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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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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도 안 해보고 무조건 나가라니, 이게 무슨 쿠데타 상황도 아니고."

김윤수(72)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다. 한동안 잠잠했던 '좌파 적출' 작업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에 대한 유인촌 장관의 퇴진 압박이 검찰 수사로 이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 수사를 서울세관에 의뢰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통관을 거치지 않은' 밀수품을 구입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현재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세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관세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3년 전인 2005년, '변기' 작품으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여행가방 속의 상자>를 구입한 과정을 문제 삼았다. 마르셀 뒤샹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작가다.

2일자 <내일신문>에 따르면, 문광부의 수사의뢰를 받은 서울세관은 지난 3월 20일 미술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에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퇴진 압박에 이어 수사 압박을 받고 있는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서 만났다.

김 관장은 "통관 문제로 김종민 전 문화부 장관에게 이미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며, "그걸 또 다시 들고 나온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5공 전두환 정부 때, 6공 노태우 정부 때인) 그 전에도 정치하고 상관없이 민간인이 국립미술관 관장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도 임기가 보장됐는데 나가라 그러냐?"면서 "이게 선진화냐? 이 정부가 내건 선진화가 이런 거냐?"고 격분했다.

이어서 김 관장은 "단순히 '좌파'다, '나가라' 이런 이야기인데 불쾌하다, 그건 모욕적인 일"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좌파냐?"고 반문했다.

또 통관 과정뿐만 아니라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밀수품이란 의혹에 대해서도 김 관장은 일축했다. 지난 2월, 뒤샹의 법적 상속인이자 뒤샹의 작품을 관리하는 뒤샹의 양딸에게 '감정'을 받았다는 것. 그는 2005년 이 작품 구입 과정도 밝혔다. 김 관장이 제안하긴 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추천위원회 추천을 받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심의까지 받은 뒤 심의위원회 최종 결정으로 작품을 구매했다는 것이다.

1일 오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유인촌 문과체육관광부 장관이 현관에서 기다리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1일 오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유인촌 문과체육관광부 장관이 현관에서 기다리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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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관장은 2005년에 뒤샹의 작품을 구입하게 도와준 '닥터 나우만'의 신뢰성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도 일축했다. 김 관장은 "현재 영국의 유명한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뒤샹, 만 레이, 피카비야' 전시를 크게 하고 있다"면서 "초일류급 필자들이 그 전시회 카탈로그에 글을 쓰는데, 거기 두 번째로 닥터 나우만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김윤수 관장은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임명돼, 2006년 연임, 2008년 현재 3년 임기를 1년 반가량 남기고 있다. 김 관장은 미술평론가로 서울대 미학과 석사, 이화여대 전임강사, 영남대 회화과 교수, 서울미술관 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편 마르셀 뒤샹의 작품 구입과 관련, 지난해 국무조정실에서 미술관에 대한 공직기강 감사를 실시했고, 문화부 감사에서도 기관 경고가 취해진 바 있다.

다음은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유인촌 장관, 앞에선 '잘해보자' 더니 ..."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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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수사 의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전혀 안 했다. 신문 보고 알았다. 깜짝 놀랐다. 그럼 사전에 '감사'를 했을 때, 자료 가지고 확인해야지. 그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이런다.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  뒤샹 작품이 뭐가 문제가 되는 건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작품이 진품이냐 아니냐는 것이고, 두번째는 세관에 신고도 안한 작품이 어떻게 들어왔느냐는 것이다.

진품 여부에 대해선 우리 나름대로 밝혔다. 올해 2월에, 이거에 대해 정말 감정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두자고 했다. 제대로 감정할 사람 누구겠냐? 그 사람이 프랑스 산단 걸 알았다. 자클린 마티스 모니라고 뒤샹의 양딸이다. 화가 마티스의 손녀인데, 그 엄마가 이 딸을 데리고 뒤샹과 재혼했다. 1931년생인 할머니다. 그 할머니가 그걸 다 봤다. 학예실장이 뒤샹의 그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를 갖고 갔다. 그리고 '감정'을 받았다. 뒤샹의 양딸이 다 인정해줬다. 그러며 그랬다. '이건 대단히 귀한 거고, 뒤샹의 다른 '가방' 시리즈에 없는 게 남아있다. 소중히 보관해라.'

