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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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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막내동생은 늦둥이입니다. 아버지 나이 마흔아홉, 어머니 나이 마흔둘에 동생을 낳았기 때문이죠. 나와는 8살 차이가 납니다. 나이 지긋한 부모님을 염려해선지 몰라도, 동생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상대학교 농학과에 진학했고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을 심고 가꾸고 따는…. 농민의 삶을 살아가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고, 때론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동생은 농민의 삶을 '한우'에 걸었습니다. 올해로 11년째인데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경남 사천에 있는 작은 쇠마구간에서 한우 두 마리로 한우농사를 시작했습니다. 11년 동안 축사 신축을 3번, 증축을 1번 해 지금은 50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한우를 50마리 키운다고 하면 "어느 정도 기반은 잡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지난 18일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라는 쓰나미가 몰아쳤습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상황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죠. 안 그래도 근심에 차 있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1년 동안 한우 키운 동생에게 닥친 미국발 '쓰나미'

동생은 "싼값에 맛있는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격분했습니다. 평소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쉽게 좌절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동생은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푸들'이 되어 버렸다"고 격정적인 어조로 말하더군요. 이 대통령이 말하는 '국익'은 결국 가진 자, 대기업, 대통령 같은 이들의 국익이지, 농민과 서민들의 국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싼값에 맛있는 쇠고기 먹을 수 있다면 자기들이 먹으면 됩니다. 그리고 형님 생각해 보세요. FTA가 비준되면 3만불 시대가 도래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삼성과 같은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3만불이지, 우리 같은 농민들에게는 희생만 강조하는 것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면 우리 생명권이 위기에 놓이기 됩니다. 결국 농민과 서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지요. 있는 사람들 살기 위해 힘없는 농민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농민들은 아무 말하지 말고 희생만 하라는 것을 우리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요."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했을 때 송아지 값이 얼마나 떨어졌니?"
"숫송아지는 50만원 정도 떨어졌어요. 지난해에는 250만원~27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만원~220만원 정도 나가요. 암송아지는 3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80만원 정도 하니까 100만원 이상 떨어진 거죠."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18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광우병 쇠고기 국민감시단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수입쇠고기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머리띠를 묶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18일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광우병 쇠고기 국민감시단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수입쇠고기 협상 중단을 요구하며 머리띠를 묶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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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소 가격은 얼마나 떨어진 거지?"
"숫소(거세우) 600kg이 500만원 정도였는데 요즘 440만원 정도, 암소는 550만원에서 480만원으로 떨어졌어요."

미국산 쇠고기를 개방한다는 소식만 전해졌을 뿐인데도, 벌써 10~12%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쇠고기가 수입되고 우리 식탁에 오르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걱정되고 또 걱정됐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없다면 소값은 끝도 없이 떨어질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동생은 소값 말고도 걱정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우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사료값이라고 했습니다.

"형님, 사료값이 지난해 대비 50%나 인상됐어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한우값이 10%정도 떨어지는 것은 예상했고,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사료값 50% 인상이 가장 큰 문제예요. 송아지가 태어나서 1년동안 먹는 사료값이 140만원인데, 이게 50% 인상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료값만, 200만원 정도 들어간다는 것인데, 여기에 인건비 등을 더하다 보면, 소를 팔아 농민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몇 푼 안 됩니다. 그것마저 시설유지비, 투자비 환급 등을 하고 나면 남은 건 빚잔치 뿐이지요. 한우농가에 진짜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정부기금 조성?... '그림의 떡'

"정부가 기금을 조성한다고 하던데, 이게 한우농가에 도움이 되니?"
"정부지원은 '그림에 떡'이에요. 정부가 FTA, 농산물개방을 하면서 농업 대책으로 내 놓은 것이 대규모 영농정책이었어요. 규모화를 위한 시설에 정부가 투자를 한 거죠. 그런데, 그게 다 정부 지원금이었습니다. 결국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게 된 거죠."

정부지원금은 공짜가 아닙니다. 다 빚입니다. 대형화, 규모화로 가면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투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민들은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가 지원을 한다지만 부채를 안고 있는 농민들은 돈을 빌릴 수가 없어요. 정부가 한우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지원을 해주려면 이를 해결해줘야 합니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대책 없이 기금만 조성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동생은 또 사료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농가에서 쓰이는 사료는 거의 수입입니다. 국제곡물가격이 올라가면서 사료값은 당연히 인상될 수밖에 없습니다. 벌써 지난해 대비 50%가 인상되었는데, 4월말쯤 사료값이 다시 오른다고 합니다.

"정부가 사료값 안정을 위해 한우 농사를 짓는 사람과 농민들에게 사료용보리(청보리), 호밀 등을 심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 바랍니다. 몇 년 후에는 보리 수매가 없어질 것인데, 농민들이 사료용 보리를 심을 때 지원해주면 사료값 안정에 도움이 될 거예요. 풀도 수입하는 지경이거든요. 가장 겁나는 것이 사료값입니다. 특히 돼지의 경우, 사료만 먹이기 때문에 사료값 인상과 미국산 쇠고기 개방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돼지값 안정을 위해서도 사료값 안정이 필요해요."

쇠고기 개방 = 전체 농업 붕괴 시나리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한 이명박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요구하고 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한 이명박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을 요구하고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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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이외에도 유통과정의 투명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과정에서 한우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가에선 한우를 고급화 명품화로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한우로 둔갑할 수 있습니다. 유통과정의 투명화가 정말 필요해요. 한우는 지금 명품화와 고급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를 지켜야 합니다. 정부가 유통과정에서 한우로 둔갑하는 외국산 쇠고기를 찾아낸다고 하지만 아직 미비합니다."

외국산 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한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산 또는 호주산을 한우로 속여 파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한우 농가에선 송아지가 태어나면 '바코드'를 찍어 족보를 만들고 있지만 판매와 도살, 소비자에게 이르는 모든 과정은 아직 투명하지 않습니다. 동생의 말은 정부가 나서서 이를 투명화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생은 '미국이 쇠고기 개방을 줄기차게 주장했는지', 그 이유를 아냐며 넌지시 묻더군요. 동생은 그들이 "한우기반 붕괴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값싸고 육질 좋은 쇠고기를 먹이기 위해서가 아닌, 싼 미국산 쇠고기를 이용해 한우 기반을 붕괴시켜 미국산 쇠고기만을 먹는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밀, 면화는 이미 붕괴되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언젠가는 한우 기반도 붕괴되겠지요. 쇠고기와 쌀 완전개방은 우리나라 농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8일, 정부가 발표한 것은 단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 아니라, '전체 농업 붕괴 시나리오'입니다.

이명박 정부에게 묻고 싶다... 대책은 갖고 있나?

이명박 정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먼 훗날 우리 농업 붕괴가 현실화되었을 때 우리 농민의 생존권, 나아가 대한민국의 식량 주권은 어떻게 지킬 건가요. 그에 대한 대책은 가지고 있긴 한가요?

소값이 10% 이상 떨어지고, 사료값이 50%나 올랐음에도 동생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땀 흘리고, 노력합니다. 여기에 정부가 지원해주고, 대책을 세워준다면 한우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농민들은 결코 한우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그:#미국산 쇠고기,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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