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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에서 금민을 만나다

 

 

지난해 대선에서 '기존 진보의 리셋, 새로운 진보의 출현'을 주장했던 금민 사회당 대선후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회당 대표의 직에서 물러난 후 금민 후보는 한동안 조용히 칩거해 왔다.

 

대선 당시 금민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100만 민중대회로 세상을 바꾸자"는 주장을 '대중의 역동성을 동원-하방식 운동에 가두려는 것은 낡은 진보정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결국 권영길 후보가 호언했던 민중대회엔 민주노총과 전농을 중심으로 약 2만 명 정도가 참여했고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금민 후보는 또한 "대한민국에는 제3의 국민주권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식민지 해방운동이 첫 번째 주권운동이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두 번째 주권운동이라면, 이제 일으켜야 하는 주권운동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갖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의 조건들, 즉 국민의 복지와 안전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득표에 머물렀지만, 금민 후보의 주장이 50여일의 촛불혁명과 겹쳐 보이는 이유가 있다. 시민들은 기존 진보운동이 당혹스러워할 정도의 자발성과 역동성으로 거대한 촛불광장을 만들어냈다. 또한 시민들은 먹거리의 문제로부터 '국민이 참된 주권자'임을 깨닫고 있으며,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물대포에도 굽힘없이 싸우는 중이다.  

 

금민 후보는 21일 시청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었다. 선거 직후에 비해 많이 밝아진 표정이었다. 촛불의 물결에 그 역시 '감동먹은' 것일까.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 100만 촛불은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어"

 

- 무엇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촛불을 들게 했을까?

"먼저 시대규정부터 해보자. 이명박 시대는 '포스트(post) 민주주의' 시대다. 민주적 절차와 형식은 갖춰져 있다. 하지만 그 적법한 형식을 통해 오히려 시민의 요구에 반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명박 정부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다. 민주적으로 집권한 이 정부가 도리어 민주주의의 기초인 시민의 복지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이 과정은 지난 15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여기에 대한 저항운동도 물론 전 세계적이다. 하지만 100만 명씩 모여 촛불을 드는 일은 소위 OECD 국가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역시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였지만,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 이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정부가 앞장서 공공성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국민이 자각한 것이다. 즉 뽑힌 사람이 아니라 뽑는 우리가 주권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추가협상 결과가 촛불집회에 영향을 미칠까?

"30개월 미만이냐 아니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국민은 자신의 안전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요행을 바라선 안된다고 요구하고 있다. 확실한 안전 보장을 바라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은 안전과 주권을 결합시켜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그런 눈높이에 맞는 설득을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계속 '내가 보장한다, 믿어라'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는 촛불 수는 좀 줄어들지 몰라도, 집에서 촛불이 활활 탈 것이다. 50일을 넘어 시민들이 조금 지치긴 하겠지만, 정부가 이제 촛불을 진화했다고 생각한다면 실수하는 거다."

 

"진보세력, 깃발 크게 만든다고 촛불을 대표할 수 없다"

 

 

- 촛불운동의 과정에서 진보세력의 대응은 어떻게 보는가?

"진보세력은 늘 대중의 지도부, 교두보를 자처하려 했다. 하지만 보다시피 대중은 스스로 발언하고 참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진보세력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00만이 모이면 그에 맞는 운동 형태를 창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 정당의 역할은 뭘까, 정당의 역할은 '표현'이다. 촛불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는 전복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촛불을 많이 들었으니까 정권퇴진, 전민항쟁으로 가자? 그런 식으론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안티운동이 아니라 각성운동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자신을 주권자로 각성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치는 촛불의 힘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는 역동적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저 가두에서 그들을 '대표'하려는 생각에 머무르는 것 같다. 깃발 더 크게 만든다고 백만 명의 시민을 대표할 수 있나. 그건 정치기획력의 부족이다."

 

- 시민들에게 진보정당도 포함해서 모든 정치운동을 거부하는 태도가 있는 것도 같다.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는 시민에게 '반(反)정치'의 경향이 있다. 시민들이 필터 없이 직접 표현하고 교호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정치의 정치 역시 자신의 형태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 역시 넓은 의미의 정치이다. 본래적 의미의 정치이다.

 

이명박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뽑은 내가 주권자'라고 생각한다. 형식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자각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가능성이고 한국사회가 압축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정치운동, 사회운동의 현실인식이나 능력은 답답하다. 

 

이제 시민과 진보운동의 관계는 후원금 내주는 회원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다. 진보운동은 시민의 각성과 행동에 적절한 형태를 부여하는 그런 상상력을 보여야 한다. 좀 거칠긴 하지만 '시민산성' 같은 것도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시민들이 직접 종이피켓에 자신의 주장을 적고, 그것을 시청 앞 펜스에 붙여 장벽처럼 만든 것)."

 

- 앞으로 촛불혁명이 나아갈 방향은?

"앞으로가 중요하다. 촛불은 조금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50일의 촛불혁명에 대한 해석과 담론은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장기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87년 민주항쟁을 말할 때, 직선제 그 자체보다 그 후 20년 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 어떤 영향을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번 촛불혁명이 그런 영향을 만들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이 촛불의 힘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진보정치의 요체다. 그 힘을 자신이 어떻게 한 번 이용해보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힘에 의해 심판 받을지도 모른다."

 

누가 촛불의 역능을 이해하고 있는가

 

러시아혁명사를 전공한 류한수 교수는 "볼셰비키가 '철의 규율'을 통해 권위적으로 조직된 집단이라는 생각은 틀렸다"며 "오히려 볼셰비키는 엄청나게 많은 토론과 논쟁,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으로 운영된 조직이었다, 심지어 레닌조차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데 너무나 힘들어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럽식 민주주의를 지향하여 매우 느슨하고 대중적이었을 거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멘셰비키는, 도리어 서구식 이데올로기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조직이 정체되고 권위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러시아 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압축발전'의 공간에서 러시아의 인민이 볼셰비키를 지지했던 이유라는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 더 이상 시민들의 지도자, 대변인을 자임하는 진보세력은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볼셰비키가 그랬듯이, 촛불의 퓨어상스(역능)를 이해하고 그와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진보세력은 시민의 선택을 받을 수도 없고 세상을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금민 후보의 마지막 말은 그 누구보다도 바로 자신에게 던지는 성찰로 들렸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사회당 서울시위원장입니다. http://blog.naver.com/interojh


태그:#금민, #촛불,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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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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