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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시끄럽다. 국민들이 아우성이다. 지난 몇 주째 정국 핵심을 강타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결과 때문이다. 청계천 광장에는 중고생들을 포함하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뛰쳐나와 촛불을 밝히고 인터넷 상의 이명박 탄핵 서명은 인터넷 '다음'이 일시적으로 다운될 정도로 폭주하여 한 달새 120만명을 돌파하였다. 모든 신문, 언론매체 등은 쇠고기 협상의 진위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히 "쇠고기 대란"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시민들과 국민들이 일거에 거리로 뛰어나서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120만명의 탄핵서명과 수만명이 참가하는 촛불문화제는 우리 국민들의 판단이 옳고 정부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이미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위험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쇠고기 협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사고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협상의 기본 망각한 쇠고기 협상

 

협상은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사전적 의미를 보더라도 협상의 목적은 "판단, 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협상의 형태는 "여럿이 서로 의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 협상에서 협상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협상을 통해 "판단,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기도 전에 판단, 결정을 내려버렸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5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측 전문가들과 검역당국이 국민건강과 안전을 고려하여 마련한 협상방침을 농림부가 협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미 포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4월 10일자로 작성된 '미국산 쇠고기 관련 협상 추진계획(안)'을 공개하였다.

 

원래 농림부는 2007년 4월에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의 지위를 획득하자 우리측 전문가들과 검역당국의 조언을 받아 2007년 9월에 미국산 쇠고기 협상지침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지침에는 30개월 미만 고수, 7개의 SRM(광우병 위험물질) 모두 제거, 내장전체 수입금지, 사골뼈, 골반뼈 등 제거 등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항목들은 불과 반년만에 가뭇없이 사라진 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협상대표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도 전인 4월 10일에 "장관의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버리고 말았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여럿이 서로 의논하는" 협상의 형태를 갖추지도 못하였다. 다시 말해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활동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강기갑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가 미국행 비행기를 탈 당시 그나마 협상방침으로 정했던 것은 "광우병 추가 발생시 잠정 수입중단", "광우병 위험물질 검출시 수입물량 전체 불합격", "작업장 수출승인 취소와 1년간 재승인 보류" 등이 있었는데 협상과정에서 이러한 방침들이 모두 관철되지 못하였다고 폭로하였다. 말을 바꾸면 한국정부는 미국 현지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여도 수입을 중단할 수 없고 미국산 수입소에서 광우병 위험물질이 검출되어도 수입물량을 반송시킬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쯤되면 이것은 한-미간 "의논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 통보를 접수한 수준에 불과하다. 협상의 주도권은 한국정부가 아니라 미국정부에 있다. 그렇다면 미국산 쇠고기가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현실의 목적은 미국 축산경제의 활성화이다. 한-미 FTA의 조속한 타결은 한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허울좋은 포장일 뿐이다.

 

대미 협상력을 높여라

 

쇠고기 협상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나듯 한국 관리들이 상대하기만 하면 쩔쩔매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대대로 한미간 협상은 우리 국민들의 울화통을 자극하는 협상들의 연속이었다. 단적인 예로 1997년의 IMF 구제금융을 들 수 있다. 1997년 11월 당시 김영삼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주저하던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청와대 보좌관을 해임시키면서 경제부총리로 임창렬을 임명하여 IMF 구제금융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는데 놀라운 점은 임창렬이 바로 IMF 출신 경제관료였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합병 사례, 한-미 FTA 협상 사례 등 수많은 경제적 현안에서 한국은 미국만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사회적 현안으로 따지고 보면 한미간 굴욕적 현안은 더욱 늘어난다. 2002년 촛불시위의 형태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주한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비롯한 각종 주한미군 범죄 행각, 주한미군기지 이전비용 문제,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서 불공정한 F-15k의 선정 등 각종 현안에도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된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만 만나면 쩔쩔매는 이유는 바로 '한미동맹' 때문이다. 이는 그간의 대미굴욕외교가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는 한나라당 집권시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점을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정부는 미국과의 협상탁에만 앉으면 언제나 앵무새처럼 "한미동맹 강화"를 주절거렸고 돌아오는 몫은 한국정부의 부담 증가였다. 이명박 정부 역시 미국행 비행기 탑승과 동시에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운 터라 한국정부는 앞으로 더더욱 미국과의 협상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상황이 많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은 대미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해법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도 큰 틀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미협상력이 "아예 없어서" 발생한 문제이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기형적인 친(親)미국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농림부 뿐 아니라 산자부, 재경부 등 여타 수많은 정부부처에서 제2, 제3의 쇠고기 협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는 "한미동맹 강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협상이란 본디 자신의 단점을 최대한 가리고 장점을 설파하면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며 "난 당신이 없으면 절대로 안돼요"라며 자기 약점을 선언해놓고 협상을 시작하니 미국에게 종합선물세트일 뿐 제대로 된 협상이 이루어질 턱이 없다.

