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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북녘 땅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
▲ 민통선에 처놓은 철조망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북녘 땅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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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보라
맘 밝은 시인의 안방
막걸리에 세상살이 쓸어담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네
날새워 밤새워 속울음 우는
시인의 애타는 사랑
남북의 형제들 끌어안고
만주로 달리고픈 희망 하나
반도를 보라
시인이 왜 울고 있는지
미 압제 중러일에 피 송송
이 세월 걷어야 웃지 않겠나

-이소리, '시인' 모두

남북 분단의 현주소 민통선. 그 쓰라린 한이 서린 땅에도 봄이 오는가.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입에 물고 남녘에서 올라오는 봄은 이제 민통선 애기봉을 마악 휘돌아 노오란 산수유꽃을 피워내고 있다. 철조망 너머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줄기에도 봄은 어김없이 다가와 북쪽으로 북쪽으로 거슬러 오르고 있다.   

북한이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을 확대하기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부장관의 발언 때문에 지난달 26일 남북교류협력사무소 남측 요원들을 3일 내에 전원 철수시켰지만 봄은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민통선 곳곳에 진보랏빛 제비꽃을 피우며,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지 말라 속삭이는 듯하다.

이제 봄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4월 1일)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이 대통령에게 "역도"라는 험악한 말을 내뱉었지만 손끝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남북 곳곳에 연분홍빛 진달래를 피우고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시인 김소월의 시처럼.

봄은 북한 당국이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조달청 직원 1명까지 몽땅 추방(10일)했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통선 곳곳에 노오란 민들레를 피우며 이렇게 속삭인다. '왜 가만 있는 동생을 때려 울리느냐고'. '왜 애써 악수를 나눈 형제들끼리 또 분란을 일으키느냐고'.  

민통선 안은 대부분 비포장길이다
▲ 민통선 강변으로 가는 길 민통선 안은 대부분 비포장길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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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훌쩍 넘기고 도착한 김포 월곶 민통선 교회

지난달 29일(토) 밤 10시, 울산에서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온 후배 최경호(47)와 함께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에서 민통선 평화교회를 꾸리고 있는 이적(51, 시인) 목사를 만나러 갔다. 때 마침 교회에 이주형, 유명선 시인이 일요일 아침 민통선의 봄을 만나기 위해 먼저 와 있다고 했다.

옳거니. 나그네와 후배는 어둠살을 가르며 김포 월곶으로 쌩 하니 달리기 시작했다. 꽃비가 촉촉이 내리는 김포의 봄밤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언뜻 언뜻 차량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꽃비 내리는 김포의 들녘은 고즈넉했다. 캄캄한 들녘 저만치 누군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디로 들어가야 되요?"
"김포대교를 따라 오다가 김포대학을 지나 애기봉이란 팻말이 보이면 좌회전해서 100m쯤 오면 십자가가 보일 거요. 그게 바로 우리 교회요. 내가 나가 있을 게요."

나그네가 민통선 평화교회에 도착한 시각은 밤 12시 30분께. 교회 3층 안방에는 이미 이주형, 유명선 시인뿐만 아니라 수원에서 술도가를 운영하고 있는 이수원씨까지 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일행들은 밤을 새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이른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골아 떨어졌다.  

무덤가에 퍼질고 앉아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
▲ 시인 이주형(좌)과 후배 최경호 무덤가에 퍼질고 앉아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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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저 철조망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시인과 무덤가의 철조망 시인은 저 철조망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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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철조망이 걷힐 날은 언제쯤일까

아침 10시. 일행들은 교회 아래 있는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쇠머리국밥으로 떼운 뒤 이적 목사의 차량을 타고 민통선으로 향한다. 이 목사의 차를 타고 가야 검문소를 별탈없이 지나 민통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일반인이 민통선 안에 들어가려면 3~4일 전에 출입신고를 한 뒤 허가를 얻어야 한다)

검문소를 지나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노오란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비포장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자 철조망 너머 북녘 땅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철조망이 없었을 때만 하더라도 강(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 이쪽 사람들과 강 저쪽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배를 타고 오가곤 했다고 한다.
  
"여기가 북한 땅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지요."
"근데 저 봉긋한 무덤들은 누구의 무덤일까요?"
"이 쪽 저 쪽 강을 건너 친척집에 다니러 오가다가 한 순간에 적이 되어버린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실향민의 무덤이겠지요. 그러니까 북한 땅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이곳에 묻어달라고 했겠지요."
"어서 철조망이 걷혀야 할 텐데…"

아프다. 철조망에 두눈과 가슴을 찔린 것처럼 아프다. 이주형 시인은 봉긋한 무덤 앞에 퍼질러 앉고, 후배 최경호는 멍하니 서서 철조망 너머 북한 땅을 넋 나간 듯 바라보고 있다. 시인 유명선은 고개를 숙인 채 무덤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유 시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막걸리가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랬다면 해질녘까지 무덤가에 퍼질고 앉아 철조망 너머 북녘 땅을 오래오래 바라볼 수 있으련만. 

민통선 철책가 무덤가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 시인
▲ 시인 유명선 민통선 철책가 무덤가를 거닐며 생각에 잠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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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에 핀 진보랏빛 제비꽃
▲ 제비꽃 민통선 안에 핀 진보랏빛 제비꽃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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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것 같지 않은 민통선 안에도 꽃은 피어난다

"야아~ 이게 무슨 꽃이야? 제비꽃 아냐?"
"맞아."
"민통선 안에도 꽃이 피기는 피네."
"올 봄에는 남북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철조망을 다 녹여버렸으면 좋겠어."

무덤가 주변 곳곳에는 낙엽과 마른 풀을 헤집고 진보랏빛 제비꽃이 활짝 피어나 있다. 제비꽃 곁에는 연초록빛 새순들이 뾰쪽뾰쪽 솟아오르고 있다. 저만치 노오란 양지꽃도 예쁘게 피어나 있다. 민통선 안 산비탈 곳곳에도 연분홍빛 진달래가 새악시 수줍은 볼처럼 곱게 피어나고 있다.

민통선 안에도 꽃은 이리도 아름답게 피어나건만 남북을 갈라놓은 저 철조망은 회갑을 넘긴 지금까지도 끄떡없이 제 자리만 지키고 있다. 봄은 한반도 곳곳에 초록색을 칠하며 꽃으로 활짝 피어나건만 철조망 너머 저 강은 '남의 일'이라는 듯 무심코 흐르고 있다. 아, 분단 민족의 아픔이여, 분단 조국의 슬픔이여.

"언제쯤이면 남북이 통일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글쎄. 지금 정부의 대북관으로 봐서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같은 민족끼리 왜 못 잡아먹어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우리 같은 글쟁이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시를 열심히 써서 통일을 앞당기게 해야지."

민통선 안 산기슭에도 진달래가 피었다
▲ 진달래 민통선 안 산기슭에도 진달래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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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가는 길/ 서울-김포-김포대교 방면-김포대학-군하리 애기봉 팻말-검문소-민통선



태그:#민통선, #평화교회, #철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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