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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에서 바라본 우도의 전경, 변방의 섬이지만 제주도의 상징으로 모자람이 없는 섬이다.
▲ 우도 성산에서 바라본 우도의 전경, 변방의 섬이지만 제주도의 상징으로 모자람이 없는 섬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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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신록의 숲에 가면 은방울꽃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하고, 이제 막 피어나는 아카시꽃이 은방울꽃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바람 많은 제주는 이맘 때면 감귤원마다 가득 피어난 귤꽃이 검은 화산석 돌담길을 따라 돌고 돌아 아무개의 집마당 가릴 것 없이 귤꽃 향기로 가득 채운다. 그 향기는 그리운 제주의 향기다.

바다에 서면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에메랄드빛 바다, 귤꽃의 향기가 어우러져 오감을 자극하고 세속에 찌든 마음까지도 귤꽃 향기로 가득 채워준다. 바람의 섬 제주에서 온갖 시름은 바람에 날려 버리고, 향기로운 삶의 그림자를 가득 채우며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바로 귤꽃 향기 가득한 5월이다.

오늘 아침 옥상에서 담은 귤꽃, 귤꽃의 향기는 제주의 향기다.
▲ 귤 오늘 아침 옥상에서 담은 귤꽃, 귤꽃의 향기는 제주의 향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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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과 연중행사로 치르는 몸앓이로 인해 옥상텃밭에 무관심했다. 상추와 쑥갓, 실파가 연신 식탁에 오르고 있음에도 무덤덤했고, 금낭화와 매발톱이 피었다 지고 있는데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10년 이상 옥상 텃밭을 가꾸시는 부모님들 덕분에 늘 신선한 무공해채소를 공급받고, 사시사철 꽃을 보다 보니 감사해야할 일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일주일 동안의 몸앓이 끝에 몸이 다시 살 만하다고 소식을 보내오는 듯하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여니 꽃향기가 확 밀려 들어온다. 참으로 그리웠던 향기다. 귤꽃의 향기, 그랬다. 제주의 향기, 귤꽃의 향기였다.

하나하나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 귤 하나하나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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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나무가 옥상에 자리잡은 것은 꽤나 오래됐다. 큰화분에 심어 겨울이 되면 온실에 들여 놓는 수고와 봄이면 흙을 갈아주는 수고를 하면 어김없이 새콤달콤한 귤을 한아름 선물해주는 귤나무 10여 그루와 동거한 지 10여 년이 넘었다.

아들이 제주에 몇 년 있을 때 귤꽃을 보면서 늘 아들 생각을 했다는 어머니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나무 중 하나다. 지난 해에는 해거리를 하는지 꽃도 시원찮고 귤도 그리 많지 않더니만 올해는 귤꽃이 바글바글하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번 가을에는 제법 많은 귤을 수확할 것 같다.

옥상에 올라가니 부지런하신 어머님이 옥상 텃밭을 서성이며 이런저런 일을 하고 계신다.

"와! 제주도의 향기가 옥상에 가득하네요? 잘 주무셨어요?"
"그려, 올해는 꽃이 참 많이 폈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꽃잎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추하게 보이질 않는다.
▲ 귤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꽃잎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추하게 보이질 않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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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핀 꽃들은 하나 둘 이파리를 놓고 있다. 꽃술 안에 작은 것, 그것이 자라 귤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신비스럽다. 한창때가 지난 저 꽃이 추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일 때문일 것이다.

"그려, 몸은 어떠냐? 아직도 아프냐?"
"어제부터 좋아졌어요. 매일 옥상에서 거둔 유기농 채소를 먹는데도 부실기업이네요."
"그나저나 미친소에 조류독감에 지엠온가 뭔가에 먹을 것이 없으니 어쩌냐?"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자급자족하면서 살아야죠, 뭐."
"농사 질 줄 알아야 농사도 지을 것 아녀, 땅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골로 내려가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얘들은 어떡하구... 이 놈의 나라가 망쪼지... 먹을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당께."


탐스럽게 익은 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 귤 탐스럽게 익은 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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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제도교육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오신 분이시다. 자연의 일부인 논밭에서 땀흘려 노동하며 배우신 분이시다. 그래도 거대담론으로 들어가면 책상에 앉아 공부한 이들보다 올곧은 결론을 내어놓으신다. 직관, 나는 그것을 자연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자연에게서 배운 직관이라 생각한다.

제주의 향기가 옥상에 가득한 아침, 육신의 몸이 부디끼지 않고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다. 매일 별탈 없이 자고 일어나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살던 날들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5월에 제주에 출장가는데 귤나무 몇 개 사올까요?"
"그려, 이제 이것들도 나이가 많아서 바꿔줘야 할 때가 되었어."
"그런데 언제까지 옥상텃밭 하실 거예요?"
"뭐 언제까지혀, 죽을 때까지 하는거지... 별걸 다 물어본다. 놀면 뭐하냐? 느그들 먹을 거라도 공수하면 그것이 낙이제."

수확하는 즐거움, 한숨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귤수확 수확하는 즐거움, 한숨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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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꽃 향기 가득한 아침, 나는 서울 하늘에서 그리운 제주의 향기를 맡는다. 어쩌면 이렇게 떨어져 있어 '그리움'도 느끼게 되고 그 곳에 있을 때가 참으로 소중한 때였구나 느낄 수 있으니 서울 하늘에 서 있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아니, 어디에 서 있든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리라.

이런 기분 좋은 향기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충만했으면 좋겠다. 들으면 기분 좋고, 보면 행복해지는 그런 것들이 넘쳐나면 좋겠다.

거실로 돌아와 TV를 켜니 어제와 밤 사이 있었던 주요 사건들이 앵커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온다. 좋은 소식이 없다. 다시 속세. 그러나 그 곳도 내가 살아갈 곳이다. '그려, 그 놈들은 그렇게 살라고 하지 뭐. 나는 나대로 살지.' 툴툴 털고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귤,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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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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