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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엄포 결과는 '12세 어린이 연행'

'저 열두살이에요'... 정부의 고시강행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서울 자하문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인 25일 오후 경찰에 연행돼 경찰버스에 태워진 한 초등학생이 자신이 열두살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저 열두살이에요'... 정부의 고시강행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서울 자하문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인 25일 오후 경찰에 연행돼 경찰버스에 태워진 한 초등학생이 자신이 열두살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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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기색은 완연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득하지 않는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고시 강행 움직임만으로도 그들은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25일 낮 경복궁 근처에 있던 소식에 격분했다.

시위에 대한 경찰의 마구잡이 연행이 이젠 일상처럼 자리잡았다고 해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2세 어린이와 81세 노인, 25일 낮 경복궁 근처에서는 이들도 연행됐다. 12세 어린이가 "나는 12살"이라고 눈물을 쏟아가며 하소연했지만 그 하소연은 전경버스의 철조망 속에서 소리없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소리없는 메아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큰 메아리로 다가와 가슴을 강타했다.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엄포와 그에 따른 어청수 경찰청장의 강경진압조치는 '12세 어린이 연행'이라는 결과로 드러났다.

어린이가 전경버스 안에서 철조망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쇠고기 추가협상'만 해도 분노의 이유가 충분했던 시위참가자들이다.

그런 판국에 이명박 대통령의 '엄포'가 '12세 어린이 연행'으로 드러나자, 사람들은 다시 거리로 모였다.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았던 촛불시위는 그렇듯 다시 타올랐다. 주중임에도 밤새 수천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남아 밤샘시위에 들어간 것이다.

과잉 폭력, 원인 제공은 경찰이 한다

경찰의 소화기 난사에 '살충제 살포'로 대처한 시위참가자들. 이 장면만 본다면 '폭력시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응은 경찰이 이끌어냈다.
 경찰의 소화기 난사에 '살충제 살포'로 대처한 시위참가자들. 이 장면만 본다면 '폭력시위'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응은 경찰이 이끌어냈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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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참가자와 경찰 모두 작심하듯이 서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물대포와 소화기가 난무하는가 하면, 버스 끌어내기가 또다시 벌어진 가운데 살충제까지 등장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시위참가자들의 대치 장면을 살펴보면 왠지 그네들만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언론에서도 그런 식의 사진 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시위를 지켜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시작은 늘 경찰이다. '버스 끌어내기'는 '청와대 앞 100m까지 시위 가능'이라는 집시법 조항을 무시한 경찰의 근거에 없는 차벽 배치로 인해 촉발된다. 전경 병력을 향해 살충제를 뿌리는 시위참가자들은 경찰의 무분별한 소화기 난사에 대처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시위참가자가 전경의 방패를 뺏는 행위는, 경찰이 시위참가자들을 구타하는 도구를 방어적 의미에서 뺏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론, 몸싸움 과정에서도 그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경찰은 몸싸움이나 진압과정에서 마구잡이로 어린이와 여중생, 노인까지 연행한다. 하지만 시위참가자들은 간혹 '포로'로 붙잡힌 전경을 무사히 인계해주려 노력한다.

분노를 참지 못한 나머지 붙잡힌 전경에게 욕설과 폭력을 시도하는 시위참가자들도 있지만, 이성을 잃지 않은 시위참가자들은 전경을 위해 둥근 스크럼을 만들면서 그를 보호하다가 길을 터주면서 경찰에 다시 인계하려는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간혹 공포를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전경도 있다. 그를 토닥여주며 달래는 이는 오히려 그렇듯 둥근 스크럼을 짠 시위참가자들이다.

