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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책 하나에 담던 빛줄기는, 세월이 가며 값없다고 볼 수 있지만, 세월이 가기 때문에 값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겉그림 조그마한 책 하나에 담던 빛줄기는, 세월이 가며 값없다고 볼 수 있지만, 세월이 가기 때문에 값있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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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작은 책 하나

- 책이름 : 문답으로 풀어 본 문학 이야기
- 글 : 백민
- 펴낸곳 : 현장문학사(1990.2.25.)

.. 이 시에 보면 우리 노동자의 일반적인 심리가 잘 지적되어 있습니다. 어두운 조명등 아래서 찢어지는 팝송을 들으면서 미싱을 박는 우린, 사람들이 무식하고 답답하다고 강요하는 의식 속에서 살지요. 그런데 그것은 바로 노예의식이고 ‘못 배운 게 죄’라는 자본가의 생각입니다 ..  (19쪽)

옆지기가 가지고 왔던 고양이 노리개는, 고양이 열 마리를 모두 길로 내보낸 뒤에는 옥상에서 비를 맞으며 썩어갔습니다. 집에 들여놓을 수 없어 바깥에 둔 노리개였는데, 이제는 버려야 할 판이 되었습니다. 가게에서 100리터짜리 큰 쓰레기봉투를 둘 사 와서 꾸역꾸역 담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다 보니, 쓰레기차가 지나갈 때 내놓아야 하는데,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요사이 빗줄기가 조금씩 듣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질구레한 쓰레기 몇 가지를 큰 봉지에 눌러 담으면서, 우리 집에서 언제 쓰레기를 내놓았는가 헤아려 봅니다. 글쎄, 거의 없었지 싶은데. 우리 집에서 쓰레기가 안 나와서 내놓지 않았는가? 그런가? 그러고 보면, 웬만한 물건은 다시쓰기를 하려고 버리지 않았으며, 쓰레기가 될 만한 물건을 사들이는 일이 없으니, 내다 버릴 물건도 없습니다.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날푸성귀를 사다가 먹는데, 집에서 뒹구는 비닐봉지와 장바구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있기에, 새 비닐봉지도 더 생기지 않습니다.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안 한다면, 전자제품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살면서도 쓰레기 나올 일은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우리 식구는 손빨래를 하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조차 안 쓰니, 이런 데에서도 살림은 단출하다고 할 만하겠지요.

..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우린 우리 자신의 실생활을 성찰하고 변혁시킬 글을 쓰지 못하는 겁니다. 글쓰는 일뿐만 아니라 교과서에서 심어 준 ‘문학은 부드럽고 편안하고 초역사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은 우리가 해야 할 실천의지를 망각하게 합니다. 또한 교과서에 ‘문학비평 글’이 실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건전하게 비평, 비판하는 훈련을 못 배웠기에 참고서에 씌어진 대로 암기만 하는 꿀벙어리로 자라났죠 ..  (37쪽)

다만, 우리 집 살림에서 책이 거의 모두를 차지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물건이 아닌 책인 터라, 한두 번씩 읽은 뒤에도 고스란히 모입니다. 부피는 크지 않다지만, 열 권이 넘고 백 권이 넘고 천 권이 넘다가 만 권도 넘어가면, 장난이 아닌 부피가 되어 버립니다.

마음에 새기는 책이기 때문에, 한 번 마음에 새기고 나서는 다른 이한테 물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자기가 읽은 책을 틈틈이 헌책방에 내놓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집살림 크기도 줄이고, 좋은 책을 이웃과 두루 나눈다는 뜻으로.

그런데 우리 식구는 동네 도서관을 차렸습니다. 책을 버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느 살림 쓰레기는 거의 없지만, 앞으로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있다면 아주 끔찍하게 되어 버리리라 봅니다. 집옮길 걱정이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한테 돈이 적고 많고를 떠나서, 지자체나 중앙정부에서 ‘재개발 계획’을 세우면, 우리 살림터는 고스란히 내어주고 떠나야 합니다.

.. 삶이라는 샘물에서 시의 생수를 끌어내기 때문에, 우린 감동하는 겁니다. 이런 시는 구체적인 체험 없이는 쓰지 못하는 거죠 ..  (123쪽)

책상맡에 앉아서 이 책 저 책 들추어 보다가 잠깐 책을 덮습니다. 등을 책꽂이 한쪽 벽에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이 책들은 나한테 무슨 뜻이 있을는지, 또 이 책들을 읽은 나는 무엇을 읽고 배웠는지 헤아립니다. 책 하나 내 삶을 어떻게 다독이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이 책들은 우리한테 얼마나 참다운 삶을 가르쳐 주거나 내보이고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이 책들은 엮은이가 얼마나 땀을 흘려서 엮어내었을는지 곱씹습니다. 글쓴이나 그림그린이나 사진찍은이 삶이 얼마나 속깊이 스며들었을까 가누어 봅니다. 무엇을 바라면서 펴낸 책인지, 누구한테 읽히고자 묶은 책인지, 어떤 세상을 꿈꾸면서 내놓은 책인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우리 나라 만화가들이 자기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저마다 다 다르게 성교육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황미나 님은 성교육 만화를 그리며, 이와 같은 만화가 무척 중요한데 우리 나라에는 여태껏 제대로 나온 적이 없음을 비로소 알았다고 합니다.
▲ 겉그림 우리 나라 만화가들이 자기 아이들과 이웃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저마다 다 다르게 성교육 만화를 그리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황미나 님은 성교육 만화를 그리며, 이와 같은 만화가 무척 중요한데 우리 나라에는 여태껏 제대로 나온 적이 없음을 비로소 알았다고 합니다.
ⓒ 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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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만화책 하나

- 책이름 : 루나레나의 비밀편지
- 그림 : 황미나
- 글 : 안명옥
- 펴낸곳 : 동아일보사(2003.8.9.)

.. 처음엔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저 내가 늘 그려 오던 꿈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안명옥 선생님의 설득에 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먼저 선생님께 교육을 받고 난 후에야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말이죠. 책의 내용을 쓰면서 정말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나이가 든 저도 모르는 것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어린 소녀들은 대체 어디에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254쪽/그린이 말-황미나)

책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고. 무엇을 가르쳐 주는 책이 있는가 하고. 무엇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학교에서는 우리한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가요. 한 사람으로서 착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즐겁고 재미나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나요. 이런 길을 우리 힘으로 꿋꿋하게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거나 일러 주고 있는지요.

우리 몸을 가리키는 말을 한 마디 두 마디 차근차근 배울 수 없는 학교입니다.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일꾼들이 저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이어지며 어떻게 돕고 살아가는가를 차근차근 알뜰히 들을 수 없는 집과 마을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놀이를 즐기며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절판, #백민, #황미나, #성교육, #문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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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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