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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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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그리 오래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나이지만, '인연(因緣)'이란 말의 의미를 이해 할 만큼의 인생 경험은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개인적으로 '인연'이라는 말을 유달리 좋아하는 편이다. 아무리 스쳐 지나는 짧은 만남이라 할지라도 '인연'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은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정녕 인연이 있는 사람은 약속이 필요 없는 것 같다. 다시 만날 것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곳, 이란의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에서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커플인 필립과 비아뜨리스 부부를 또 다시 만났다. 이번으로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일곱 번째다. 비아뜨리스는 어리둥절해 하는 영아를 덥석 안으며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고, 한국에선 작은 키가 아니건만, 상대적으로 작은 영아는 비아뜨리스의 품 안에 쏙 안겨 버리고 말았다.

필립, 비아뜨리스 커플과 국이랑 영아
▲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필립, 비아뜨리스 커플과 국이랑 영아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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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저편에서 나타난 검은 점 두 개

우리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네팔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안 건 인도의 북부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자전거 여행자 '칼'을 통해서였다. 한 쌍의 스위스인 커플이 인도의 라자스탄(Rajasthan) 지방에서 자전거로 여행 중이라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한 달 후, 우린 칼과 함께 인도-네팔 자전거여행을 계획하게 됐고, 인도와 네팔의 서부 국경 지역에서 이 스위스인 커플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중간에 일이 생겨 이 커플과는 약 일 주일 정도의 여정 차이로 만날 수가 없었고, 이후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잊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말 우연히, 국이의 무릎 통증 때문에 머물러야 했던 작은 시골 마을 라마히(Lamahi)에서 우린 극적으로 만났다. 그전에 우리는 일정을 늦출 수 없었던 칼과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합류했던 캐나다 여성(자전거 여행자) MC를 떠나 보냈다. 그후, 밀린 빨래와 일기를 쓰며 보내던 어느날 저녁, 숙소 앞에 내놓은 평상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낯선 여행자들이 나타났다.

"저게 뭐지? 저기, 저거 자전거 아냐?"
"글쎄, 어디 말하는 거야?"
"그러게. 두 대 같은데……."

안개 자욱한 저편에서 나타난 검은 점 두개가 거리를 좁혀 오며 자전거를 탄 여행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인가?"
"정말, 되게 크네."

이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저녁을 함께 했고, 차를 마시며 서로의 여행 경험을 공유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여유 있던 우리와는 달리, 이들 커플은 비교적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포카라(Pokhara)와 카트만두(Katmandu)에서 트레킹 약속이 잡혀 있었고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으니 마음이 급했을 법도 하다. 그리고 우린 다음날 아침, 유달리 안개가 짙은 날이었건만, 새벽 같이 라마히를 떠났다.  

네팔 서부의 풍경.
 네팔 서부의 풍경.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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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저 커플 따라가기 힘드네"

그림 같은 풍경의 네팔 서부 지역. 자욱한 안개 때문인지 분위기는 더욱 신비스러웠다. 그런데 이들의 페이스에 맞춰 달리다 보니, 자전거 여행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여유와 낭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들 스위스 커플은 그날 하루 목표로 한 거리가 있었기에 줄기차게 페달을 밟아댔다. 그들을 쫓아가기가 힘겨웠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행운을 빌어주며 우리 페이스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단지, 빨리 가는 게 목표라면, 버스를 타면 된다"가 자전거 여행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얼마를 달려간 걸까. 우리와 한참 멀어져 있을 거라 여겼던 이들 스위스 커플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이들이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남편 필립의 위에 문제가 생겨 약으로 술을 먹는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가 만난 최초의 통 큰 서양인으로 기억된다. 길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서양인과 일본인 여행자들은 너무나 꼼꼼하게 손익을 따졌다. 때문에 이들의 인상은 깊이 남았다. 비록 적은 비용이긴 했지만, 우리가 마신 차 값까지 한꺼번에 얘기 없이 계산해 버리는 그런 식이었다.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우리는 다시 출발했고, 오후 내내 우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몇 번의 우연한 만남을 더 가졌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목표로 한 마지막 지점에 도달한 후에는 40~50km 더 떨어진 부타왈이라는 곳을 향해 자전거를 밀고 있는 이들 스위스 커플에게 작별을 고해야 했다. 아쉬웠다. 우리는 그게 그들과의 마지막 만남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틀 후, 도착한 부타왈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 우린 다시 그들과 마주쳤다. 필립의 몸 상태가 안 좋아서 하루 더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우린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지 인연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리곤  다시 안녕. 우리는 서로의 길에 행운을 빌어주며 또 헤어졌다. 네팔 다음의 목적지는 각자가 달랐다. 우린 인도로 다시 돌아갈 것이었고,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으로 간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 후, 우리가 인도의 수도 델리(Delhi)에서 이란 비자 신청을 위해 이란대사관에 갔을 때, 이들 부부와 다시 마주쳤다. 우리는 비자를 신청하러 왔고, 이들은 비자를 찾으러 왔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이튿날 이들은 다시 떠난다고 했다.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우리는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의 동쪽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이들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과 타지키스탄(Tadzhikistan)을 거쳐 이란의 북부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때부터는 그냥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거다.

