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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 더 플래닛: 베트남(Racing The Planet: Vietnam)

[첫날] 105km 지옥의 레이스 : Si Ma Cai - Pha Long - Muong Khuong - Coc 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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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전 한바탕 마당극 .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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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8월(월) 오전 8시 현지 민속공연팀과의 한바탕 잔치를 끝으로 5박 6일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출발 전 주최 측 대표인 메리가담스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현재 이곳은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진흙탕 속의 레이스가 될 것이다. 모두 안전에 최대한 신경을 쓰고 위급상황에 처하면 언제든 포기하고 구조요청을 해라. 그럼 행운을 빈다."

분명히 쉽지 않은 레이스 같다.

출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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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몸이 자동으로 튀어나간다. 그동안의 다이어트 효과인지 처음부터 몸이 너무나 가볍다. 배낭 무게도 8kg 정도로 아주 적절한 무게로 잘 꾸렸다. 발걸음도 가볍고 호흡도 일정하고 모든 게 너무나 완벽하리만큼 최고조다.

포장된 마을길을 달린다.
 포장된 마을길을 달린다.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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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길은 마을을 벗어 날 때까지 포장된 길이라 노면은 딱딱하지만 그 반동으로 통통 튕기는 기분이다. 선두권 15명 그룹에 속해서 무난한 레이스가 진행되고 있다.

역시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진흙탕의 비포장 도로가 우리를 기다린다. 그래도 계속해서 작은 마을들이 연결되는 길이기에 도로 폭도 넓고 깊게 빠지는 진흙이 아니다. 15km에 있는 첫 번째 체크포인트까지 내리막의 연속이라 부담없는 달리기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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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년 고비사막대회 멤버들과 .
ⓒ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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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참가한 병식이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안 보이지만 주변에 같이 달리는 참가자들은 초창기부터 여러 사막 대회에서 같이 구르던 인간들이다. 그 중 우리끼리 말하는 오리지날 고비 맴버들이(2003년 1회 대회 참가자들) 다수 보인다. 키가 2m를 넘는 스웨덴의 닐슨 아저씨, 미국의 브레드리, 로버트, 스위스의 필립, 스코틀랜드의 크리스토퍼, 얼마 전까지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하던 알레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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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필립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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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거니 뒤서거니 스칠 때마다 우리끼리는 유난히 수다가 심하다. '필립'은 동생과 함께 참가를 했는데 어쩜 둘이 그리 비슷해 보이고 하는 짓이 똑 같은지 배꼽을 잡았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잘나가는 음식점을 경영하는데 조상 대대로 요식업에 종사하는 음식으로 뼈대있는 집안 장손이다.

음식점 사장답게 한마디 하며 지나간다. "제씨, 먼저 가서 밥해 놓을게…."
나도 한마디 한다. "그래, 김치 볶음밥에 닭 한 마리 잡아놔!"

신나게 달리는 유지성
 신나게 달리는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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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방심했는지 15km 지점 몇백 미터 안 남기고 자갈들이 있는 지역을 통과하다 돌 하나를 잘못 밟았다. 순간 오른쪽 다리가 찌릿하더니 대퇴근에 순간적인 마미 증상이 생겼다. 다리가 안 움직여주니 일단 주저앉아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시도했다.

얼마 후 마비증상은 풀렸지만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근육에 뭔지모를 손상이 생긴 것 같다. 지금까지 초반에 다리 부상을 당했던 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천천히 뛰는 게 가능해서 속도를 최대한 줄여 나아갔다.

강을 건너는 코스
 강을 건너는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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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 강을 건넌 후 본격적인 언덕이 시작됐다. 지금부터 1000m 이상을 올라가야 한다. 그동안 배낭에 부착했던 스틱을 사용하며 조심조심 올라갔다. 하지만 다리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상태가 안 좋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진통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더 상태가 안 좋아질 때 약발이 안 들 수가 있다.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

라오카이에 도착하면서부터 비를 만났는데 이곳은 이전부터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진흙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뜩이나 미끄러운 바닥에 오른쪽 다리까지 힘이 빠지다 보니 자꾸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이제는 여러 번 꺾여 넘어진 무릎까지 시큰거린다. 다리는 아픈데 자욱한 안개까지 시선을 막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안 보이는 길을 가려니 이건 완전 지옥으로 가는 기분이다.

미국의 아줌마 팀.
 미국의 아줌마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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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행동식을 좀 먹었더니 힘이 나면서 진행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가끔 스트레칭도 해주면서 속도 조절을 하는데 점점 나를 앞서가는 참가자들이 늘어난다. 모습을 보면 다들 진흙 범벅에 몰골이 말이 아니고 피곤이 얼굴 가득하다. 그래도 서로 만나면 웃으면서 힘을 불어 주는 기합을 주고 받는다.

