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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진 찍는 이가 '풍경 가운데 하나'가 될 때 :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을 찍은 사진을 죽 둘러보다가 한 가지를 느낀다.

 

내가 찍은 사진에 담긴 사람들 가운데 내 사진기 눈길을 애써 멀리하거나 꺼리거나 손사래치거나 낯찌푸리거나 싫어하거나 고개 돌린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쩐 일이지?’ 하면서 찬찬히 사진을 다시 본다. 이 사진을 찍던 때 모습을 헤아려 본다.

 

그분들이 내가 사진 찍는 줄 몰랐기 때문에 이러하지는 않았다. 내 어깨에는 늘 사진기가 걸쳐 있었고, 책을 보는 내내, 또 책방에 찾아와서 여러 시간 사진기를 들고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다가 아저씨와 할아버지도 넌지시 찍곤 했다.

 

아마, 나 아닌 다른 분들도, ‘쓸 만한 작품 몇 장 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이웃사람 삶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마음’으로 자주 찾아와서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느 결엔가 이분들이 당신 모습 그대로 내보여 주면서 ‘자, 이제 얼른 찍어 봐?’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랴 싶다.

 

그동안 <뿌리서점>에서 찍은 사진이 얼추 3000장. 하루아침에 찍은 3000장이 아니고, 짧은 동안 부리나케 찍은 3000장도 아니다. 1998년부터 꾸준하게 찾아오면서 그때그때 조금씩 찍어서 채워 온 숫자 3000장이다.

 

처음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배울 때, “자기가 주제로 삼은 한 가지를 3000장은 찍어야 사진다운 사진 하나 얻는다”고 들었다. 어쩌면 나는 벌써 그 “사진다운 사진 한 장”을 얻었는지 모르고, 3000이라는 숫자를 채우고 나서도 “사진다운 사진 한 장” 못 얻을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찍어 나가려고 하는 사진감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꾸준하게 찍으려고 애써야겠지. 뿌듯하게 돌아보거나 내세울 만한 작품을 얻어내지 못했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어야 바야흐로 사진다운 사진을 얻지 싶다. 사진기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사진 찍는 사람이 똑같이 한 모습으로 스며들 수 있어야 비로소 사진다운 사진 하나 선물로 받을 수 있지 싶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까지 채운 햇수만큼 앞으로 새로 사진을 찍어 나가는 동안 내 사진은 얼마나 발돋움하려나. 이제까지 채운 햇수에 두 곱으로 사진을 찍어 나갈 수 있다면, 내 사진은 두 곱으로 나아질 수 있으려나. 모르는 일일 테지. 그저 즐겁게 찍자.

 

[35] 햇볕 담은 사진이 : 사진은 빛을 찍는 일, 빛을 담는 일, 빛을 다루는 일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말해도 좋다.

 

나로서는 사진기 눈으로 들여다 본 빛을 ‘내가 고른 가장 좋다고 믿은 필름’에 담아서 내 마음에 그윽하게 남을 모습으로 ‘찰칵’하고 한 장 담아내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란 없다.

 

해지고 어두운 때 찍는 사진도 그 나름대로 좋지만, 해가 잘 드는 낮에 햇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사진처럼 좋거나 마음에 드는 사진도 없다.

 

어쩌면, 우리가 먹는 곡식이 모두 따뜻한 햇볕을 고루 받아서 무럭무럭 자라기 때문일까. 내가 찍는 사진도 곡식을 살찌우는 햇볕을 담아내듯 따뜻함을 듬뿍 담아서 이웃들과 나눌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36] 엉터리로 찍은 사진 : 사진 틀거리는 넓게 할 수 있고 좁게 할 수 있다. 넓게 하면 넓은 대로 좋고 좁게 하면 좁은 대로 좋다. 그러나 넓은 틀거리로 찍은 사진에는 으레 이것저것 어수선하게 쑤셔넣거나 집어넣게 되곤 한다. 찍을 때는 미처 못 느끼지만, 찍고 나서 필름을 찾아서 들여다 보면 아주 들쑥날쑥이다. 왜 그럴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인가. 아직 사진눈이 어설프면서 섣불리 넓은 틀거리로 나아가려고 했기 때문인가. 넓은 틀거리 사진으로 무엇을 보여주거나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제대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다른 사진쟁이 틀거리를 흉내냈기 때문인가.