 

미국에게 한미동맹은 실용주의의 연장일 뿐

 

이명박 정부가 '실용'을 표방하지만 적어도 '실용주의'에 관한 한 미국을 따를 국가는 없다. 미국은 국가의 철학과 비전, 국민들의 생활정서에서도 '실용주의'가 습관된 나라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상회담에서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한 이명박 대통령이 간절히 원하기 때문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그것이 현 시기에 미국의 국가 이익에 맞기 때문이다. 미국은 실용적 차원에서 동맹을 대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미국에게 이득인 이유는 첫 번째, 핵을 보유한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북한의 2006년 핵실험은 미국의 핵독점 체제에 커다란 파열구를 낸 충격적 사건이다. 미국은 휴전선 인근지역의 주한미군에 기초한 한미동맹전략을 주력으로 한 대북압박을 대북정책의 기본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위해 한미동맹은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세계 지위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난과 중동과 남미 등지에서 수많은 반미정권이 출현하는 현상 등으로 최근 미국의 세계적 권위는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강조는 미국의 실추된 권위를 가리는데 매우 유용하다. 미국은 유엔의 승인도 없이 이라크 전쟁을 추진하였는데 다국적군의 1순위 고려 대상은 '한미동맹'에 목매고 있는 한국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아프간 파병 재논의에서도 거론되는 사안이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아예 이것을 "21세기 전략적 한미동맹"이란 이름으로 수면위로 부상시키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을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핵물질 확산금지, 자유로운 무역환경 등 21세기 의제에 맞는 실질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여 이러한 한미동맹의 확장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결국 "한미동맹"이란 이름으로 미국을 위해 한국군이 세계로 동원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도 보여지듯 한-미간 불평등한 협상체결도 미국에게 커다란 이익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은 광우병 파동으로 존폐의 기로에 선 미국 축산업계에는 마치 가뭄의 단비와 같다. 미국인들마저도 호주 등 광우병 청정지역의 소를 선호하고 있으며 미국산 소도 20개월 미만의 소가 전체 소비량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내 쇠고기 유통요건은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으로 물밀듯이 들어가게 될 쇠고기는 축산업계의 활로를 모색해주는 생명줄과 같다. 동시에 한-미간 파격적인 쇠고기 협상결과는 현재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는 일본, 유럽 국가 등과의 협상에서도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위 3가지 이유 가운데 한국경제발전과 관련된 항목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의 강화로 미국경제와 더불어 한국경제가 호혜적 입장에서 공동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쇠고기 협상결과로 보면 결국 공동번영이 아니라 미국의 번영일 뿐이다. 한국정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실용주의 미국의 "선처" 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탄핵서명을 발기하고 촛불을 들고 사방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것이다.

 

실용에 맞서 "대미실리외교"를 해라

 

이명박 정부는 "미국은 우리에게 최대의 시장이며 미국의 경제난은 난국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커다란 기회입니다"라고 주장하며 한-미 FTA를 비롯한 미국과의 경제협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가난한 전쟁고아에게 초콜릿을 나눠주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 철두철미한 실용주의 기업가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가 이렇듯 다소 감정적인 단어를 선택한 것도 '실용주의'가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행태를 합리화하는 도구이며 사업이윤을 빌미로 안전사고를 방치하는 사업가의 매몰찬 행태를 합리화하는 사고방식이다. 단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한미정상회담에서 요구하였다는 기후협약에 대해 미국이 보여준 냉랭한 태도를 보면 미국 '실용주의'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실용주의로 똘똘 뭉친 미국에게는 '한미동맹' 구걸외교가 아니라 상대를 얼르고 달래며 실질적 이익을 확보해나가는 '실리외교'로 맞서야 한다.

 

기왕 스스로를 '대한민국 CEO'로 격을 낮춘 이명박 대통령이면 미국으로부터 "This man"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대미협상에 나서야 한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아쉬워 붙잡고 있는 '한미동맹'을 미국이 깨뜨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이 하는 입 발린 소리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미국의 행동을 보면서 회담의 실질적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실리외교를 하는 모습의 한 예로 6자회담 장에서 북한의 외교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도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한번 결정했으면 어떠한 사단이 나더라도 그것만은 놓치지 않는 집요함, 미국의 실질적 행동조치가 있을 때까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배짱 등을 면밀히 분석해서 가져올 것은 가져와야 한다. 미국이 공세로 나오면 6자회담을 중단해버리는 북한의 외교적 역공세는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대외에 밝히는 것과 동시에 6자회담이 가로막히면 미국이 더 힘들어진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는 치밀한 행동이다. 최근 북한은 "영변 핵시설 불능화도 다시 고려할 것"이란 발언으로 북-미간 싱가포르 합의를 이끌어냈다.

 

협상은 이렇게 엎치락 뒤치락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쇠고기 전면 재협상"이란 주장을 펼칠 관리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런 정신상태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풍토에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10년 전 신한국당 김영삼 정부처럼 IMF에 나라 경제를 통째로 빼앗기기 십상이다.

덧붙이는 글 |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태그:#소고기 협상, #이명박, #한미동맹, #실용주의, #실리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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