코스를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소수민족들이 작은 마을을 형성해서 살아가고 있다. 상당히 체구가 작은데 상대적으로 옷 색은 화려하다. 그들은 성인 키가 1m40 정도인데 참으로 신기했다.

포기는 없다, 정신력으로 버티자

끝이 없을 것 같은 오르막도 세 번째 체크포인트 근처부터 내리막으로 변하면서 길이 좋아졌다. 제법 규모 있는 마을에 체크포인트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씨에도 현지 주민들이 잔뜩 구경을 나와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앞으로의 코스에 대해서 스태프인 '크리스'에게 물었다. 지금부터는 대부분의 코스가 포장되어 있으며 꽤 커다란 마을도 지난다고 한다. 길이 진흙밭이 아닌 것에 감사를 하지만 다리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에 앞으로 가야 할 길 62km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래 계획은 첫날 코스가 120km였다. 하지만 폭우로 유실된 코스가 생겼기에 105km로 단축을 했다. 지금 같은 몸 상태라면 15km 단축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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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밭 속을 헤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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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치카게'상하고 길을 가는데 어둠이 찾아오며 안개와 함께 다시금 비가 시작된다. 지도상으로 보면 일방적인 내리막의 연속 같지만, 현실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짜증 나는 내리막이다. 어차피 오르막에서 뛰는 것은 예전에 포기했지만 다리 상태로 인해 내리막까지 달릴 수 없다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점점 깊어가는 안개숲.
 점점 깊어가는 안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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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너무 심하니 랜턴을 켜도 앞이 잘 안 보인다. 코스는 좌측으로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대책 없는 절벽이며 오른쪽은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길이다. 안개에 랜턴 빛이 반사되어 앞이 전혀 안보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랜턴을 배쪽에 있는 보조 배낭에 부착하여 불빛을 아래쪽으로 조정하니 이제야 길이 보인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떠올린다.

네 번째 체크포인트부터는 보슬비가 폭우로 변했다. 기온도 내려가 한기를 느낄 정도다. 고어텍스 자켓을 꺼내 입고 배낭과 몸 상태를 다시금 정리했다. 혹시나 불필요하게 무거운 짐이 있으면 먹거나 버리거나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리 상태는 더욱 안 좋아져서 이제는 왼쪽 다리까지 전염된 상태다. 발목도 삐었는지 많이 부었고 넓적다리 통증으로 인해 앉아서 스트레칭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끝까지 진통제를 안 먹고 정신력으로 버틴 게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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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비, 힘든 레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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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때문에 재킷 모자를 쓰고 버프로 얼굴을 가리고 가야만 했다. 라오카이 인근 커다란 마을에서는 코스에 야광스틱이 안 보인다. 현지 아이들이 죄다 집어 갔기 때문이다.

오지 레이스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로 이럴 때를 대비해 주최 측에서는 나뭇가지나 바닥에 리본이나 마킹을 해 논다. 비 오는 어두운 밤이지만 방향을 모르는 지점에서는 일일이 주변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만 했다.

어렵게 어렵게 다섯 번째 체크포인트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는 온수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참가자 전용 텐트가 제공된다. 일부는 이곳에서 몇 시간 눈을 부치고 가지만 나는 늦은 저녁을 먹고 계속해서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 앞으로 31km만 더 가면 편안히 쉴 수 있는 캠프다. 다리 상태가 심각할 정도로 안 좋지만 열 번째 오지 레이스에서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마지막 체크 포인트를 지나 마을을 지나는데 계속적인 동네 개들의 집단 공격이 있었다. 매번 스틱을 휘둘러 물리치면서 가야 한다는 것이 지친 상태에서 여간 귀찮고 힘든 게 아니다. 그나마 스태프들이 에스코트 해주는 지역에서는 동네 개들도 조용하지만 차량만 없어지면 왜 그리 발광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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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레이스 끝, 죽다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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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언덕 위에 도착지점을 알리는 깃발이 보인다. 이제는 비도 멈추고 날이 훤하게 밝아 아침의 여유를 찾을 수가 있다.

비몽사몽 피곤함과 다리의 통증으로 힘들게 기다시피 언덕을 올라가 골인 지점에 도착하니 자원봉사를 하는 '람콕'이 달려오며 반긴다.

아이고, 105km를 오는데 꼬박 23시간 25분이 걸렸다. 처음부터 부상을 당해 이제는 양쪽 모두 정상이 아닌 다리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준 게 대견스럽기만 하다. 기특하다 '유지성!'. 그런데 내일은 어떡하지???


태그:#마라톤, #베트남, #어드벤처레이스, #여행,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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