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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다하기 어려운 극심한 생활난과 정신적 물질적 고통 속에서 전두환 정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언론인 윤재걸 말로써 다하기 어려운 극심한 생활난과 정신적 물질적 고통 속에서 전두환 정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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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가를 상대로 송사를 벌이게 된 이유는 한마디로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 그중에서도 특히 정통성(正統性)이 결여된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행위는 결코 소멸시효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21세기적 시대정신과 함께 세계 인권국가들의 공통된 선진적 사법의지를 굳게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정화를 미끼로 신군부에 저항하는 진보적인 언론인 1000여명을 강제 해직시킨 언론통폐합 사건. 이 사건이 일어난 지도 무려 27년이 흘렀다. 그 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지시로 해직된 언론인들은 엄청난 정신적·물적 피해로 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최근 한 언론인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배소에 대해 '소멸시효' 운운하며 '똥배짱'을 내밀고 있는 듯 하다. 아니, 한 술 더 떠 또다시 언론을 통제하려는 '신 언론통제'를 시도하고 있다. KBS에 대해 '누적 적자 결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감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불리한 기사나 프로그램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문제제기하는 등 5~6공 때의 추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국가 상대 5억원 손배소, 해직 언론인으로선 처음

1980년 신군부의 '언론학살' 때 강제 해직된 언론인으로선 처음으로 국가를 상대로 5억원 손배소(1월 31일)를 내 언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시인 윤재걸(전 <동아일보> 기자, 현 한국정치인물연구소 대표)씨. 그에 대한 재판이 4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제17민사부 453호 법정에서 열린다.

원고 쪽(소송대리인 이윤철 변호사)과 피고 쪽(국가,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은 윤씨가 낸 손배소에 대해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비공개 협의 조정을 거친 상태. 여기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소멸시효'이다.

피고 쪽의 주장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손해배상 청구권이 발생한 날(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경과되면 완성된다는 것.

이같은 논리로 피고 쪽은 "<동아일보>로부터 해직된 1980년 8월 9일자으로부터 5년이 경과한 것이 명백하므로, 손해 및 가해자를 안 시점에 대해서는 살펴볼 필요도 없이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원고 측 이윤철 변호사는 이에 대해 "보안사와 문공부, <동아일보> 등 강제해직의 주체를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해직의 주체가 보안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시점부터 소멸시효를 따져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 변호사는 특히 "소멸시효 논란은 처음부터 익히 예견되었던 일"이라면서 "군사독재정권의 반인권적 사안에 대해 소멸시효를 들이미는 논리는 시대착오적이다, 민주사법국가들에서는 '소멸시효 무위론'이 세계적 추세"라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소멸시효 논리, 세계적 추세 거스르는 반역사적·반인권적 처사"

피해자인 윤재걸씨는 "80년 8월로부터 27년이 경과했으니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2007년 10월 25일에 비로소 책임있는 정부기관(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그 때부터가 시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언론인 윤재걸씨는 <동아일보> 재직 중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취재와 관련, 제작 거부에 앞장선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 그해 8월 9일 보안사에 의해 A급 언론인으로 강제해직되었으며, 영구 취업제한까지 당했다.

다음은 첫 공판을 앞두고 언론인 윤재걸씨와의 몇 차례에 걸쳐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번 재판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소멸시효'
▲ 해직 언론인 윤재걸씨, 국가 상대 5억원 손배소 이번 재판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소멸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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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강제 해직 때 영구취업제한 판정을 받은 뒤 입은 정신적·물적 고통은 어땠나.
"해직언론인 중에서도 특히 '영구취업제한'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반인륜적 족쇄가 채워진 A급 해직언론인들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는 물론 '행복추구권'이라는 인간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해 '창살없는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 때 우리들에게는  '영구취업불가자' '극렬 반정부, 국시부정, 제작거부주동자' 등의 꼬리표가 붙어 있어 어떠한 직장에도 취업할 수 없었다. 혹독한 생활난과 평생 회복할 수 없는 사회적 제약과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말로써 다하기 어려운 극심한 생활난과 정신적 물질적 고통 속에서 전두환 정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국가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사안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없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우리나라 사법부도 이제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권보호 우선주의를 온 몸으로 껴안을 국가위상에 올랐다고 자부한다. 굳이 세계적 추세와 사례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재판장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 2007년 8월 21일, 사법부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권력의 횡포로 입은 피해에 대해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때 재판장은 '소멸시효를 주장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하려고 하는 것은 구차스럽다'며 검찰 측 소멸시효 주장을 일축한 바 있다."

-27년이 지나는 동안 언론인 강제 해직을 주도한 주체가 보안사인 줄 몰랐나.
"짐작은 했다. 특히 '영구취업제한'을 당한 A급 해직언론인(12명)의 경우 그간 알게 모르게 소문으로만 대략 짐작은 했다. 그동안 '소멸시효 기산시점'과 '소송주체'를 특정(特定)할 수 없었던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2007년 10월 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이 '보안사'가 80년 언론인강제해직의 주체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강제해직의 주체가 국가기관(보안사 혹은 문공부)인지, 아니면 각자가 소속됐던 언론사인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강제 해직될 당시 언론사에서 소위 '끼워팔기'도 했다던데?
"저 같은 경우는 강요된 사직서를 거역함으로써 '의원면직'이 아닌 유일한 해임 케이스였다. 그 때문에 <동아일보>에 미운털이 박힌 탓에 '끼워팔기'의 일원으로 해임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다시 말해 해직자 933명 가운데 60% 이상이 재직사의 '끼워팔기'로 잘렸다. 때문에 저는 그동안 해직의 주체를 특정할 수 없었다.

저는 지난 2007년 10월 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을 통해 국보위와 보안사가 저를 A급의 영구취업제한자로 해직시킨 주체라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멸시효(기산시점)는 2007년 10월 25일로 보는 것이 마땅하며, 그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손배소를 청구한 것이다."

한편, 언론인 강제 해직사건은 전두환 신군부가 설치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5월 31일)가 언론계 정화작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TV와 라디오, 신문(1도 1사), 정기간행물, 출판계 등의 통·폐합과 더불어 언론인 298명을 강제 해고시킨 사건이다. 하지만 실제 해직된 언론인은 해당 언론사의 '끼워팔기'까지 합쳐 933명이었다.

원고측은 지난해 10월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해직의 주체가 보안사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시점이 바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법원 원고측은 지난해 10월25일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해직의 주체가 보안사라는 사실을 확인해준 시점이 바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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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재걸, #국가상대 5억원 손배소, #소멸시효, #언론인강제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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