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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 전경.
 중악단 전경.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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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

비 내리는 신원사 경내를 둘러본 다음 신원사 동쪽에 있는 중악단으로 향한다. 중악단은 신원사에 가까이 있어 부속건물처럼 보이지만 신원사와는 완전히 별개의 건물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조선의 왕실은 이곳에다 중악단을 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성계와 건국이념의 코드를 맞췄던 무학대사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이성계가 건축을 명했다는 얘기가 있다. 효종 때 폐지되었던 것을 명성황후의 명에 의해 고종 16년(1879)에 다시 지은 후 중악단이라 불렀다 한다.

중악단이라 불렀으니 당연히 상악단과 하악단이 있었을 터. 그러나 묘향산에 있었던 상악단과 지리산에 두었던 하악단은 없어지고 현재는 중악단만 남아 있다.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은 유적이다.

엄숙함과 건물간의 위계를 느끼게 하는 공간 구성

대문간채.
 대문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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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전에서 바라본 중문간채와 대문간채.
 본전에서 바라본 중문간채와 대문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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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은 대문간채·중문간채· 중악단 본전 순으로 배치돼 있다. 일직선으로 된 축과 좌우대칭에 의한 건물 배치를 통해 단묘 건축으로서의 엄숙함과 건물 간의 위계를 느끼게 지은 것이다.

대문간채는 좌우에 툇마루가 딸린 방을 하나씩 거느린 'ㄷ' 자형 건물이다. 대문간채 정면으로 난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나온다. 이 작은 마당을 지나서 수문장이 그려진 중문간채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당당한 풍채로 우뚝 선 중악단과 마주하게 된다.

비가 내리는 바람에 시간에 따른 햇빛의 변화에 따라 그림자가 길고 짧아지는 공간감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중악단 본전.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다.
 중악단 본전.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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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 천장 가구. 종보보다 약간 아래에 우물천장을 설치했다.
 중악단 천장 가구. 종보보다 약간 아래에 우물천장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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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벽에 모신 산신도와 위패.
 후면벽에 모신 산신도와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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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1846∼1917)가 쓴 것이다. 글씨가 아주 장중하다.

중문간채와 본전 사이에는 안마당이 있다. 이 마당은 대문간채와 중문간채 사이의 앞마당보다 크다. 이처럼 중악단은 마당까지도 크기를 달리할 만큼 단묘(壇廟) 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악단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궁궐 건축에 준해서 지었기 때문에 화려하고 위엄있게 보이는 데다 건립 당시에 칠했던 단청이 거의 지워져 아주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긴다.

건물 안에는 불단같이 단을 만들고 그 위에 산신도와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명성황후도 이곳에 와서 친히 기도를 올린 적이 있다고 전한다.

중문간채의 화방벽.
 중문간채의 화방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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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담장 무늬.
 아름다운 담장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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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하나는 중문간채 화방벽과 바깥을 둘러싼 꽃담의 아름다움이다.

중문간채 화방벽의 무늬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석파정의 화방벽의 윗부분과 비슷하다. 건물 바깥을 두른 돌각담은 전돌을 이용해 상하 두 줄의 수평띠를 둘렀으며 맨 위에는 지붕을 덮었다.

담벼락에 새겨넣은 곡선을 이용한 갖가지 무늬와 길상무늬가 매우 아름답다. 에전에 보았던 해남 대흥사 승병장 사당의 담장 바깥면과 형태가 거의 같은 것 같다. 이렇게 중악단은 담장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옛 장인들의 혼이 깃든 건물이다.

담장 옆에는 아직도 지지 않은 동백꽃이 처연하게 비를 맞고 섰다. 그래서 동백을 구태여 춘백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산림자원의 수호를 위한 행사로 승화되었으면

측면에서 버라본 지붕 합각과 잡상.
 측면에서 버라본 지붕 합각과 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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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단 동쪽에서 바라본 천황봉
 중악단 동쪽에서 바라본 천황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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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멀찌감치 비켜서서 중악단을 바라본다. 신원사가 계룡산 연천봉을 주산으로 삼은 건축이지만, 중악단은 계룡산 정상인 천왕봉을 주산으로 삼은 건축이다.

지붕을 바라보면 창덕궁이나 경복궁의 지붕처럼 좌우에 잡상을 배치돼 있다. 궁궐의 안위를 지키는 수호신인 잡상은 궁궐이나 궁궐과 관련 있는 건축에만 허용했던 장식이다. 잡상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서유기의 인물들과 토신들로 이뤄졌다. 잡상의 개수는 건물의 지위에 따라 그 수가 다르다. 중악단 지붕의 잡상은 7개다. 창덕궁 돈화문 지붕의 것과 개수가 같다.

옆에서 바라본 중악단은 쓸쓸하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정기적으로 사람을 보내거나 재물을 보내 재를 지냈다고 하지만, 이젠 그런 의식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용(用)은 없이 체(體)만 남은 건물이란 얼마나 안쓰러운 것인가. 신원사에서 불교식으로 지내는 산신제가 있긴 하지만.

최근 들어 중악단 산신제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애써 고증을 거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산신은 자연과 환경 수호에 앞장서는 환경단체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복원' 되는 산신제는 날로 황폐해 가는 산림자원의 수호를 위한 행사로 승화되는 것이어야 마땅하다. 이벤트성 행사나 좀 색다른 볼거리에 불과한 '복원'이라면 아마 계룡산 산신도 노하지 않을까.


태그:#계룡산 , #중악단 ,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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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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