- 국내에 들어올 때 왜 세관에 신고를 안 했나?
"2005년 그 작품 구매할 때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심의위원들이 (이 작품을 보러) 다 미국에 갈 수 없으니, 작품을 여기(국내)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품인지 심의할 필요성 있으니 작품을 보내 달라, 그래서 그쪽(작품 거래상)에서 들고 들어왔다. 바깥에서 우리가 산 작품이면 당연히 신고하고 가져온다. 하지만 이건 사기 전에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심의위원들이 보고 결정한다고 했지, 산단 약속은 안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작품 거래상)이 들고 왔으니 신고해도 그 사람들이 했어야 했다.

우리가 갖고 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다. 난 규정 이런 거 잘 몰랐고, 물품 규정 담당한 사람도 잘 몰랐다. 또 심의위원들이 다 보고 나서 사기로 했다. 그런데 다시 갖고 나가고 그럼 비용 드니까 그냥 구입하는 걸로 해버렸다. 그게 실책이라면 실책이다. 그것 때문에 먼저 전 김종민 문화부 장관 경고를 받았고."

-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뒤샹의 이 작품을 62만3000달러에 구입한 가격도 문제가 됐다. 이만한 가격이 아니란 소리도 있다. 문제가 된 이 작품의 가격을 확인할 방법이 없나?
"대부분 진품으로 확인되면 더 이상 따지고 할 필요가 없다. 진품 자체가 중요한 거다. 또 뒤샹의 가방 시리즈 가운데 최상급인 A시리즈가 경매회사에서 최고 120만달러, 최저 80만 달러 경매 기록이 있다. 그걸 기준으로 해서 <여행가방속의 상자>를 우리가 60만 달러에 샀다.  또 올해가 뒤샹 서거 40주년이라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뒤샹 작품이 여럿 들어가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체육관광부에 하는 업무보고가 4월 1일에 있었다. 그때 유인촌 장관이 이런 이야기 전혀 안 했나?

"전혀! 장관이 묻지도 않았고, 일체 언급도 없었다."

- 업무 보고 때 문제가 되거나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제 삼은 게 있나?
"특별히 문제 삼은 건 없다. 미술관 오기 전 보고 다 받았다고 했다. 또 '우리가 여러 이야기 듣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하겠다'고 그랬다."

-유인촌 장관이 김윤수 관장 이름까지 거론하며 자진 사퇴하라 말했다. 이번 '업무 보고' 땐 돌려서라도 그 비슷한 언급은 안 했나?
"전혀 말한 바 없다. 기자들 많이 와서 이런 질문이 쇄도했다. 그때 어떤 기자가 '그럼 이제 화해하신 겁니까?' 물었다. 그러니까 장관 대답이, "우리가 언제 싸움했나요? 싸움한 적 없어요. 앞으로 잘해보잔 거예요.' 그랬다."

- 장관 이야기를 듣고 사퇴 압박 문제는 다 정리됐다, 일단락 됐다고 생각했겠다.
"'아. 생각 달리하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세관에 수사를 의뢰하고) 그런 이야기 일체 없었다."

"임기 보장됐는데 나가라? 이게 선진화냐?"

- 그때도 사퇴할 생각 없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없나?
"미국에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 바뀌었다고 해서 미술관 관장도 바뀌나? 그런 거 없다. 우리하고 색깔이 달라 음악감독 바꾼다? 그런 이야긴 들어본 적 없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은 마찬가지다. 전문 분야니까. 문화 쪽은 특수한 분야다. 전문 분야, 문화 분야 이런 건 독립성,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성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전문성 가지고 오래 갈 수 있다. 정치적으로 사람 바꾸고 그러면 언제 문화 분야 독립성 가지고 일할 사람 누가 있나? 이렇게 휘둘러서?"

- 2003년 시작해, 2006년 연임돼서 현재 1년 반 정도 임기가 남았다. 남은 임기는 마치시겠단 건가?
"앞에 정부 때 오광수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했다. 관장을 하던 동안에 '참여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오광수 물러나라 할 거 아니냐?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임기 마치게 뒀다. 남은 임기 마치고 제가 됐다. 공모를 해서 됐다. 관리들이 국립 미술관 관장을 하다 처음 민간인이 들어선 게 1980년 전두환 5공화국 들어서다. 처음 민간 전문가로 이경성 관장을 영입했다. 7년 가까이 꽤 오래했다. 그 다음 서울대 교수하던 분이 관장을 했다. 그땐 지명제였다. 노태우 정부 말년쯤 해서다. 그때도 여권하고 관계없는 그런 사람들이 전부 (관장을) 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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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도 코드나 색깔 상관없이 전문가가 관장을 했단 소리인가?
"미술계가 반발하고 문제 제기하는 게 그 점이다. 그 전에 정치하고 상관없이 민간인이 국립미술관 관장을 했는데 이제 와서, 그것도 임기 보장됐는데 '나가라' 그러냐? 이 정권이 어찌 된 거냐 하는 거다. 심지어 이게 선진화냐? 이 정부가 내건 선진화가 이런 거냐? 그런 거다."

