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터뷰 중인 이종호 작가
 인터뷰 중인 이종호 작가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품을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난다. 단순하게 외모나 신상명세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이종호(45) 작가에 대한 궁금증도 마찬가지였다. <분신사바>는 무서우면서도 슬픈 작품이었고, <이프>는 구성이 탄탄한 미스터리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포소설 작가이자, 공포소설 작가들의 모임 '매드클럽'의 운영자, 그리고 공포소설 팬카페(cafe.naver.com/64ghost)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종호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반듯하다'는 것이다. 김현자 시민기자와 함께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2일, KBS TV의 <이야기 발전소> 프로그램을 녹화하는 날이었다. 이종호 작가가 세미 정장 차림을 하고 와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이야기 발전소> 녹화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경청하고, 필요한 말을 군더더기 없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쉽게도 그는 술, 담배를 하지 못한다. '공포소설작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인터뷰는 여의도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진행됐다. 그 날의 단 한 가지 아쉬움도 바로 그것이었다.

다음은 이종호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

인터뷰 중인 이종호 작가
 인터뷰 중인 이종호 작가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 원래 술을 못하나.
"우리 집이 원래 술을 못한다. 친구들이 농담으로 '내가 너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 사줄게'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 잔이면 되거든(웃음). 매드클럽 작가들도 술을 거의 못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도 없고 해서, 작가들이 모이면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얘기한다."

- 굉장히 반듯하다는 이미지를 받았다. 작가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택했어도 꽤 잘 나갔을 것 같은데…, 작가가 안 되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겠나.
"내가 예전에 은행원 생활도 했었고, PD 생활도 해봤다. 내가 좀 자유로운 것을 추구한다. 얽매이는 걸 못 견뎌하고…. 작가가 안 되었다면 아마 자영업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부동산 중개업이라던가 이런 거(웃음). 자유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직업을 택했을 것 같다."

- 주로 소재를 어디서 찾나.
"뉴스에서도 많이 찾고, 인터넷 서핑도 많이 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것 중의 하나가 '루시드 드림'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소재를 많이 얻는다."

- 글을 쓸 때는 주로 어디서 쓰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얻은 사무실이 하나 있다. 거기서 쓸 때도 있고, 집에서 쓸 때도 있다. 식구들 다 자는 새벽 시간에는 집에서 쓰는 게 편한데, 집에 있으면 자꾸 딴 짓을 하게 된다. 인터넷도 아무래도 많이 하게 되고."

- <이프>는 구성이 탄탄한 미스터리인데, 쓸 때는 얼마나 걸렸나.
"한 1년 정도 걸렸다. <이프>는 쓸 때부터 전체 플롯을 정해두고 쓰기 시작했다. 공포소설은 엔딩이 굉장히 중요하다. 엔딩에서 모든 비밀이 다 밝혀지기 때문에. 플롯을 처음부터 잡아두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 몇 년 전에 개봉했던 영화 <분신사바>는 어떻게 보았나? 자신이 말하고 싶은 부분을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분신사바>를 만든 안병기 감독하고 시나리오 단계에서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 하나는 '왕따' 현상이다. 원작에서는 딸의 따돌림, 어머니의 따돌림이 있는데, 영화에서는 딸의 따돌림만을 다루었다. 그러니까 완전히 <여고괴담>이 돼버린 거다."

- <이프>도 영화로 만든다고 했는데.
"<이프>도 시나리오가 나와있다. 나도 시나리오를 보았는데 만족한다. 원작에 꼭 충실하길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프>는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원작대로 갔으면 한다. <이프> 시나리오는 제작사 측에서도 만족해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 <분신사바> <이프> 두 작품 모두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일부러 그렇게 의도한 것인가.
"<분신사바>에서는 왕따가 중요한 부분이다. '왕따'를 생각하고 나서 구상한 작품이다. <이프>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치를 본 적이 있다. 한 해에 죽는 사람들 중에서 교통사고 다음으로 많은 숫자더라. 충격적이었다. 자살현장이 살인현장보다 더 한이 많이 맺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것을 매개로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 앞으로도 계속 공포소설을 쓸 텐데, 공포를 가지고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제 이야기라도 불쾌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식들한테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이려고 한다. 지금도 '왜 하필이면 그런 이야기만 하느냐?'라는 이메일을 받는다. 세상에 어두운 이야기,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 이야기를 언제까지 덮어둘 수만은 없다. 그렇게 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음지에서 정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방송이나 드라마는 이상하게도 항상 밝은 이야기만 한다. 세상의 반이 어려운 사람들인데. 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 영화나 소설을 막론하고, 공포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점인가.
"공포의 핵심이라는 것은 역시 '무섭다'라는 감정이다. 작가든 독자든 이 부분이 참 어렵다. 왜냐하면 귀신이 나타나는 장면도 무섭고, 연쇄살인범이나 사람들의 이기심 이런 것도 무섭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까. 나는 작가들에게 두 가지 모두 놓치지 말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공포겠지만, 전통적으로 초자연적인 공포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다. '공포=귀신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작가들도 많다. 그런 작가들에게 나는 귀신이야기는 좀 자제하라고 말한다."