진압 도중 시위참가자들 사이로 끌려온 전경. 나도 나름의 예의를 지켜 그의 뒷모습만 촬영했다. 이 전경은 오히려 시위참가자들이 스크럼까지 짜면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다가 경찰로 인계해줬다.
 진압 도중 시위참가자들 사이로 끌려온 전경. 나도 나름의 예의를 지켜 그의 뒷모습만 촬영했다. 이 전경은 오히려 시위참가자들이 스크럼까지 짜면서 적극적으로 보호하다가 경찰로 인계해줬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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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 도중 시위참가자들이 빼앗은 전경의 방패. '폭행도구'를 빼앗아왔다는 의미가 있다.
 대치 도중 시위참가자들이 빼앗은 전경의 방패. '폭행도구'를 빼앗아왔다는 의미가 있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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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참고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면, <조선일보> 기자가 전경버스 끌어내기가 진행되는 근처에서 큰 소리로 "시위대가 버스를 탈취했다"고 전화통화를 하다가 시위참가자들에게 붙잡혔던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기사 <시위대, 본사 기자 1시간 억류·폭행>이라는 기사를 통해, 자사의 기자가 "일부 시위대들이 계속 따라오면서 이 기자의 양복을 잡아채고, 주먹과 발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오버다.

민변 소속 변호사의 중재 아래 시위참가자들은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혔고 그럼에도 분노를 참지 못한 일부 시위참가자들이 생수병의 물을 머리에 부은 정도였다.

▲ 물대포 손으로 막는 시위 참가자 25일 밤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서자 시민들이 저항하고 있다. 한 시민이 살수차에 올라 물대포를 손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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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물 부은 일"을 "기자의 양복을 잡아채고 주먹과 발로 폭력을 행사"했다고 확대시킨 <조선일보>의 소속 기자조차도 그렇듯 신사적으로 보낼 줄 아는 시위참가자들이다. 그조차도 "너희들이 뭐 어쩔 것이냐"는 식의 자세로 나왔던 그 기자의 거만한 태도와 '버스 탈취'라는 왜곡된 표현의 활용이 유발한 일이다. 현장에 있던 나도, 나름의 예의를 지켜 그 현장을 카메라로 담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이는 그 당시만의 일이 아니다. 곳곳에서 불법 채증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정보과 형사들도 대부분 얌전히 귀환했다는 것, 경찰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선무방송을 하다가 그에 재치있게 반박하는 시위참가자들에 흥분한 나머지 "채증 후 하나하나 연행하겠다"는 협박까지 한다. 시위를 직접 지켜보면 알 수 있다.

그렇듯, 원인 제공은 경찰이 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시위참가자 중에는 전경에게 손가락을 깨물려 절단당했고, 그 절단당한 손가락을 찾지 못해 봉합수술을 못받은 사람까지 있었다. 게다가, 경찰의 시위진압은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이뤄진 경우도 많았다.

이쯤 돼서 묻고 싶은 이야기다. 도대체 누가 '국가 정체성'에 도전했는가?

관보 게재, 더욱 거센 시위 불길 예고

물대포 발사 후, '살수차 끌어내기'를 시도하는 시위참가자들
 물대포 발사 후, '살수차 끌어내기'를 시도하는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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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25일 밤부터 26일 아침까지 이어진 이 시위는 '전초전'이라는 것이다. '쇠고기 추가협상' 관보 게재는 26일 9시에 강행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6일은 목요일이다. 바로 주말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말동안 엄청난 시위를 예상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가 정체성'을 거론한 대통령의 다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경찰은 또다시 시위에 강경 대처할 것이다.

이젠 그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는다. '12세 어린이 연행'은 결정적인 선을 넘었음을 보여준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목격하고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취재하며 가급적 맨 앞에 나서 그들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다음날 아침에 등교하고 출근하는 학생과 시민들이다. 이들이 새벽을 통째로 광화문에 바쳐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산 쇠고기, 아니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거리로 나서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을 온몸으로 대처하는 그들, 도대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명박 정부는 '국가 정체성'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이유부터 자문해보길 바란다.

밤샘시위 중인 시위참가자들
 밤샘시위 중인 시위참가자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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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국민토성, #촛불, #촛불문화제, #촛불시위,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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