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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무마을의 당산제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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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삼월 보름, 당무마을에 아침이 밝았다. 날은 화창하다. 연일 이어진 여름날씨 탓에 고야나무를 비롯해 이팝나무까지 꽃을 활짝 피웠다. 아침 시간 마을 사람들은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정영수씨 집 근처의 계곡으로 모였다. 그들이 아침부터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일년에 한 번 있는 마을 당제를 지내기 위함이었다.

계곡물을 받아 만든 작은 연못에서는 송어가 사람들이 지나가는 중에도 펄쩍펄쩍 뛰었다. 고야나무 아래 평상에선 이우영씨가 돼지고기를 썰고 있고, 그 옆에는 물이 펄펄 끓는 솥이 올려져 있었다. 이우영씨의 손에 잘려가간 돼지고기가 대형 솥으로 들어가는 시간 당제에 필요한 물품들이 도착했다.

이종만씨가 소지를 태우고 있다. "돈 많이 벌고 노총각 장가들게 해주세요."
▲ 소지. 이종만씨가 소지를 태우고 있다. "돈 많이 벌고 노총각 장가들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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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무마을 당제 날은 마을 잔치입니다

당무마을은 행정구역상 홍천군 화촌면 군업1리에 속해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당무마을은 너른 농토가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경계를 탐하지 않고 자족하며 살아간다. 현재 당무마을의 가구수는 18가구. 전주 이씨가 세를 이루고 사는 마을이다.

오전 10시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공작산의 한 골짜기인 두렁골로 올랐다. 마을에서 당산까지 이르는 시간은 30여분. 당제 제관을 맡고 있는 이종만씨에게 당제 참관 허락을 받고 그들을 따라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고기를 어깨에 메고 오르니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있었다.

제관이 도착하자 그들은 계곡 옆의 산자락을 파기 시작했다. 흙을 걷어내자 단지 하나가 나타났다. 산 중에 무슨 단지냐고 물으니 당제에 쓰일 막걸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 제관이 맛을 보면서 "올해 막걸리 맛이 괜찮네요 "하자 막걸리를 준비한 병에 담기 시작한다. 막걸리를 언제 어떻게 담그냐고 물었다.

"당제 날이 잡히면 막걸리를 담가요. 올해는 스무하루 째 되는 날 개봉을 했습니다."
"당제날이 정해진 것은 아닌가요?"
"예, 마을 회의에서 결정을 하는데 길일을 잡아 당제를 올리는 것이지요."
"오늘이 길일이라는 말인가요?"
"가장 좋은 길일은 해와 달이 만나는 날인데, 오늘은 나무와 물이 만나는 날입니다. 그것도 길일인 것이지요."

나무와 물이 만나는 날인 음력 보름. 양력으로는 사월 스무날이다. 마침 휴일이라 대처에 나가 사는 사람들도 시간을 내 당제에 참석했다. 막걸리를 담는 시간 계곡에서는 당제에 쓰일 밥을 짓고 있었다. 맑은 계곡물로 지은 밥과 손수 빚은 막걸리를 올려 한 해의 풍년과 액을 막는단다.

종이에 마을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 촛불. 종이에 마을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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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제를 지내기 위해 담근 막걸리.
▲ 막걸리. 당제를 지내기 위해 담근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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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못간 노총각 부디 장가들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제를 올리는 곳은 산자락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돌로 쌓아 만든 소박한 제단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가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단 근처에 흔히 만날 수 있는 큰 당산나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제단의 위치가 왜 이곳으로 정해졌는가에 대해 물었다.

"옛날 이 산에 큰 불이 났는데 신기하게도 이곳만 불 타지 않았다고 해요.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다 제단을 만들고 당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엔 이만한 곳도 없겠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이종만씨가 검은 두루마기로 갈아 입고 제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단에 올린 것은 돼지고기 삶은 것과 계곡물, 막걸리, 밥이었다. 절을 하고 난 이종만씨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미리 준비한 소지를 태우며 마을 사람 각자의 행운과 복을 빌었다. 그날 이종만씨가 태운 소지는 서른 한 장.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과 객지에 나가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된 숫자이다.

"이종수씨 소지요. 올해는 하는 일 잘 되고 농사가 풍년들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영수씨 소지요. 올해도 건강하게 해주고 장가들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종만씨는 소지를 한 장씩 태울 때마다 그들이 소원하고 있는 것을 빌었다.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에게는 장가 들기를 빌었고, 아이가 없는 집에는 자식을 빌었다. 사업을 하는 가정은 사업 번창을 빌었고, 집을 몇 년 째 짓고 있는 가정에는 집이 어서 완성되길 빌어 주었다.
   
당제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계곡에 앉아 음복을 했다. 올해 3년째 제관을 맡았다는 이종만씨는 당제가 끝나고서야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당제 날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하기에 이종만씨는 한 달 가까이 상가집은 물론이고 작은 미물 하나 함부로 건들 수 없었다.

