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쇠고기 파동'과 관련한 특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관련사진보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재협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 업계가 '자율 규제'를 결의하고 미국 정부의 '간접 보장' 약속을 받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은 사과 수위를 높였을 망정, 위생 조건은 한 자도 고칠 수 없다는 자세는 그대로 고수했다. 이는 쇠고기 검역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민심 달래기'로 접근해온 기존의 태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의 글에서 지적한대로, 미국 육류업계의 자율 합의는 비용을 최소로 줄이고 이익을 최대한 늘리는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폴 크루그먼도 <뉴욕타임스>에서 말했듯이, 미국 농무부(USDA)는 소비자 안전보다는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캔자스의 한 업체가 일본 수출을 위해 광우병 전수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도리어 이를 막고 나선 것이 미국 정부였다.

이런 현실에서 업체의 '자율 규제'라는 것이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설사 미국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싶어도 업체를 강제하거나 규제할 제도적 장치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의 '간접 보장'으로 쇠고기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는 것은 크루그먼의 말대로 '여우가 닭장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 나라 건강도 못 지키는 정부에게 남의 나라 보건까지 맡기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수 없다.

촛불 시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거듭 국민들에게 소통 부족을 사과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두 번째 고개를 조아리던 순간 미국에서 진행 중이던 추가협상은 국민들의 민의를 무시한 또 다른 밀실 행정이었을 뿐이다.

국민들은 '30개월 미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만족스러운 협상이었다"고 자찬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 시작하는 '여론 수렴' 버릇도 여전하다. 이 정부는 도대체 언제나 교훈을 얻을 것인가?

미국 농무부조차 인정한 '곱창'의 위험성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안전 조치였다. 이미 30개월령 미만의 소에서도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 변형 단백질이 발견된 적이 있다. 따라서 모든 연령의 소에 대해 뇌·척추·내장 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반입을 금지하라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요구다. 게다가 한국에 대량으로 유입될 소장('곱창')은 유럽 등 많은 지역에서 식용이 금지된 위험한 부위다.

한국 정부는 소장의 끝부분(회장원위부)만 잘라내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험 부위'를 구분해서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학계의 상식이다. 유럽에서는 소장과 대장을 모두 '특정위험물질'로 규정해 식용을 금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2003년 광우병이 발생한 후, 소장 전체에 대해 식용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쇠고기 가공처리를 하는 웨스틀랜드 미트컴퍼니의 홀마크 미트패킹 도살장에서 노동자들이 도살소를 몰아넣으면서 소를 발로 차거나 포크리프트 블레이드로 때려 소들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의 비디오 장면이 나왔다. 사진은 캘리포니아 치노 홀마크미트 패킹도살장 주자장에서 순찰하는 민간경비원.
ⓒ A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미 농무부는 2005년 소비자단체의 항의를 무릅쓰고 '위험 물질'을 소장 전체에서 '회장원위부'로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육류업계의 끈질긴 로비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음에도 미 농무부의 공식 견해는 '소장을 모두 제거해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소장은 특정 소시지의 외피처럼 극히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될 뿐이다. 소장의 내수 시장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육류업계가 이를 위험물질 목록에서 제외하라고 농무부를 압박한 것은 수출을 위해서다.

자국 정부가 위험물질로 분류한 부위를 외국에 내다 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위험물질'이라는 분류 체계 속에는 과학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적 이해 관계가 뒤섞여 있다.

게다가 한국은 분쇄육(ground beef)과 육회수공정(Advanced Meat Recovery, AMR) 쇠고기('선진회수육')까지 수입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잘게 다져진 상태로 수입되는 이 고기들은 '연령'과 '부위'를 구분해서 검역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러 마리의 소에서 얻은 다양한 부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도 사용 중단한 육회수공정 쇠고기

미국 내에서도 분쇄육은 식중독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분쇄육은 햄버거 재료로 널리 쓰이기 때문에 위험 상황이 발생할 경우 파급 강도와 규모가 크다. 분쇄육이 문제가 될 때마다 주요 피해자들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었으며, 전국적 유통망을 갖춘 식당 체인에 재료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아 피해 규모도 광범위했다.

더 한심한 것은, 한국 정부가 분쇄육 속에 육회수공정 쇠고기를 섞어도 좋다고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육회수공정 쇠고기'란 살코기를 도육한 후 남는 뼈를 재활용해 만든 고기를 말한다. 뼈에 밀착된 잔고기를 뜯어내기 때문에 골수나 뼈 조직은 물론, 광우병 위험 물질인 중추 신경 조직이 쉽게 섞여 들어간다. 이 때문에 광우병 발생 후 유럽에서는 이 채취 방식이 전면 금지된 상태다. 육회수공정 쇠고기는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절반 이상까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인 중추 신경 조직에 오염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광우병 발생 후, 맥도날드에서는 '주저앉는 소(다우너)'와 육회수공정 쇠고기를 쓰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2004년 4월, <월스트리트>가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생한 후 맥도날드는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고 묻자, 최고경영자인 짐 캔탈루포(Jim Cantalupo)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고 안전 조치가 충분한지 점검했으며, 매일 상황을 보고받는 한편 유럽과 캐나다로부터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우리의 정책은 지난 20년간 변함이 없습니다. '다우너(걷지 못할 정도로 병든 소)'를 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육회수공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맥도날드가 이 약속을 온전히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혹의 시선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 체인마저 육회수공정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국가의 검역 기준이 간이식당 체인보다 허술한 셈이다. 

