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난감을 건져 올리기 위해 크레인을 움직이고 있다.
▲ 이번엔 성공할까? 장난감을 건져 올리기 위해 크레인을 움직이고 있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장난도 심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꼭 들어맞는 현장이 있었다. 강원도 평창군에 있는 모 버스터미널 가게 앞이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버스가 오가는 버스터미널. 가게 앞에 버려진 듯 놓여있는 '토이크레인'. 이른 바 장난감 뽑는 기계(게임기)이다.

토이크레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버스 운전기사들과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 사람들은 시간만 있으면 가랑비에 옷이 젖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기계 앞에 모여 들었다. 기계 안에 들어 있는 것는 대형 장난감 버스와 자동차, 인형, 선글라스 등등. 가짓수도 다양하다.

크레인을 1회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200원. 젊은층이나 아이들이 사용하는 토이크레인의 1회 비용인 100원에 비해 배나 높은 금액이다. 그런 이유로 게임기 안에 든 크레인의 집게나 장난감들이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게임기보다 묵중하고 그 규모도 크다.

1회 200원을 내고 크레인을 움직여 게임기 안에 있는 것들을 집어 내면 본인 소유가 된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지만 문제는 단 한번의 기회로 게임기 안에 있는 것을 집어 내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크레인을 정확하게 내려놓는다고 해도 집게가 헐겁게 되어 있어 집히지 않기 때문이다.

1회에 200원... 그런데 10분만에 1만원 날렸다

지난 5월 22일. 작업복 차림의 한 사내가 게임기 앞에 섰다. 크레인을 열심히 운전하여 내려놓지만 번번이 실패. 1000원을 넣고 5회 사용했는데 그 시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1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1000원을 잃었다. 얻는 게 없으니 잃었다는 표현이 적당하리라.

사내는 2000원을 넣더니 다시 크레인을 움직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익숙한 동작으로 크레인을 움직여 보지만 사내가 원하는 대형 트럭은 집게에 걸리지도 않았다. 2000원을 날리는 데 드는 시간은 역시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사내는 또 다시 2000원을 기계에 들이밀었다. 벌써 5000원. 그 돈을 기계에 넣고도 사내는 원하는 것을 집어올리지 못했다.

구경하는 이들의 시선쯤은 이미 관심 밖이다. 사내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기계에게 화를 내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역시 없다. 도박판이라면 '개평'이라도 있지, 기계는 그 일도 하지 않았다.

"아, 이거 미치겠네. 될 듯 될 듯하면서 안 걸리니 원!"

사내는 5000원을 잃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게에 들어가서 천원 권을 또 바꿔왔다. 역시 이번에도 실패. 사내는 10분도 되지 않아 1만원을 날렸다. 기자가 본 것만 해도 사내가 잃은 돈은 1만5000원.

사내는 분했던지 옆에 있던 이에게 2000원을 빌렸다. 이번엔 기계를 돌며 안에 들어 있는 트럭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름대로 작전을 짠 사내. 그러나 여기저기로 집게를 넣어보지만 이번에도 트럭은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트럭을 옆으로 제껴서 집게를 이음새에 넣어봐요." 보다 못한 구경꾼이 훈수를 들었다.

"아유, 그게 마음처럼 되면 다 뽑게요." 사내가 답답한 듯 기계를 주먹으로 쳤다. 화가 난 사내의 얼굴은 붉다 못해 검게 일그러져 갔다.

"오늘 얼마나 잃었어요?" 나설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가 물었다.

"방금 1만7000원하고 오전에 잃은 1만5000원 하고 도합 3만2000원 잃었네요."

그 돈을 기계에 넣었지만 사내의 손에는 한 개의 장난감도 쥐어지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일이 이젠 중독 증상까지 "눈 앞에 삼삼해요!"

크레인을 움직여 집게를 원하는 물건에 내려놓는다.
▲ 크레인. 크레인을 움직여 집게를 원하는 물건에 내려놓는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그러는 사이 버스 한 대가 터미널로 들어왔다. 버스 기사가 내리더니 짬을 내 기계에 2000원을 넣었다. 매일 일과처럼 하는 일이란다.

버스가 터미널에서 쉬는 시간은 20여 분. 그 시간 버스 기사들은 게임을 즐기듯 토이크레인 기계로 갔다. 그렇게 해서 날리는 돈은 평균 1만원 정도. 모든 기사들이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수의 기사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한 번씩 돈을 찔러넣는다고 했다.

버스 기사 역시 노련한 실력으로 크레인을 움직였다. 기사는 사내처럼 트럭을 집지 않고 작게 포장된 것을 집중 공격했다. 그러나 작은 것도 집게에 물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2000원이 날아갔다. 버스 기사가 "이거 집게가 너무 헐렁한 걸" 하더니 다시 2000원을 넣었다.

