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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개 같은 놈' 하면 남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다.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가 동굴에 숨었을 때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탄로가 났다하며 이름 끝에 개(kalb)를 붙이면 큰 욕이 된다. 독일, 네덜란드에서도 개는 욕 말이고, 베트남에서 개자식(do cho de)하면 조상의 명예를 걸고 싸움이 벌어진다. 러시아에서 수캐의 성기(sobki)를 부르면 불알을 잡고 한판 붙을 만큼 개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참'의 반대로 '개'가 쓰인다. 개는 '진짜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함부로 돼 먹은 것, 즉 개떡 같다, 개똥 같다'와 같이 보잘것없고 하잘것없는 뜻이다. 개떡이 생김새는 시원찮아도 맛은 먹을 만한데 어쩌다 개똥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개가 쓰인 것으로 개꿈, 개머루, 개살구, 개나리(참나리의 상대어 백합과의 들꽃), 개불알꽃도 있다. 

 

오월이 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숲속은 새소리로 더욱 수런거리고, 따사로운 햇볕 아래로 감자 꽃들이 꿈처럼 피어나 싱그러운 세상이 열린다. 초록 바다에 잔잔한 물결, 흰 꽃들의 작은 속삭임, 줄기마다 출렁대는 잎 사이로 벌 나비들이 날아와 붕붕 초여름을 열고 있다.

 

감자 꽃 필 무렵이면 꼭 다녀와야 할 곳이 있다. 이맘때를 놓치면 일년 동안 속이 상하고 섭섭해 늘 징징대기 마련이다. 흰둥이를 앞세우고 안산(案山) 들꽃 구경을 나선다. 들꽃들을 만날 생각을 떠올리면 마음은 벌써 산 속에 가 있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 공기부터 다르다. 흠, 흠 흠…. 단내가 난다. 산은 언제나 조용히 거기 그렇게 서 있다. 그렇다고 조용하기만한 건 아니다. 산 나름의 소리와 향기가 있다.

 

오늘도 많은 들꽃들을 만났다. 산에서 보는 들꽃은 자연스러워 아름다움이 더하다. 꽃이 곱다하여 꺾어다 집에 가지고 와 보면 꽃은 벌써 야생이 아니다. 산을 버려두고 왔기 때문이다. 꽃이 숲과 새소리와 맑은 물과 공기를 떠나면 꽃의 생명은 끝난다. 사진도 매한가지다. 모든 주변 환경이 한 데 어울려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것이지, 달랑 사물 한 장만 찍어놓으면 재미가 덜하다.

 

아름다운 들꽃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향기를 맡다보면 어느새 꽃물이 몸에 배 나도 하나의 꽃이 된다. 꽃은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 새로운 의미와 향기로 남는다. 향기가 사라지기 전 서둘러 이미지를 담는다. 오늘은 향기마저 찍어내리라 다짐을 해본다. 향기가 찍힐까. 내가 꽃이 되고 꽃이 나를 사람 아닌 자연으로 대할 때 향기로 와 닿는다.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귀한 들꽃을 만났기 때문이다. 개불알꽃이다.

 

"개불알꽃님, 만나서 반가워요."

"개불알이라 하면 좀 듣기가 거북하답니다. 꽃모양이 불알을 닮았다 해 일본 사람들이 붙여 놓은 이름이랍니다."

 

"그럼, 뭐라 부르면 좋을까요?"

"요강 꽃은 어때요, 복주머니라 불러주면 더 좋아요."

 

"요강 꽃,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운 이름이네요."

"들꽃을 사랑하고 꽃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온 세상 복을 한 아름씩 안겨주고 싶답니다. 어떤 사람은 '봄 까치 꽃'으로 불러주는 사람도 있어요. 또 여름의 전령사이기도 하지요. 복주머니가 떨어지면 바로 여름이랍니다."

 

이 아름다운 들꽃을 개 불알 취급하다 보니 지금은 멸종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야생화들은 자리 옮겨 앉기를 싫어한다. '저만치 혼자 피어있기'를 바란다. 옮겨 심는다 해도 공생박테리아가 없으면 곧 죽게 되니 조심할 일이다.

 

곱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기가 거북하고 그래서 더 불러보고 싶은 꽃, 개불알꽃은 새알 크기만 한 주머닐 달랑달랑 흔들어대며 웃어 보인다. 그 때마다 주머니 옆으로 솟아난 붉은 실핏줄이 금방 터질 것만 같고, 진분홍 향 내음이 조금씩 배어나 마지막 가는 오월 하늘을 말갛게 씻어 내리고 있다. 자연이 내려준 복, 어쩐지 어제저녁 꿈에 산새들이 알록달록한 새알들을 하나씩 물고 문지방을 넘어 오더라 했다.

 

여름이 오고 있다. 누가 사바세계를 '개떡 같은 세상' '개만도 못한 인생'이라 했던가. 개 불알 꽃이라 부르면 어떠리. 버거운 세상에 지친 이들이여, "이리 좀 가까이 와 보세요. 아! 그대 가슴에 복주머니 한 송일…."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상류를 방문하시면 고향과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태그:#개불알꽃, #복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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