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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들불처럼 타고 있습니다. 대전역으로 모입시다. 매일 저녁 7시!'

 

하루 한 두 차례 수신하는 문자 메시지가 가슴에 비수처럼 박히기 시작한 게 오래 전이다.

 

‘가봐야 하는데, 가봐야 하는데’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한 채 천박한 게으름을 탓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을 뉴스로만 바라보며 비통한 연대감에 젖어보지만 언제나 나는 집회 현장이 아니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살면서 시기를 놓치면 앞선 이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잡기가 참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구나 권위 있는 정부 정책을 어린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항변하는 모습을 보며 동시대를 사는 어른으로서 무척이나 부끄럽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29일)엔 쇠고기 전면 개방 창시자 이 대통령이 중국을 순방 중인 가운데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쇠고기 고시를 강행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거 정말 국민을 섬기는 거 맞는 거야?'

 

"대전역에서 만나자!"

 

"선생님! 저희들 이번 주 중에 모입니다. 언제쯤 시간 되십니까?"

"응! 금요일 오후 7시에 대전역으로 모여!"

"예? 대전역이요?"

"그렇다니까!"

"네, 알겠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 전후에 제자들이 찾아온다. 이번에 만날 제자들은 벌써 34살이나 먹은 졸업생들로 철도원, 의사, 공무원, 회사원, 고시 준비생 등 모두 5명이다. 해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모이는데 대전역으로 오라는 말에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대전역으로 갔다. 이미 많은 분들이 모여 '미친 소 너나 먹으라'며 촛불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양초에 불을 붙이고 대열 끝 부분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자유발언이 이어지고 다양한 풍물패들이 열기를 돋우었다. 8시가 조금 넘어 제자들이 도착했다. 반가움을 접고 함께 문화제에 집중했다.

 

"정말이지 이건 아니라고 봐!"

 

집회를 마치고 내 집에 모였다. 식탁을 거실 한가운데로 옮겨놓고 술판을 벌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근황을 말하고, 이어서 쇠고기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고교 시절에 딱히 나서서 발언하기를 꺼렸던 제자가 포문을 열었다.

 

"국민이 무슨 말을 하면 들어주는 게 정부 아닌가? 이 놈의 정부는 국민이 말을 해도 들어주지를 않아. 정말이지 이건 아니라고 봐."

 

"야! 광우병에 관한 진실을 알고 대응해야 하는 거 아녀? 미국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광우병에 그렇게 쉽게 노출될 거 같어? 정확한 상식으로 대응해야지. 내가 보기엔 너무 분위기에 휩쓸리는 거 같아."

 

"야!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대상을 수술하듯 사태를 바라보는구먼! 이번 촛불 사태는 다른 데 없다고 봐. 한번 맘 먹으면 국민이고 나발이고 도외시하는 정부 행태가 잘못된 거여. 촛불이 쉽게 꺼질 거 같으냐?"

 

"내가 철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마다 역 광장을 지나가는데, 이번 촛불 문화제를 보면서 느끼는 게 있어. 일반 대중들에게 엄청난 반성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봐. 아마 이명박 찍은 사람들 뜨끔뜨끔할 걸? 야! 너 혹시 이명박 찍은 거 아녀?"

 

분위기는 고조됐다. 취임 후 백일 전인데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5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회의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너나없이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는 마음 안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여력이 있을 때마다 촛불 문화제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어제 촛불 문화제 때 사회자가 그랬다. '이제 대학생들이 이 사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갈수록 대학생 참여가 많아지는 가운데 국민의 목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국민을 섬기며 경제를 살리겠다고 출범한 새 정부가 민심을 천심으로 치환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어쩌랴. 이 시대 답답한 마음 환하게 비춰주는 것은 일단 촛불 아니겠는가. 뒤늦은 참여에 반성을 한다. 동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보고 들으며 시민 정신을 가다듬을 때다.


태그:#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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