잇따른 실패. 이제 두 번의 기회만 남았다. 버스 기사는 용케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들려 나오던 장난감이 운반 도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집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마지막 기회. 버스 기사는 게임기 안을 세심하게 살피더니 한 지점으로 집게를 내렸다. 이번엔 성공. 포장지를 뜯어보니 낚시용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선글라스가 들어있다.

그런데 포장지 안에는 선글라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담배갑 크기보다 조금 큰 돌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돌이 달려 있어 물건이 쉽게 들어올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버스 기사는 4000원을 투자해 선글라스 하나를 뽑았다. 싸구려라고 해도 본전치기는 한 셈이다.  기사에게 "토이크레인을 자주 하냐"고 물었다.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은 해요. 기다리기 심심하잖아요."
"이 곳 주민들도 많이 하던가요?"
"그럼요. 시내서 정육점 하는 사람은 이 기계에서 700만원이나 잃었다고 하던 걸요."
"그렇게 잃을 수도 있나요?"
"에이, 그 돈 잃는 데 한 달도 걸리지 않아요. 카지노처럼 가끔이라도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니 잃을 수밖에 없잖아요."

버스 기사의 말이다. 기사는 평창뿐만 아니라 토이크레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들어가는 돈은 있으되 나오는 게 없는 토이크레인. 장난이라고 하기엔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 돈 따먹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트럭이나 장난감 몇 개 건지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쏟아 붓는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엔 그냥 시작하다가 나중엔 약이 올라 계속하는 겁니다.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잖아요. 그게 사람 잡는 거죠 뭐."

처음엔 버스 기사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더 지켜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갔다. 사람들은 본인만 잘하면 얼마든지 게임기 안에 있는 것들을 마음 껏 집어 낼 수 있다고 믿는 듯 계속해 돈을 들이 밀었다. 그 사이 게임기 안에 있던 장난감들은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힐 뿐 들려 나온 것은 없었다.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네

지난 달 29일과 지난 6월 5일에 이어 지난 13일 버스터미널에 또 들렀다. 이번에도 게임기의 크레인은 쉬지 않고 있었다. 구경꾼들도 제법있다. 일주일 전 들렀을 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옆으로 넘어진 트럭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듯 천원권 지폐를 손에 감아 쥐고 크레인을 움직였다. 설렁설렁 내려간 크레인은 역시 설럴설렁 올라올 뿐이었다. 집게라는 것이 물건을 집어야 하는 것인데, 게임기의 집게는 물건 틈에 끼어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만이 가능하니 장난감을 건져 올리긴 애초부터 힘들어 보였다.

그날도 게임을 막 끝낸 이는 벌써 만원을 잃은 상태였다. 허탈한 표정으로 게임기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에게 지금까지 얼마나 잃었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잃은 걸 다 치면 꽤 많아요. 한 100만원 될까요. 처음엔 아들 녀석에게 장난감이나 하나 뽑아 주려고 시작했는데 이젠 중독이 된 듯 싶어요."

스스로 중독이 되었다는 사람. 나이는 사십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그는 일을 하다가도 틈만나면 토이크레인으로 온단다.

"하지만 나보다 많이 잃은 사람도 많아요. 어떤 사람은 1천만원도 넘게 잃었어요."
"700만원을 잃었다는 얘긴 들었지만 1천만원은 처음 듣는 말인 걸요?"
"그런 사람있어요. 그 돈때문에 집에서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화가 나고 약이 오른다고 해서 게임기에 1000만원을 넘는 돈을 들이 밀다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중독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도전해봤더니... 요것 봐라? 오기 생기네

내친김에 구경만 하지 말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만원권을 1000원권으로 바꿔 2000원을 넣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주제라서, 크레인을 조작하는 것조차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어렵게 크레인을 움직여 집게를 내려놓지만 허방. 다시 크레인을 움직여 보지만 집게는 원하는 장소에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거 조종하는 거 익히는 데만도 돈이 꽤 들어요."

작전이나 전략도 소용없는 실력이라 구경꾼들에게 그런 소리만 들었다. 기자가 1만원을 다 쓸 동안 집게는 50번이나 홀로 내려갔다가 홀로 올라왔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걸 보니 기자도 사람이긴 한 모양. "햐, 요것 봐라?" 하면서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끈기와 오기가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이건 장난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그거 잘못 손대면 패가망신합니다."

지켜보던 한 사내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정답. 기계와 싸워서 이길 수도 없거니와 기계와 싸워 울화병이 날 이유는 더욱 없는 일었다. 기자는 끓어 오르는 부아를 참기 위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토이크레인 기계는 기자의 돈 1만원을 삼키고도 배가 고팠던지 그 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돈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돈 먹는 하마인 토이크레인. 실력으로 승부하기엔 그 가치가 전무하다 싶지만 사람들은 토이크레인을 떠날 줄 몰랐다.

토이크레인 안에 있는 장난감들. 이것들을 집어 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 장난감들. 토이크레인 안에 있는 장난감들. 이것들을 집어 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태그:#토이크레인, #장난감뽑기, #도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