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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꽃이 참 곱다."

 

꽃의 크기도 다른 것에 비해서 크고 색깔까지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클로버는 무채색의 꽃을 피운다. 그런데 색깔이 고우니,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인다. 논두렁에 피어난 꽃은 마음을 잡아버린다.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에서는 연약하지만 당당한 모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에 대비가 되어 꽃이 더욱 더 우뚝해 보인다.

 

논은 미나리를 기르는 곳이어서 일반의 논보다는 일찍 모내기를 한다. 빨리 심어서 조금이라도 일찍 벼를 수확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나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는 모의 종류도 모두 조생종이다. 벼농사의 중요성을 모두 다 알고 있기에 미나리 때문에 벼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심는 것이다.

 

어린모를 바라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초록의 모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지금은 여리지만 햇살을 먹으면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새끼를 치고 쳐서 왕성하게 자라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그 안에 풍요로움이 배어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오관으로 감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오관을 통해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오관으로 인식하는 것을 초월한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 6식은 의식으로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고 제 7식인 말나식, 그리고 제 8식인 아뢰야식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제 6식과 제 7식은 우리 스스로 의식할 수 있지만 제 8식은 우리 스스로 의식하기 어려운 잠재의식이다. 업이 쌓이는 곳이 바로 제 8식이다. 부지불식간에 업을 쌓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린 모와 대조적으로 왕성하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클로버는,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이파리의 초록이 싱그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냥 그렇게 좋은 것이다. 좋다는 느낌에 대한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꼭 이유를 들라한다면 이유는 있다.

 

초록 빛깔은 본디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겨울을 나고 있을 때의 색깔과는 전혀 다르지만, 초록이 이파리의 원래의 제 빛깔이다. 봄을 맞이하여 원래의 색깔로 새롭게 싹을 틔워내고 있으니, 좋은 것이다. 생각 이전의 상태가 도라고 하지 않은가? 가식이 없는 본디의 모습이나 색깔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냥 좋은 것이다.

 

곱게 피어난 클로버를 바라보면서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농사지 천하대본이라고 하여 그 때에는 농사만큼 소중한 산업이 없었다. 세월 따라 이제는 달라져서 농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지만, 그 중요성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다. 국제 곡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농번기에는 참 바빴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일손까지도 다급하게 빌려 써야 할 정도로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농번기 방학이라는 것이 있었다. 방학을 통해서 어린이들의 손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농번기 방학이란 말이 아예 사라졌으니, 세월을 실감하게 된다.

 

일하기가 싫어서 부모님 몰래 빠져나와 들판을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근심 걱정 없이 달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여 년이 지났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찌 그리 빨리도 지나가는지, 원망스럽기만 하다. 나이 따라 세월의 속도가 달라진다고 하였던가? 그 말도 틀린 것 같다. 그 제곱의 속도로 지나가는 것 같다.

 

들판을 뛰다가 숨이 차면 주저앉았다. 그때에는 자연이 깨끗해서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풀밭에 그냥 앉았다가 바이러스에 감여 될 수도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재수가 없어서 바이러스에 감영이 되면 고통 받는 것은 나 자신이니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그럴 걱정이 하나도 없었다.

 

행운을 잡기 위하여 네잎 클로버를 찾는 일이 선명하다. 어쩌다가 하나라도 발견하게 되면 기뻐서 방방 떴었다. 네 잎의 클로버 잎을 소중하게 간직하였었다. 책갈피에 끼어 잘 눌러 보관하였다. 네잎 클로버를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남에게 주지도 않고 소중한 보물로 여겼었다.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하여 수많은 세잎 클로버를 밟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에는 알지 못하였다. 그것을 밟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지만, 세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행운을 바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그 행운을 찾기 위하여 행복을 밟고 있었으니, 이런 난센스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살아오면서 이런 어리석음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온몸이 오싹해진다. 모순인 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고 있었던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행운과 행복의 모순 속에서 기적을 생각해본다. 기적은 이루어지기 힘들지만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것, 앞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 삶의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하는 행위,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망들이 모이게 되면 기적은 어렵지만 일어날 수 있다. 단지 모순은 벗어나야 한다.

 

행운을 찾기 위하여 행복을 밟는 모순 속에서는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없다. 고운 색깔로 피어 있는 클로버 꽃을 바라보면서 나가 걸어온 길을 반추해본다. 고개가 옆으로 흔들어지는 것들 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행운을 얻기 위하여 행복을 밟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아야겠다. 클로버 꽃이 참으로 예쁘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완주군에서 촬영


태그:#행운, #행복, #어리석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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