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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 지역에서 역사왜곡이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평화를 지향하는 공통된 역사인식을 위해 한일시민이 함께 걸으며 배우고 느끼는 평화순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오키나와-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오키나와는 한일 양국에서 '평화의 섬'이라 불리지만 화려한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쟁과 폭력의 상처는 아직도 소외당하고 있는 땅이다. 이번 답사는 외부에서 강요된 해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마을 공동체가 찢겨져 버린 강정마을, 태평양 전쟁 말기 군사요새화되었던 전운이 감도는 역사 현장,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쓰러져갔던 4·3의 아픈 땅을 더듬어가는 여정으로 진행되었다. 세 편의 글로 나누어 그 여정을 함께 들여다 보려 한다. - <기자 주>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동원하여 파놓은 동굴. 전쟁이 조금만 늦게 끝났더라면 제주도 역시 오키나와와 같이 옥처럼 부서지는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송악산 기슭의 해안절벽 아래 일제가 조선인을 강제동원하여 파놓은 동굴. 전쟁이 조금만 늦게 끝났더라면 제주도 역시 오키나와와 같이 옥처럼 부서지는 운명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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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은 괌과 필리핀이 차례로 함락되고 강요된 옥쇄의 땅 오키나와마저 무너지자 패전이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어떻게든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종결짓고자 했다. 그리하여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막기 위한 최후의 저항기지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미군의 진격 가능 루트를 총 7개로 설정하고 결1호, 결2호 … 결7호의 작전명을 부여했던 것인데, 그중 특히 강조되었던 것이 결7호 작전이다. 미군이 제주도를 통해 일본으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는 시나리오 위에 짜여진 절체절명의 본토방어작전, 거기에 제주섬의 운명을 일본이 쥐락펴락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제주도에서는 병력이 증가되고 해안과 산악지대를 막론, 전역이 요새화되었다. 현재까지도 그때 만든 군사시설을 모두 파악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있는 대표적인 요새로는 성산 일출봉, 대정 송악산, 서귀포 삼매봉, 한경면 가마오름, 제주시 사라봉과 별도봉, 어승생오름 등을 들 수 있다. 대략 80여 곳에서 700여 개의 동굴진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 한일 평화순례단은 제주도에 머무는 기간 동안, 모슬포 일대의 일제시대 오무라 해군항공대 알뜨르 비행장 터와 격납고 및 군수시설을 견학했다. 또 송악산 기슭 해안절벽 아래 일본군이 군수품과 자살공격 어뢰정을 숨겨두기 위해 파놓은 인공동굴도 찾아 보았다.

"본토 결전 대비한 최대 규모 진지 일본 아닌 제주도에 있었다"

모슬포는 제주도 내에서도 가장 바람이 세고 땅이 척박하여 살기 힘든 고장이다. 모슬포는 모슬봉을 기준으로 웃뜨르, 알뜨르로 구분한다. 알뜨르는 제주도 말로 '아래 들판'을 뜻하는데, 일본 제국주의가 이곳에 비행장을 비롯한 거대한 규모의 각종 군사시설을 구축한 것은 남태평양을 바라보고 중국을 향하기도 하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알뜨르 비행장은 중국 난징· 상하이 폭격을 위한 기지로 활용되었는데, 난징공습은 36회, 연 600기, 투하폭탄 총계가 300톤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패전색이 짙어진 1944년 이후에는 일본토 사수를 위한 전진거점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 내 일제군사전적지를 탐사하여 연재하고 있는 <한라일보>는 "일제가 본토결전에 대비하기 위해 구축한 진지 중 최대 규모의 진지가 일본토도 아닌 제주섬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비극적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썼다.

 모슬포 알뜨르 일대의 일제 격납고. 19기가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둥근 돔 모양의 형체가 격납고이다.
 모슬포 알뜨르 일대의 일제 격납고. 19기가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둥근 돔 모양의 형체가 격납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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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일대의 일제 군사전적지를 안내해준 김창후 '4·3연구소' 상임이사는 알뜨르가 넓은 평야지대인 까닭에 대해 "원래 제주도에는 평평한 땅이 없는데 알뜨르 비행장을 만들기 위해 각 지역별로 할당해서 주민을 강제동원해 수십만 평을 평평하게 조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후 상임이사의 안내를 따라 알뜨르 일대의 격납고와 군사시설을 눈으로 확인한 일본 순례단은 "오키나와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과 너무 비슷하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제주도와 오키나와가 어떤 아픔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격납고는 이 일대 들판 곳곳에 20기가 분포해 있었는데 이 가운데 19기는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격납고 위쪽으로는 미군의 공습이나 폭격으로부터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흙을 쌓아 위장했었다고 한다.

가이텐 자살특공대와 강제동원으로 죽을 고생한 제주도민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 인근에는 지하진지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알뜨르비행장· 송악산 어뢰정기지와 함께 핵심을 이루는 일제강점기 군사시설이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관심부족과 잘못된 관리로 인하여 천장이 무너지거나 왜곡· 훼손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 지하진지의 규모는 일제가 일본천황과 정부기관을 피신시키기 위해 구축했던 본토의 마츠시로 대본영 지하시설보다 큰 규모라고 한다.

