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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 학생들이 27일 새벽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버스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올라 밤샘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장관고시 철회와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 학생들이 27일 새벽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경찰버스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올라 밤샘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살수차로 물을 뿌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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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면 6월 29일. 21년 전 6월 29일엔 '6·29 선언'이라는 게 있었다. 6·29 선언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에 대한 항복선언이었다. 단초를 만든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고, 항복선언은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맡았다.

더디지만 진보한 민주주의, 그 민주주의를 짓밟은 이명박 정부

6·29 선언이 있자 국민은 흥분했다. 긴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것에 스스로 감탄해 했다. 그러나 갈 길이 서로 달랐던 야권은 분열되었고, 무늬만 민간인이었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국민은 또다시 절망했다. 그래서 6·29는 '속이구'가 되었다.

결국 6·29 선언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메뉴에 감복한 사람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권을 잡은 이가 갈비탕을 먹으려다 꼬리곰탕 정도로 메뉴를 바꾼 것에 불과했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그 숱한 픽박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지난 역사를 한 번쯤이라도 돌이켜 생각했더라면, 그해 군부 독재는 당시의 구호처럼 완전히 '종식' 시킬 수 있었을 터였다. 그랬다면 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 미완의 항쟁이라며 아쉬워하지도 않을 테고 문 선배 같은 이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강기희 장편소설 <은옥이> 중에서

기자는 10년 전쯤 쓴 소설에서 6·29 선언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보통 사람을 표방한 노태우는 절대로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보통 사람의 탈을 쓴 채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국민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그 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스스로 제 몸을 태운 이도 많았다.

그 이후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와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 정부, 참여정부를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민주주의는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 지난 2007년엔 6·29 선언 20주년을 맞아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민주주의는 정착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6·29 선언이 있은지 21주년이 되는 2008년 6월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가 아니었다. 민주주의 기본인 대화와 토론은 상실되었고 정권의 일방적인 독주만이 횡행했다. 이들 두고 역사의 시계가 21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사람도 있고, 이승만 정부 출범 초기인 1947년으로 되돌아갔다는 이도 있다.

과거로 회귀하는 이명박 정부의 끝은 '파멸'뿐

출범한 지 3개월 만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며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더딘 걸음이었지만 민주주의를 경험한 지난 10년의 시간은 그들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다.

국민은 지난 10년 사이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한나라당 포함)은 진보는커녕 스스로 가재가 되어 뒷걸음질치는 길을 선택했다. 국민은 지난 10년 사이 민주주의를 경험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땅 투기다 뭐다 하면서 돈을 벌어들이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난 10년 세월, 국민과 이명박 정부가 살아온 길은 그렇게 달랐다. 국민과 소통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생겨났다. 애초부터 물과 기름인 사이로 출발한 불길한 관계. 국민은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이명박 정부는 물 위에 뜬 기름을 보면서 전 국민이 기름화 되었다고 평가했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점점 벌어져만 가는 국민과 이명박 정부 사이엔 불신이 싹 텄고, 그 불신의 씨를 뿌린 것은 어이없게도 이명박 정부였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다 1%를 위한 정책이었고, 지난 3개월 동안 그들은 국민을 속이는 일에만 몰두했다.

지난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가 6·10항쟁 기념일을 지나 6·29 선언 21주년을 이틀 앞둔 오늘도 국민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두 달 가까이 국민은 제2의 6·29 선언을 기대하며 촛불을 들었으나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국민을 탄압하는데 열을 올렸다.

어찌 보면 요즘의 상황은 21년 전 6월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런저런 말로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정책도 비슷하다. 무능한 정부는 지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이고, 현명한 국민은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나간다는 사실이 입증되는 요즘이다.

우리의 역사는 이 대통령을 '거짓말의 달인'으로 평가할 것

국회의원이 거리로 나서고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해도 귓등으로 흘려보낸 것이 이명박 정부였다. 또한 종교계와 시민단체, 대학생들이 동맹파업을 해도 이명박 정부는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도 이명박 정부는 그들이 집회 현장에 나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촛불을 들며 "이명박, 넌 뭐든지 하지마!"라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이명박을 지지했던 국민은 잘못 던진 표를 무르지도 못하고 난감해하고 있다.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서도 이명박 찍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 이명박 대통령은 적어도 이 땅의 30%에 이르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고시 강행이라는 악수를 둔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역사의 심판을 받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아마도 우리의 역사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신독재정부'라고 규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성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말을 뒤집는 일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거짓말의 달인'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말을 두고 국어학자들은 국어사전에다 '소통'이라는 단어를 '불통'과 비슷한 말, 혹은 '불통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때 둘러대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할지도 모른다. 

6·29 선언 21주년을 이틀 앞둔 오늘도 서울거리는 촛불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일을 두고 '무법지대 혹은 해방구'라고 보도하는 일부 신문들도 21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지난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언론들을 심판하는 것은 국민이 해야 할 일이다. 진보의 역사를 가로막은 언론을 린치하는 것도 국민이 나서야 할 일인 것이다. 소비자가 제 주권을 찾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지름길이 아니던가.

이명박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항복이냐, 퇴진이냐'밖에 없다.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든 것은 이명박 정부이니 국민을 원망할 일도 아닌 것이다.

이 대통령, 오늘 저녁 물대포 맞으며 머리 감지 않을라우?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강행에 반대하며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밤샘시위를 벌이는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새벽 광화문 새문안교회 뒤편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미국산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강행에 반대하며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밤샘시위를 벌이는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새벽 광화문 새문안교회 뒤편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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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도 이명박 정부는 경찰을 투입해 촛불 든 국민을 위해 물대포를 쏘아댔다. 그러나 경찰은 국민의 가슴 가슴에 켜 둔 촛불까지는 끄지 못했다. 청와대 가는 길을 명박산성으로 막을지라도 국민은 기어코 넘어갈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우리 국민은 참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경찰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해도 국민은 그의 권력 또한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을 이긴 정부가 없음을 기억한다면 이번 싸움에서 승자는 이미 결정 났다.

이제 시간이 없다. 기회도 많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끝내 외면한다면 국민은 이명박 정부를 과감히 버릴 것이다. 시간이 흘러 눈물을 펑펑 쏟으며 제2의 6·29 선언을 하더라도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촛불이 나라 경제를 망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취임 3개월 만에 나라 경제를 거덜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만수 장관인지 촛불인지.

주말을 맞은 오늘, 국민들은 샴푸와 린스를 챙겨 광화문으로 간다고 한다. 더운 밤,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머리를 감는 이 나라의 국민. 국민의 머리를 감겨주는 친절한(?) 이명박 정부. 그 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샤워 꼭지 외에 다른 게 없다. 이왕이면 물대포 끝에 샤워기를 달아 물이라도 아끼자는 것이다.

더러는 광화문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공포 오싹 체험'에 참가 신청을 받기도 한단다. 경찰의 방패와 소화기. 물대포를 맞는 일이 모두 공짜란다. 선택 체험 행사인 '밧줄로 버스 당기기 놀이'도 한단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참가자가 줄을 서고 있단다.

샴푸 챙겨 광화문으로 나가는 국민과 명박산성 뒤로 숨기에만 바쁜 이명박 정부. TV에 얼굴 내미는 재미 빼고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이명박 정부. 한심한 정부이긴 하지만 국민은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목욕 용품을 챙긴 국민이 청와대를 향해 소리친다.

"이명박 대통령, 오늘 저녁 광화문에서 물대포 맞으면서 머리 한 번 감아 보지 않을라우?"

국민과의 소통은 그렇게 출발하는 것 아니던가.


태그:#촛불문화제, #이명박, #제2의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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