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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큰 언니도 간대요.”

“그래? 바쁘다면서.”

“압력을 넣었지요.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그래? 우리 막내가 최고네.”

 

얼마 전부터 집사람이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딸 셋 모두를 데리고 봄나들이를 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큰 아이가 시간이 있으면 둘째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막내가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속이 상하니, 큰 아이를 빼고 가기로 하였었다. 그런데 큰아이도 가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가족 나들이의 목적지는 섬진강이었다. 구례를 지나 화개장터와 하동에 이르는 벚꽃 삼백리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출발하면서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동차가 밀릴 것이라는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 가족이 함께하는 나들이였기에 강행하기로 하였다.

 

전주를 출발하여 남원으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축복이나 하는 듯이,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맑았다. 더군다나 어렵게 전 가족이 함께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섯 식구가 시간을 맞추기가 그렇게 어렵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타당한 이유를 앞세우는 아이들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세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지, 실감하게 된다.

 

남원을 지나 순천으로 향하는 도로에 진입하였다. 터널을 통과하게 되니, 노란 산수유가 반갑게 맞이해준다. 달리고 있는 도로 양 옆으로 봄 풍광이 기분을 즐겁게 해준다. 넘치는 봄기운을 시선 닿는 곳마다 확인할 수가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뒤에 앉은 아이들은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있었다.

 

“귀가 시끄럽죠?”

“아니야. 재미있는 데 뭐.”

“그저 딸들이라면 너그럽기만 하지.”

“내가 언제 그랬다고?”

 

집사람의 질투 어린 말이다. 시끄러운 것을 참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는 아내였다. 딸 셋이서 뒤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쉴 사이 없이 지껄이고 있어 참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 한번 치라고 말하였는데, 그렇지 않으니 심통이 난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말에는 흐뭇함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자동차는 밀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하동으로 향하는 도로 양 옆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이 막히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였다. 자동차가 밀리지 않아 질주하게 된다면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틈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나 있는 도로가 모두 자동차로 꽉 차버렸다. 하동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물론이고 다리를 건너 광양으로 향하는 도로도 마찬가지였다. 남도 삼백리는 자동차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벚꽃의 화려함에 개나리의 산뜻함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어찌나 환상적인지 입이 닫아 지지 않았다.

 

“꽃비다. 꽃비!”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소리였다. 하늘에서는 하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무더기로. 맑은 섬진강에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냥 비가 아니라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내려오는 꽃잎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선녀님들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아빠. 정말 예뻐요.”

“여기 오길 정말 잘했어요.”

“자동차가 밀리는데?”

“그래서 더 좋잖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니,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으니,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면서 배우고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아이들이 벚꽃을 바라보면서 신바람을 내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미운 짓을 하면서 속을 썩이는 일을 하던 기억은 어디론가 다 사라진다. 그냥 좋기만 하다.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바라보는 마음에는 부정적인 관점은 하나도 없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니,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섬진강에 날리는 꽃비가 장관을 이룬다.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꽃비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즐거워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있기에 꽃들도 우뚝하고, 아이들이 행복해하고 있기에 봄이 돋보이는 것이다.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 속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였지만, 갖고 나들이는 즐거웠다. 섬진강에 내리는 꽃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집사람의 마음에도 흡족함이 넘치고 있었다. 행복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 웃음 속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봄나들이였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섬진강에서(2008.4.6)


태그:#섬진강, #꽃비, #가족, #행복, #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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