 

내 사진은 이 탓 저 탓 모두이지 싶다. 자잘한 데에 마음을 빼앗기는 한편, 꼼꼼하게 한 가지를 들여다볼 줄 몰라서 그러하지 싶다. 느긋해야 할 때 조바심을 내고, 서둘러야 할 때 마음을 풀어 버렸기 때문이지 싶다.

 

 

[37] 내가 찍고 싶은 사진 : 처음 사진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설레고 들떴는지 모릅니다. 필름값이 짐스럽기는 했지만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즐거웠어요. 제가 바라보는 대상, 사람, 자연, 삶터가 필름 한 장에 담긴다는 일은 크나큰 놀라움이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제가 발딛고 사는 세상을 담아내고 적바림할 수 있구나 싶어서 뿌듯했지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 사진이 너무 모자라고 어리숙해. 좀 더 잘 찍고 싶어’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장비를 보고 ‘아, 나도 저렇게 좋은 장비로 찍으면 사진을 더 잘 찍을 텐데’ 하고도 생각했지요.

 

그렇게 풋내기로 사진기를 쥔 지 열한 해가 되는 지금, 지난날을 더듬어 봅니다. 사진기 한 대 살 돈조차 없어서 집구석에 굴러다니는 낡은 자동사진기를 4만원인가 주고 고쳐서 쓰던 그때, 대학교에서 사진 수업을 듣는 사람 가운데 저처럼 싸구려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으리으리한 전자동 비싼 사진기나, 나 같은 사람은 도무지 만질 수도 없겠다 싶은 수동사진기(지금 저는 그 수동사진기를 쓰지만, 알고 보니 하나도 어려울 것 없더군요)를 보며 주눅이 들었어요.

 

그때 사진을 가르치던 교수가 “대한민국 사진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쓰지만 세계에서 가장 못난 사진밖에 못 찍는다. 왜 그런 줄 아는가? 대한민국 사진기자는 망원렌즈 붙여서 멀거니 찍지만, 외국 사진기자는 싸구려 자동카메라를 들고 다니지만 늘 목에 걸고 다니면서 바로 코앞에서 찍기 때문이다”고 말하며 저 같은 가난한 학생한테 기운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뭐, 제 기운만 북돋워 주려고 한 말은 아니지만요.

 

이제 저는 웬만한 사진기는 그럭저럭 다룰 줄 압니다. 중형사진기를 바꾸는 바람에 새로 얻은 기종은 거의 고물이 되고 말았지만, 한동안 제 몸처럼 아주 잘 다루며 즐겨 찍었습니다. 대형사진기로도 몇 번 사진을 찍어 봤고, 다른 사람 사진기를 빌려서도 어렵지 않게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멋부리는 사진도 찍을 수 있어요. 그래, 그러면 저는 지금 저한테 가장 알맞고 좋은 사진을 찍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난 열한 해 동안 사진을 찍어 온 발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저한테 가장 소중한 사진은 바로 처음 사진기를 어렵게 빌려서 찍던 그때, 풋내기로 사진기를 들던 때 찍은 사진이 가장 소중하고 즐거웁지 않나 싶습니다. 참으로 못 찍은 사진이고 어설픈 사진이라 할 만하지만, 그 사진 한 장으로 이 세상 모두를 다 가진 듯한 마음을 품었고, 아니 모두를 다 가지며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더 잘 찍을까?’ 따위에나 마음을 빼앗기는 걸레짝 같은 사람으로 나뒹굴고 있습니다. 아니, 걸레는 방바닥을 훔치기라도 하지요.

 

제가 찍고 싶은 사진은 오로지 하나,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즐거운 사진입니다. 그뿐입니다. 그렇게 사진을 즐기다 보면 저절로 어떤 사진은 기록이 될 테고, 어떤 사진은 놀이가 될 테며, 어떤 사진은 옛이야기가 되겠지요. 어떤 사진은 작품도 되겠으나 어떤 사진은 삶도 될 테고, 어떤 사진은 공부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사진말, #사진찍기, #사진에 말을 걸다, #사진,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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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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