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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그녀 이름 석 자는 '물위를 걷는 여자'를 통해서였다. 고상하고 고운 모습이 고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책을 읽을 당시에는 작자가 이런 힘든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 후, 최근에 나온 에세이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라는 책을 통해 작자의 결혼생활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삶의 녹아있는 고백서이다.

 

저자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결혼 9년 동안 평범한 일상 속에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결혼 9년 만에 저자의 나이 서른다섯에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저자의 삶은 바뀌게 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고, 남편을 간호하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것이 오롯이 저자 한 사람의 어깨위로 놓이게 된다.

 

저자는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후 24년 동안을 병간호를 하게 된다. 즐겁게 보냈다고 해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더구나 고통 속의 시간은 더 더디 가는 법이다. 저자는 그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다음은 저자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생명 연습에 들어갔다. 지루한 만큼 지루했다. 환자 생활 24년을 뒷바라지하면서 증오심도 억세게 끓어올랐고 억장 무너지는 순간순간을 맞으며 남편의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하느님께 질문하려다가 입을 닫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니. 나는 아프지 않았지만 죽었고 그는 아팠지만 살아 있었다. 그것이 24년간의 우리 부부 생활이었다. 나는 24년 동안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그 죄악의 동기는 남편이었고 그 죄악을 근절한 것도 남편이었다. 나는 그동안 소리 없는 총기를 구하고 다녔다. 그래, 물론 그의 심장을 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야. 얼마나 그가 죽기를 기다렸겠니. 아, 그런데도 그가 숨이 멎는 그 순간에 나는 신통력을 갖고 싶었다. 아! 소리치며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가 죽는 일에 죽어도 동의할 수 없다는 폭발적 외침이 저 밑바닥에서 절절 끓어올랐다. (13쪽)

 

고통은 남편의 병간호만으로 멈추지 않아 친정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고, 함께 살던 시어머니가 쓰러져 역시 병구완을 하게 된다. 그녀가 '간호10단'이라 자부할 만큼 긴 인생을 병간호를 하면서 보냈다 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한 후에는 본인이 유방암으로 투병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이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녀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혹독하다. 주변 사람이 짧은 기간 동안 아파도 힘이 드는데, 그 긴 고통의 세월을 견뎌냈을 저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저자는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는다. 나이 마흔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할 만큼 꿋꿋이 살아 낸다.

 

삶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싶은 마음이 왜 불쑥불쑥 들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자는 세 아이의 엄마로 그 모든 상황을 감당하며 아이들을 키워낸다. 우리네 어머니 세대의 지나한 삶이 작자를 통해 느껴진다.

 

이 책은 저자가 '희수'라는 마흔 즈음의 딸 같은 제자에게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 형식이 책을 편안하게 읽게 만든다. 나 또한 그 즈음의 나이여서 좀 더 쉽게 이 책을 보게 된 것 같다. 또한, 너무나 사실적으로 자신의 삶을 묘사했기에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해서, 책을 단번에 읽어 버리게 된다.

 

평균수명을 80정도로 본다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인생후반부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허나, 마흔이라는 나이는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체념하기가 더 쉬운 나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다. 인생에서 그런 것이 없다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할까. 허나, 그렇다고 치부하기에는 저자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는 상당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며 이겨낸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잠깐이었지만 힘들었던 순간이 생각나면서 공감하며 읽었다.

 

누구나 인생에서 고비는 있기 마련이다. 요는 그 고비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만약,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공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지음 .민음사 9500원


태그:#마흔, #신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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