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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여의도, 명동 등 시내 곳곳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가운데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에 모이고 있다.
▲ '열린 교육'은 어디갔나?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여의도, 명동 등 시내 곳곳에서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예정된 가운데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에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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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군사독재시절의 강압적 방법으로 정부의 지침에 무기력하게 따라가는 것 아닌가?"

서울시 교육청의 촛불 문화제와 관련한 '학생 지도 지침'을 하달하는 회의에 참여한 한 교사의 말이다. 옆에 있던 다른 교사는 교육청이 나눠준 '학생 지도 구역'과 '비상 연락망'이 담긴 유인물을 손으로 구겨버리며 "이건 아니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 문화제 행사가 있기 2시간 전인 17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중구에 위치한 창덕여자중학교에서는 600여명의 서울지역 중고등학교 교감 선생님들과 장학사들이 모여 '작전 회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상황본부인 창덕여중을 비롯하여 A구역부터 S구역까지 총 19구역으로 나눠서 장학사와 교사들을 배치했다.

배치 구역은 촛불 문화제가 열리는 청계광장 주변의 광화문역, 종각역, 시청역 등의 지하철역과 청계천 소라광장, 모전교 북단 등 집회 장소로 이루어졌다. 문화제가 진행되는 장소 주위는 모조리 다 지도 교사들이 버티고 있게 된 셈이다.

또한 현장에 나가있는 책임자는 상황본부에 30분 단위로 진행상황을 보고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별 안전지도 구역은 지역교육청 담당 장학사의 안내에 따른다는 방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현장에 나간 교사들은 촛불 문화제가 끝난 밤 10시 30분까지 '청소년 지킴이'로 활약하게 됐다.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에 모여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에게 배포된 배치도.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에 모여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에게 배포된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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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따르지만 각자의 생각은 다양할 것"

회의에 참여한 서울 중고등학교 교감을 비롯한 교사들은 대부분 인터뷰 요청을 피하며 "할 말 없다", "그냥 학생 지도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며 짧게 답했다. "우리 말고 장학사들한테 물어 보라"며 손사래 치는 교사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부 교사들은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서울의 한 교사는 "불만스러운 것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광우병 반대 집회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다른 분들도 선생님이라는 표면적인 신분과 지위 때문에 겉으로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만 각자의 생각은 다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것 때문에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것인데 막연히 학생이기 때문에 나서는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는 명분이 약하다"며 "지금의 모습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피상적인 대응만으로 정부의 정책에 따르라는 일방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학교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지역교육청이나 교육과학기술부 등의 정부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며 "변화된 학생들의 요구나 성향,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교육적 가치로 반영시키기에는 현재의 학교 구조상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현 정부의 성향으로 봐서 이와 유사한 사회적 분위기나 학생들의 행동이 지속될 경우에는 비슷한 현상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라며 "학교가 이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재정의 자립도, 그리고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 강당에 모여 있다.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촛불문화제 행사장 주변 배치, 학생지도 지침을 받기 위해 창덕중학교 강당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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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서 우리가 무슨 힘 있나"

옆에 있던 한 교사도 교육청의 유인물을 손으로 구기며 "이건 정말 아니다"며 혀를 찼다. "어린 학생들의 행동이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존재가 교사들 아닌가"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한 교감도 "우리가 공직 사회에서 무슨 힘이 있나"라면서 "주말인데 맥이 빠져서 말할 힘도 없다"고 짧게 말하며 무거운 몸을 강당 쪽으로 이끄는 모습이었다.

다른 한 교감도 "이렇게 여기 모인 게 사실 편하지는 않다"며 "그래도 교육청에서 안전 지도 차원에서 나오라는데 우리야 별 수 있나"라고 힘없이 말했다.

한편 이날 회의의 취지와 관련 서울시 교육청 심현각 장학사는 "교사들을 배치하는 것은 학생들을 방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집회 장소보다 역 주변, 으슥한 구역 등 외곽 지역에 많이 지키고 서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후 5시경에 회의를 마친 서울지역의 교사들과 장학사들은 교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배치된 장소로 유유히 이동했다.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창덕중학교에 모여 '학생지도 지침'을 받은 뒤 자신이 배치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서울시내 교감, 장학사, 생활지도담당 등이 창덕중학교에 모여 '학생지도 지침'을 받은 뒤 자신이 배치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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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 문화제, #서울시 교육청, #장학사,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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