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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 '동해' 를 읽고 얻은 영감으로 완성한 몽우 화백의 작품 '동해'
▲ 몽우 작 '동해' 백석의 시 '동해' 를 읽고 얻은 영감으로 완성한 몽우 화백의 작품 '동해'
ⓒ 이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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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피카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이 낳은 천재 화가 '몽우'. 33세인 그는 탁월한 색감과 독창적인 구도, 구성적 아이디어, 열광적인 열정으로 보는 이들을 매료시키며 이중섭 타계 이후 40여 년 만에 탄생한 '불세출의 화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한국 시 역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는 '백석'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면서 화풍이 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대표작으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동해' 등이 있다. 지난 4월30일부터 5월13일까지 인사동 근처 SK허브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몽우' 서울개인전을 찾아, 백석의 시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그렸다는 작품 '동해'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백석 시인의 시는 다소 어렵기는 해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불현듯이 영감이 떠 오르고 예술 이상의 감성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는 몽우 화백은 '동해'라는 작품 앞에서 뭔가 얘기할 게 많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몽우는 "이 작품은 백석 시인의 '동해'라는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받은 영감으로 그렸지만, 처음 시를 읽을 때 내용이 어려워 제대로 연상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며 "맨 처음 시를 읽고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로 만족스런 '완전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에 처음 1년 가까이 시를 읽어도 작가가 의도하는 느낌을 알 수 없었고 소화가 안될 지경이었고, 근 3년 동안 작품 구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어 "완전하다고 느낀 영감이 찾아온 뒤에도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다른 작품에 비해 거의 1개월 정도의 시간이 더 소요되는 바람에 불현듯이 떠 오른 영감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며 "유난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몽우 화백이 말하는 소위 '완전한 영감'이란 시를 읽으면서 정서적으로 시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와 일체감을 느껴야 하고, 시의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을 뜻한다.

백석 시인의 '동해'는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사람들을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하면서도 은근히 쓸쓸함과 외로움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특히 밀짚으로 만든 여름 모자인 '맥고모자'와 맥주를 의미하는 '삐루'가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당시의 새로운 외국의 신식 문물이 유행했던 시대적 상황이 나타난다. 또 우울하고 암울했던 일제시대의 궁핍한 모습들이 쓸쓸하고 외로운 가운데서도 담담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몽우 화백은 느낌으로 알게 되었단다.

백석의 시를 읽고 만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
▲ 작품 '동해'에 대해 설명하는 몽우 백석의 시를 읽고 만든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
ⓒ 이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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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불현듯 그에게 다가온 완전한 영감은 "개인적으로 느끼는 주인공의 고독함을 '맥고모자'와 '삐루'로 표현하되, 그를 둘러싼 주변에는 힘차고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시속의 주인공을 위한 가상적인 '동해'로 표현해 보고 싶"게 만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 떠오른 아이디어가 "비록 작은 화폭이지만 눈에 보이는 동해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담아야겠"다는 것이었단다.

"한 폭의 그림 속에 동해 전체가 들어 갔다"는 말을 몽우 화백으로부터 듣는 순간 그림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착각에 빠져 들게 됐다. 계속되는 설명에 귀는 열어 두었지만 나는 이미 '나만의 동해'에 떠 있는 물고기 형상의 빨간 배위에서 흔들리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맥고모자'를 벗어 등 뒤에 두고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는 기분은 그런대로 상쾌하면서도 출렁이는 파도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세차게 출렁이는 동해의 파도를 그려 내느라고 5겹이나 덧칠한 광할한 동해의 푸른 바다에 바람이라도 세게 불라치면 겁이 나서 어쩌누?

이런 차제에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앞에 놓인 '삐루' 한 병이 적지 않게 위안이 되었다. 배위에 올라와 자신을 ‘삐루' 안주로 써 달라고 내게 속삭이며 기운 내라고 위로하는 노란색 조개가 갸륵하게 보인다.