 오오무라 공군 부대가 있었던 알뜨르 비행장 터. 지금은 공군이 비상활주로로 사용하고 있다.
 오오무라 공군 부대가 있었던 알뜨르 비행장 터. 지금은 공군이 비상활주로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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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 지하벙커 내부의 모습.
 알뜨르 지하벙커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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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섯알오름에는 깊게 패인 웅덩이가 하나 있는데 일제 당시 도내 최대의 탄약고터였다. 당초에는 지하에 건설되었으나 일제가 패주하면서 폭파시켜 커다란 웅덩이가 된 곳인데, 4·3의 광풍과 한국전쟁 시기 예비검속법으로 인하여 무고한 양민이 수백 명 총살당해 이곳에 던져졌다. 이외에도 모슬포 일대에는 용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군사시설이 많이 남아 있다. 제주도민에게는 살아있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왜곡· 훼손되고 있어 올바른 보존이 시급해 보였다.

현재 공군의 비상활주로로 사용되고 있는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까지 답사하며, 전쟁의 참화를 역사의 숨결 속에서 느낀 순례단은 송악산 기슭의 해안동굴로 향했다. 이곳은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 '대장금' 홍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 산방산이 보이고 해안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어서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해안가에 파헤쳐진 인공 동굴은 아름다운 눈으로만 볼 수 없는 역사를 품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을 상징하는 이미지 가운데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를 많이 떠올리는데, 제주도에는 바다를 질주하는 '가이텐 자살 특공대'가 있었다. 이곳 송악산의 동굴뿐 아니라 제주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해안가 인공동굴은 자살특공대의 흔적을 지닌 유적지이다.

동굴 속에는'인간어뢰'와 폭탄을 잔뜩 실은 소형 보트가 숨어 있다가 미군 함대가 나타나면 그대로 바다를 향해 질주, 미군함대에 부딪혀 자폭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제주에서 미군 상륙 저지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 해안가 전역에 동굴을 파느라고 강제로 동원하였던 당시 조선인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민직업능력신고령'에 규정된 동원 노무자의 나이는 본래 16세부터 50세까지였지만, 마을별로 인원이 할당되면 칠순 노인도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삽과 곡괭이만으로 동굴을 팠던 조선인에게는 굶주림과 매질 등 학대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군의 몇 차례 공습을 받아 해공군이 괴멸 상태에 이르자 일본군은 중산간지역에서 장기유격전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소년대, 소녀대, 부녀대, 청년대, 장년대로 나누어 제주도민까지 각종 군사훈련에 동원했다고 한다.

 지하벙커 안에서 바라본 바깥 모습.
 지하벙커 안에서 바라본 바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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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노동자의 고통은 이곳 해안동굴뿐 아니라 평화동에 자리한 평화박물관 및 가마오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마오름에는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고 생명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육공간으로서 수많은 수학여행단이 방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순례단이 평화박물관을 찾았던 월요일 오전에도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전시관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박물관 마당 한 켠에는 '세계 평화의 섬' 표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며 발표했던 선언문도 돌비에 새기고 있었다. 이번 평화순례 참가자 중 캐나다에서 온 군축활동가 로버트 넌씨는 영어로 새겨진 평화의 섬 선언문 한 구절 한 구절을 유심히 읽어내려 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三無) 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다음 사항을 실천한다.

-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임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세계평화의 섬 구현을 차질 없이 실행한다.
-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해 제주도를 국가간 자유로운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는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한다.
- 제주도에서 평화 증진 및 확산을 위한 평화 실천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계기로 세계평화 증진에 앞장 설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한다.  <2005년 1월 27일 대통령 노무현>”

 평화박물관. 가마오름을 역사,인권,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설박물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선언문을 옮겨놓은 기념비가 눈에 띈다.
 평화박물관. 가마오름을 역사,인권,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설박물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선언문을 옮겨놓은 기념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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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가마오름은 태평양 전쟁 말기 일제군사시설의 구축 과정과 절체절명의 전운이 감돌았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며, 인권과 평화의 교육 현장으로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오래도록 방치해왔기 때문에 개인이 발굴하고 자료를 수집해 사립박물관을 세운 것인데, 사립으로 운영하기에는 가마오름 지하갱도의 보존관리 및 역사적인 사실의 정확한 고증 등 여러 면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아시아 민중이 협력해 평화헌법 9조 개악과 전쟁 막아야"

평화순례단은 이밖에도 조천읍의 항일기념관을 방문해 제주3대 항일독립운동에 대하여 자료를 관람하고, 국토 최남단 마라도를 순례하며 기원정사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전시회 제목처럼 '저항과 평화의 바다'에 새겨진 평화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일제가 남기고 간 군사전적지를 돌아본 이토 간지 씨는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적인 정책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했다.

"22만 명의 도민이 살고 있던 제주도에 7만 명이나 되는 일본군이 주둔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제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있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생생한 역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일본은 아직도 아시아 각 나라 사람들에게 사죄나 전후 보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쪽으로 개헌하려 한다. 일본 땅에서 미군기지를 강화하고 미군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수행할 때도 국민의 세금으로 전쟁을 떠받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납치 사건을 최대한 이용하여 일본이 과거에 범했던 조선인 강제징용 문제는 은폐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시아의 민중들이 직접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사람들끼리 협력하여 다시는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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