음식을 가지고 산을 오르고 있는 마을 사람.
▲ 음식. 음식을 가지고 산을 오르고 있는 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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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씨가 돼지고기를 썰고 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일이란다.
▲ 잔치준비. 이우영씨가 돼지고기를 썰고 있다. 새벽 5시부터 시작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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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방이 타던 말 움직이지 않아 제를 지낸 것이 당제의 시작

농사일을 하는 이가 살생을 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농촌에 살아 본 이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당제 날까지는 부부 관계까지 금해야 하는 것이 제관인지라 이종만씨는 봄만 되면 한 달씩 독수공방을 해야 한다며 허허 웃었다. 막걸리 잔을 비워내는 이종만씨에게 "당제는 언제부터 지냈나요?" 하고 물었다.

"당제 역사는 천년도 넘어요. 고구려 때 나당 연합군 총관이었던 소정방이 고구려를 치기 위해 이 마을을 지나가는데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요. 말이 움직이지 않으니 전쟁도 할 수 없었겠지요. 이런 저런 방법을 써도 말이 움직이지 않자 제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말이 이 마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더라는 겁니다. 말 때문에 마을이 전쟁에서 살아 남은 거죠.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당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1300년도 훨씬 넘지요." 
"그 오랜 세월동안 당제를 지냈다면 대단한 가치가 있는데요.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도 크겠어요."

"계속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고려 때부터는 3년에 한 번씩 당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엔 당제를 올리지도 못했어요. 일본놈들이 당제를 지내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해방 후 30년이 지날 때까지 당제를 지내지 않았어요. 그렇게 잊혀진 것을 17년 전부터 명맥을 잇기 시작한 것이지요."

당무마을이라는 지명에 대해 물으니 '당나라 무장'이 피해갔다고 하여 '당무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당제를 지낸 마을 사람들은 두렁골을 내려와 마을 중간에 우뚝 솟은 당산으로 갔다. 당제를 한 곳에서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두 군데에서 지내는데 그 이유는 '남신'과 '여신'을 함께 모시기 때문이란다.

제관인 이종만씨가 당제를 올리고 있다.
▲ 당제 지내는 모습. 제관인 이종만씨가 당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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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당무마을 당제, '남신'과 '여신' 따로 모셔

공작산 두렁골에 있는 당제는 '남신'을 모시는 것이고 당산은 '여신'을 모시고 제를 올리는 것으로 방법은 같다. 이종만씨와 마을 사람들이 당산에 올라 여신께 제를 끝내고 내려온 시간은 낮 12시. 그 시간 정영수씨 집 앞에서는 음식준비가 한창이었다. 당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인네들은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과일을 씻었다. 걷기도 힘든 어르신들은 그늘 아래 모여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올해는 날이 참 좋아."
"당제 날을 잘 잡은 것 같구먼."
"그러게 말여, 올해 우리마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걸."

말자리에 끼어 어르신들에게 마을 자랑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랑일 것은 없지만, 이 마을 사람은 다 순하게 착해. 남의 것을 내 것인양 욕심부리지도 않아. 그게 최고지뭐. 그러니 마을이 늘 화목해."

어르신의 말이 맞는 듯 싶었다.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한 사람씩은 '똠방'이 있게 마련이지만 당무마을에선 그런 이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신다 해서 주정을 하는 이도 없고 객기를 부리는 이도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당제는 지내는 날은 잔치날이기도 하다.
▲ 잔치. 마을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당제는 지내는 날은 잔치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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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옥수수 맛있다며 놀러오라는 마을 사람들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시래기국으로 점심을 먹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홍천의 명산인 공작산을 주산으로 하여 형성된 당무마을은 봄을 맞아 꽃들이 만발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은 맑고 찼으며 다슬기와 민물고기들이 친구처럼 놀고 있었다.

"햐아, 민물고기 매운탕 어때요?"

함께한 일행이 개울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당제 날 살생해도 되는 거여?"
"당제가 무사히 끝났으니 괜찮아요."

모처럼 있는 일인 듯 싶어 천렵을 하기로 했다. 인간이란 본디 천렵과 수렵으로 살아왔으니 천성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우영씨 댁에 있던 족대를 챙겨들고 개울로 갔다. 한 시간 가까이 개울을 첨벙거리니 민물고기가 한 공기 정도 찼다.

그것을 들고 이우영씨 댁으로 갔다. 이우영씨 부인이 매운탕을 끓여나오자 당제에 참여했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자연스럽게 술 자리가 이어졌지만 남은 술은 소주 달랑 2병뿐. 목을 축이듯 마셔야 했다. 
  
"이 동네 찰옥수수가 맛이 참 좋으니 여름에 놀러와요. 아참, 자두도 많이 열려요."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땅이 인심을 만들어 낸다고 했던가. 터 좋은 곳에 사는 이들이라 그런지 마음씀이 곱고 아름답다.

당무마을을 떠난 것은 오후 6시. 마을 사람들과 헤어지는데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처음 만나 하루 낮을 보냈을 뿐인데 헤어짐이 아쉬운 것은 어인 일일까. 그 사이 그들과 정이 들었단 말인가. 당무마을이 벌써 그리워진다.

당무마을 당제에서 여신을 모시고 있는 당산.
▲ 당산. 당무마을 당제에서 여신을 모시고 있는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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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당산제, #당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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