다. 그런데 에메랄드 불상은 실제로 녹색의 옥을 깎아 만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에메랄드 불상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그 사연은 좀 싱겁다. 한마디로 그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스님이 에메랄드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 244쪽, '에메랄드 불상은 정말 에메랄드로 만들었을까' 몇 토막

김연옥의 첫 여행서 <이따금 자연의 품속으로, 이따금 사람의 흔적을 찾아>는 세상살이가 따분해질 때마다 이따금 대자연의 품에 안겨, 이따금 대자연과 하나가 되고, 이따금 대자연을 스스로의 품에 끌어들인다. 이 책에는 대학생이 된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다 이따금 산이 되고, 이따금 폭포가 되고, 이따금 바다가 되는 50대 여자의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작가 김연옥은 1956년 마산에서 태어나 1978년 <경남매일신문>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마산 제일여자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고 있다. 2004년 7월 <오마이뉴스>에 '여름엔 역시 물놀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인연을 맺은 뒤 교사 생활 틈틈이 산행, 여행, 교육 등에 관한 기사를 이따금 쓰고 있다.


이따금 자연의 품속으로, 이따금 사람의 흔적을 찾아

김연옥 지음, 선(2008)


태그:#김연옥, #이따금... 이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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