- 이 정부가 왜 이리 '사퇴' 압력을 가한다고 보나?
"정치적인 거다. 뭐 뻔한 거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나. 정치적 과정이다. 자기들 정권 장악했으니…. 그런데 불쾌한 게 뭐냐면, 노무현 정부 때 사람들 전부 좌파라고 색칠해 '우리가 코드가 다르니 나가라'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불쾌하다."

- 정부가 바뀌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이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나?
"미술관 독자적으로 중장기적으로 계획 세워서 한다. 외국과 문화 교류 하거나 작품 교환한다 하는데, 그게 금방 제안해 되는 게 아니다. 그게 2, 3년 뒤 이뤄진다. 관장도 그런 걸 하는 거다. 작품도 갖고 오고.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네트 메사제란 설치 작가, 프랑스 유명 작가 전시회를 하고 있다. 이게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 관장하고 계속 교섭해 이뤄진 거다. 2년, 3년 걸렸다. 이런 전문 분야를 맡아서 하는 게 일정 임기 가지고 하는 일들이다. 3년 임기? 종신으로 하는데도 있다. 관장이 자기가 그만두겠다고 하거나, 큰 문제가 생겼거나 그런 게 없으면 그 사람 계속하게 돼있다."

유인촌 장관은 민주주의자 아닌가?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30여개의 산하기관장들 중 철학·이념·개성이 분명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며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킨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진 사퇴하지 않는 게,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는데 어떤가?
"색깔 칠해놓고 하는 발언이다. 단순히 '좌파다. 나가라.' 이런 이야기 아니냐. 그게 불쾌한 거다. 모욕적인 이야기다. 좌파라니. 한 시대 민주화 운동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럼 다 좌파냐?

굳이 이야기한다면, 나는 민주주의자고 공화주의자다. 나는 미술전문가다. 그럼 유인촌 장관은 민주주의자도 아니고 공화주의자도 아닌가?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그럼 철학이 어찌 다르고 뭐가 다른지, 와서 정말 일을 같이 하면서 이게 달라 안 되겠다고 말을 하든지. 그런데 같이 일도 안 해보고 무조건 나가라. 이게 무슨 쿠데타 상황도 아니고…."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내 나이가 70이 넘었다. 나름대로 바르게 살아왔다. 유신시대, 5공 시대 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대학에서 쫓겨나서 박정희 시대 4년, 5공 들어 4년 반을 해직당해 고생한 사람이다. 나중에 복직돼 퇴임할 때 보니까, 나는 근무기간이 20년이 안 돼 연금 해당자가 안 되더라. 그런 걸 보면서 참…. 나 스스로 이 역사 흐름에 동참해왔고,  이리저리 쓸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이것저것 할 만큼 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리 된다는 건, 모욕적인 일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정권 관계없이 임기가 만료되면 교체되는 거지. 정권하고 같이 가는 게 맞는 거냐? 법을 존중해주면 된다. 최소한! 그래야 법치국가고 선진 사회를 향하는 거다. 정말 말만 '선진, 선진' 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줘야 이게 선진사회다."

문화부, "검찰 국립현대미술관 조사는 기관장 퇴진 압력 아니다"

4월2일자 <한국일보>와 <내일신문>의 "국립현대미술관 수사 참여정부 기관장 퇴진 압박 논란" 기사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가 4월2일 보도자료를 내 기관장 퇴진 압력 의혹을 부인했다. 관세청과 검찰의 국립현대미술관 조사와 현 정부의 기관장 퇴진 압박은 무관하단 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4월 2일자 일부 언론에서 ‘검찰과 관세청이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 작품 구입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기관장 퇴진 압박용’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국민으로 하여금 오해의 소지를 야기"할 수 있다며,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구입 관련 조사는 작년부터 진행되어온 국무조정실 조사결과에 따른 것으로 기관장 퇴진압력 차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서 문화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05년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가방 속의 상자’를 구입한 것에 대해 2007년 5월 29일부터 국무조정실 특별조사반이 조사한 결과"라며, " 작품 통관과정이 불분명하고 작품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아서 문화부로 확인 후 조치토록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또 문화부는 "2007년 10월부터 조사하는 과정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명확한 소명을 하지 못하여"라며, "2008년 2월 1일 관세청에 미술품 통관절차의 확인 및 조사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태그:#김윤수, #유인촌, #기관장 사퇴 압박, #자진 사퇴, #코드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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