바로 이 순간 내가 타고 있는 배 양 옆과 뒤쪽에 커다란 지느러미 같은 붉은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는 더 이상 풍랑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양 날개와 꼬리 지느러미를 단 큰 물고기처럼 생긴 배라면 웬만한 풍랑쯤은 매끄럽게 헤쳐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역시 천재화가 '꿈쟁이(몽우)'다운 세심한 배려에 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달리는 배를 따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힘차게 내달리는 물개 떼는 흡사 쉬임없이 떼거리로 마실 나온 동네 아주머니마냥 조잘대는 듯하다. 이놈들은 어쩌면 내가 탄 배를 자기들보다 큰 물고기로 착각하고 따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끼룩끼룩 한가로이 울며 배 주위를 여유롭게 배회하는 갈매기는 항구주변에 살고 있는 속성으로 미루어 볼 때 육지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게다가 태풍이 몰려 올 것 같으면 일제히 항구나 등대로 날아가 미리 미리 피신할 수 있도록 눈치를 줄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저녁 하늘에는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은 몽우 화백의 또 다른 세심한 배려로 보인다. 고향에서 늘 보아왔던 북두칠성이나 삼태성만 보아도 고향에 온 것 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탓에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듯이 가득하고 아득히 먼 은하수가 구름처럼 보이는 시골에 고향을 둔 나로서는 더 없이 별 헤는 밤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배의 선단에 실려 있는 밝고 큰 꽃은 밝고 희망찬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할 것이다. 어쩌면 꽃이 바로 배가 나아가야 할 목적지 또는 희망 그 자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꽃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마냥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로존 이론의 양동봉원장과 만나 자신의 차기 작품세계 확대 방향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몽우
▲ 제로존이론의 양동봉원장과 만난 몽우 제로존 이론의 양동봉원장과 만나 자신의 차기 작품세계 확대 방향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몽우
ⓒ 이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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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쓸쓸하고 외로울 수 있는 혼자만의 동해 바다이지만, 주변에 따뜻함이 함께 참여 하도록 배려함으로써 희망적이고 행복한 또 하나의 동해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히 천재적인 '몽우' 화백의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몽우' 화백의 작품 설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기법과 효과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는 설명을 들려 주었다.

배에 타고 있는 주인공의 얼굴이 입체적인 형상을 한 파도 위에 그렸다. 입언저리 붉은 색 점을 기준으로 아래와 위 입술이 갈라져 보이게 그림으로써 관객이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이 들게 한 것이 특이했다.

첫째, 사람 얼굴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즉 그림의 좌측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면 인중이 길게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주인공의 여유 있는 마음을 표현한 효과를 얻는다.

둘째, 반대로 얼굴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즉 그림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바라보면 인중이 짧게 보이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주인공의 마음이 초조한 상태를 보여 주는 효과를 낸다.

셋째, 그림 정면에서 얼굴을 바라보면 역시 인중이 길게 보여 첫째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여유 있는 마음을 나타낸다.

넷째, 어른처럼 키기 큰 관객이 얼굴 위쪽에서 내려다 보게 되면 평범한 얼굴로 남자가 사색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효과가 난다.

마지막으로, 아이처럼 키가 작은 관객이 아래에서 위로 얼굴을 쳐다 보면 입술을 다물고 새침한 모습으로 마치 주인공이 삐친 것처럼 보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게 하는 기법은 앞으로도 종종 다양하게 시도할 예정"이라고 '몽우' 화백은 밝히고 있어 자못 기대가 되고, 어쩌면 그의 천재성이 더욱 돋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백석의 시로부터 영감을 얻어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한 몽우 화백의 차기 작품은 '자연과 우주의 근원적인 분야로 주제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이는 물질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가 어떻게 상호 연계되어 있는지 밝히는 문제는 어릴 때부터 가져왔던 화두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전시장을 찾은 제로존 이론의 창시자이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재야의 천재물리학자로 알려진 양동봉 원장과 만나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모든 물리량을 단위가 없는 무차원수로 나타냄으로써 광자를 모든 자연의 근원으로 인식하는 제로존 이론을 통해 새로운 영감의 폭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고 말하는 몽우 화백의 새로운 화풍이 기대된다.

<동해> - 백석

동해여, 오늘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 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들이 누웠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 온 것이겟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매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내.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속 십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려쁜 처녀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 - 사람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드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있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원이 오기 바쁘게 그대 한테로 가야 하겠습네.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애가우손이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지. 하기야 또 버들개 봉구이가 좀 좋은가.횃대 생선 된장지짐이는 어떻고.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 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은 아니지만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함소주 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복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으레히 오는 노랑 바탕에 까만 등을 단 제주 배 말입네.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많아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뱅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 언제 어느 모롱고지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둥... 참 말이 많지.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칠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색시하고 살렵네.

내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하도 미역 내음새에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네.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낱낱이 키가 자라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아내를 잃고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있는 것과, 그리고 그 영어를 잘하는 총명한 4년생 금이가 그대네 흥원군 흥원면 동상리에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



태그:#몽우, #피카소, #동해,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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