육회수공정 쇠고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지난달 5월 18일, <연합뉴스>가 국제수역사무국(OIE) 사무처장인 장 뤼크 앙고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기자가 육회수공정(기사 본문에서는 '선진회수육'으로 번역)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이른바 선진회수육(AMR)도 OIE가 금지를 권고한 것인가."
"우리는 기계를 사용해서 분리한 쇠고기만 금지하고 있다. AMR은 손으로 하는 것이니까 금지하지 않고 있다. 기계를 사용해서 분리하면 위험 물질과 위험하지 않은 물질이 섞여서 감염될 수 있어 금지한 것이다."

앙고 사무처장은 '육회수공정(AMR)'이 손으로 하는 것이기에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국제수역사무국은 '기계를 사용해서 분리'하는 방식만을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회수공정'에 사용되는 기계의 한 종류. 육회수공정은 기계를 이용해 뼈에 붙은 잔고기를 '긁거나, 깎거나, 짜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는 골수와 중추 신경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육회수공정'에 사용되는 기계의 한 종류. 육회수공정은 기계를 이용해 뼈에 붙은 잔고기를 '긁거나, 깎거나, 짜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는 골수와 중추 신경에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 Townsend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그의 설명과 달리, 육회수공정에서 손이 쓰이는 부분은 기계 버튼을 누를 때뿐이다. 이는 미국 식품안전국(FSIS)의 '육회수공정' 정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육회수공정은 '기계를 이용해 뼈에 남은 고기를 긁어내거나 깎거나 압력을 가해 짜내는 산업기술'이다.

육회수공정에 사용되는 기계의 매뉴얼에는 흔히 '일손을 줄여준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미국의 한 업체가 납품하는 기계는 "버려진 뼈를 이용해"서 "단 한 사람이 시간당 5000파운드(약 2.3톤)의 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만일 이 공정이 수작업이라면 대단히 손동작이 빠른 사람일 것이 틀림없다.

장 뤼크 앙고 사무처장이 '육회수공정'을 잘 모르고 있었거나, 통역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어느 경우든 육회수공정 고기는 기계로 잔고기를 분리하는,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으로도 문제가 많은 가공 방식임에 틀림없다. 여러 소에서 얻은 뼈를 한꺼번에 기계 속에 넣고 고압으로 짜내기 때문에 골수와 뼛조각은 물론, 신경 조직이 쉽게 섞여 들어간다.

도대체 한국 정부는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한국 정부는 어떤 생각으로 육회수공정 쇠고기와 분쇄육, 그리고 소장처럼 위험한 고기를 수입하겠다고 합의한 것일까? 미 식약청(FDA) 자료도 밝히고 있듯, "소장과 편도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체내에서 프리온이 가장 먼저 발생하는 부위"다. 소장 끝부분인 회장원위부를 중심으로 프리온이 축적되긴 하지만, 위험 부위만 완벽히 도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여론을 수렴한 후 장관고시를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은 이 말에 의미를 두지 않을 정도로 정부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만일 이번에도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의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시를 강행한다면, 소중한 마지막 기회를 발로 차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론'을 정부에 전달한다. 소중한 주말을 뺏어간 이 글이 정부에 의해 어떻게 '수렴'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압축 방식으로 고기를 짜내는 과정. 육회수공정(AMR)의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기계 속으로 고기가 붙은 뼈가 들어오면 피스톤이 고압으로 눌러 고기를 짜낸다. 기계 한쪽에는 작은 구멍이 촘촘히 나 있어 뼈는 걸리고 고기만 빠져 나오게 된다. 과정이 끝나면 압축된 뼈는 밑으로 빠지고 다시 새로운 뼈가 기계 속으로 들어온다.
 압축 방식으로 고기를 짜내는 과정. 육회수공정(AMR)의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기계 속으로 고기가 붙은 뼈가 들어오면 피스톤이 고압으로 눌러 고기를 짜낸다. 기계 한쪽에는 작은 구멍이 촘촘히 나 있어 뼈는 걸리고 고기만 빠져 나오게 된다. 과정이 끝나면 압축된 뼈는 밑으로 빠지고 다시 새로운 뼈가 기계 속으로 들어온다.
ⓒ Townsend

관련사진보기



태그:#미국쇠고기, #육회수공정, #선진회수육, #맥도널드, #광우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