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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웅님 00택배입니다. 한약이 도착했습니다."

 

보름 전, 문자가 왔다. 어머니께서 보낸 한약이 온 것이다. 안 보내도 된다는 아들의 만류는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들을 어머니가 아니셨다. 매해 그랬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면 어머니는 한약을 보내신다. 아무리 싫다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시다. '공부할 때는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니 말이다.

 

택배로 받은 한약을 방구석에 던져놓는다. 사실 한약이 참 싫다. 쓴맛은 차지하더라도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자취하다 보니 끼니를 거르기도 일쑤인데 한약까지 챙겨 먹기란 힘든 일이다. 아직 몸에 좋다는 것을 찾을 연륜은 되지 못한 모양이다. 

 

이렇다 보니 매번 한약은 쌓여만 간다. 잘 챙겨먹고 있느냐는 어머니의 확인 전화가 간간이 걸려온다. 안 먹었다고 말하면 잔소리를 들을 게 틀림없다.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꼬박꼬박 먹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부르기 마련이다.

 

특히 어머니가 서울 자취방으로 오실 때가 문제다. 한약을 다 먹었다고 해놓은 만큼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어떻게 한약을 처분해야 할지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어머니의 눈을 속이는 미봉책을 선택한다. 한약을 친구 집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 쌓아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한약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결국 유통기한이 지난 한약은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그래도 죄송한 마음은 드는지라 다음에 보내주시면 다 먹어야지라는 다짐을 하면서.

 

작년에 한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이번에 온 한약도 마찬가지 취급을 한다. 한약을 받은지 열흘이 지났는 데도 아직 한약 상자를 뜯어보지도 않았다. 어김없이 어머니의 확인 전화가 걸려온다. 잘 먹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 

 

어머니는 한약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뿐 아니라 서울로 반찬을 가지고 온다는 통보를 하셨다. 어머니가 오시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또 한약이 문제다. 날짜상으로는 한약의 반은 먹었어야 했는데, 아직 하루치도 먹지 않았다. 이미 거짓말은 해놓은 상태였다. 먹었어야 했던 한약을 들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시 내려가실 채비를 하셨다. 서울역까지 배웅을 나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하철 역 입구에 당도했다. 갑자기 내 팔을 꽉 잡으셨다.

 

"또 계단이네. 서울 오면 지하철 타기가 싫어."

"왜요?"

"지하도로 내려가야하는데 무릎이 아프네…. 나이 들어 무릎 아프면 계단 내려갈 때가 너무 힘들어. 내려가는 방향은 에스컬레이터도 운행 잘 안 하고."

"그럼 엘리베이터 이용해요?"

"엄마가 할머니냐?"

"전에 수영 다니니깐 무릎 괜찮아 졌다면서?"

"요즘 수영 안 나가니깐 다시 아프네."

"계속 다니라니깐 왜 안 다녀요?"

"네가 수영장비 내줄래? 요새 수영장 다닐 돈이 어디 있냐? 물가가 어찌나 올랐는지 반찬거리 좀 사러 나가면 돈이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더라."

"그럼 나 먹으라고 한약은 왜 지어줬어? 그 돈으로 수영이나 다니라니깐…."

"그게 어디 그렇냐! 공부하는 게 더 힘들지, 대웅아! 엄마 신발 봐라 이 거 얼마게?"

"좋아 보이는데. 비싼 거에요?"

"어제 마트에서 만원 주고 샀다. 이게 만원짜리라도 발도 편하고 좋더라!"

 

어머니가 기차를 타러 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자꾸 한약 생각이 났다. 그동안 고마운 줄 모르고 귀찮다고 한약을 쌓아두고 심지어 버린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한약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것을 보내주기 위해 어머니는 무릎이 아파도 참고, 가장 싼 신발을 마트에서 골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불편함보다 자식의 건강이 먼저 염려하신 것이다. 어머니라고 비싼 신발 안 신고 싶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효자는 가슴 속으로 울고 있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태그:#어머니, #어머니사랑, #한약, #불효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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