- 공포와 괴담을 혼돈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서운 것을 좋아하는데 그건 귀신이야기를 좋아하는 거다. 공포소설 단편집을 보면서 좋아하는 독자들은 공포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것이고. 그 단편집을 읽는 층은 기존에 우리나라에 번역돼 들어오는 외국 스릴러·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기존의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사회적 공포 같은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괴담이 아닌 '사회적 공포'"

이종호 작가의 작품 <분신사바>, <이프>
 이종호 작가의 작품 <분신사바>, <이프>
ⓒ 황금가지

관련사진보기


- 우리나라는 공포뿐만 아니라 장르문학의 토양이 좀 빈약한 편이다.
"항상 나도 그 부분을 고민한다. 독자가 먼저냐, 작가가 먼저냐 하는 문제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작가가 먼저다'라고 생각해서 '매드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작가들을 모았다. 그러니까 독자들도 생겨나더라. 독자들이 다음 작품도 꾸준히 원하고 있고 그렇다. 이런 변화들이 작은 변화지만 눈에 띄는 변화다. 작가군이 형성돼서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면, 독자들도 늘어나게 된다."

-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이 빈약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순문학 위주로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글 잘 쓰고 재능있는 신진 작가라면 거의 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지, 장르소설은 잘 안 쓰려고 한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추리소설이 좀 풍부해졌으면 한다. 장르소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의 토양이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공포소설도 거기에서 좋은 영향을 받아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역시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제일 뛰어난 것 같다. 처음에는 킹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일본 작가들, <링>의 스즈키 코지, <검은집>의 기시 유스케를 더욱 좋아했다. 그런데 읽다 보니까 스티븐 킹이 상상력도 뛰어나고 참 대단한 것 같다. 이름 그대로 킹인 것 같다(웃음). 하지만 난 작가들에게 스티븐 킹을 닮지는 말라고 한다."

- 어째서 스티븐 팅을 닮지 말라고 하나.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에 있다. 공포문학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나 또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가다 보니까,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장르문학이란 것은 사건과 갈등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관념이나 묘사, 작가 생각 같은 것을 넣지 말고, 넣고 싶으면 사건 속에서 우회적으로 말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꾼이 된 다음에, 자기 생각을 넣고 쓰라고 작가들에게 요구한다. 신인작가일수록 그런 함정에 빠진다."

"장르문학의 장점은 재미있는 이야기"

자신의 저서 <이프>에 서명하고 있는 이종호 작가
 자신의 저서 <이프>에 서명하고 있는 이종호 작가
ⓒ 김준희

관련사진보기


-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는 경계는 어떤 지점인가?
"구분한다기보다는…, 나는 장르문학의 가장 큰 장점은 '서사'라고 생각한다.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장르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재미있으려면 사건과 이야기가 계속 짜임새 있게 맞물려서 돌아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다 보면 일본장르문학에 빼앗긴 독자들을 다시 우리나라 장르문학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 공포소설 몇 가지만 추천해달라.
"일단 '러브크래프트(Lovecraft)'를 추천하고 싶다. 그 작가는 수많은 공포영화와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 <광기의 산맥>이라는 작품을 보면 미지의 공포를 정말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작품은 쓰기도 쉽지 않고, 읽다 보면 좀 더 색다른 공포를 맛볼 수 있다. <메두사>라는 일본작품도 좋다. 미스터리심리공포물의 걸작이라고 본다. 현재는 절판돼서 구하기 힘들 거다. '클라이브 바커(Clive Barker)'의 작품도 좋다. 원시적인 공포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을 구상 중인가.
"<귀신전>이라고 퇴마와 관계된 이야기다. TV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 퇴마사와 귀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양한 인간들을 말하고 싶다. 분량이 많은 작품이 될 것이다."


분신사바 1

이신애 지음, 백철 그림, 이가서(2004)


태그:#이종호, #공포소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