붙었다, 떨어졌다, 다시 붙었다... "우리는 자석?" 

그리고 역시나 두 달 후, 우린 이곳 이스파한에서 약속이나 한 듯 다시 만났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이번에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필립의 말을 빌면, 우린 한마디로 자석 같았다. 붙었다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붙는……. 자전거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들과 같은 인연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싶다. 자전거 하나로 국적을 넘고 장벽을 넘어 '우리는 하나'라는 강한 연대감이 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초대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을 초대하기까지 5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변변한 집도 없었지만 우리의 게스트 하우스 방이 우리의 집이었다. 그리고 우리 방에 초대되어 놀러왔던 필립과 비아뜨리스 부부는 집들이를 하듯, 매번 케이크며 이란의 전통 스위트 같은 선물을 챙겨왔다.

우리는 한 번도 한국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는 이들 부부를 위해 미리 담근 김치와 수제비, 그리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여행 중 아이를 가진 비아뜨리스는 연신 "멈출 수 없어"를 연발하며 과식을 했다. 우린 마치 오랜 지인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다.

8.5인치 스크린의 미니 노트북과 외장형 DVD 롬, 그리고 제법 빵빵한 외장형 스피커로 간이 극장을 만들었더니 기절할 듯 놀란다(지금이야 미니 노트북이 보편화됐지만 2003~2004년만 하더라도 흔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유럽인에겐 더더욱). 노트북 보호차원에서 외장형 대용량 노트북 배터리로 현지 전기를 걸러서 노트북으로 보내는 걸 보고 더 기절할 듯 놀란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경우인 것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 스위스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인터넷 강국' 한국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다. 역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은 한국을 알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여행 중 모아놓은 각국의 영화 CD들을 좁은 방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함께 봤고 서로의 나라와 삶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얘기했다. 함께 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비록 여행자의 신분이었지만, 우리는 손님을 치르는 주인 된 입장에서, 그들은 초대된 손님으로서 우리 모두 행복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책상 다리를 하고 앉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들인지라, 분명 바닥에 앉아 장시간을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큰 키에 그 긴 다리를 여기저기 틈새에 뻗고서 말이다.

지금은 헤어져도 또 다시 만나겠죠?

이들을 만나고 난 후 유럽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유럽인이 말하는 유럽의 현실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동경?)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로 인해 유럽을 향해 페달을 밟고 있던 우리에겐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여행 중 비아뜨리스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들어섰다. 아이를 가지고도 계속 여행을 하고 있는 비아뜨리스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소 무모한 결정은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둘은 정색을 하며 검증된 의사와 상담 후 얻은 결론이라고 말했다(그리고 최근 받은 이메일과 사진을 통해 이들이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된 것도 알았다. 그때 비아뜨리스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아이는 이미 4살이란다. 그 아이는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세상을 두루 돌아본 셈이다).

3일 후 우린 다시 헤어졌다. 그들의 루트는 우리와 달라 먼저 터키로 떠났고, 우리는 이란 북쪽의 카비르 사막으로 떠날 것이다. 이들은 스위스에 오면 꼭 자기 집에 머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보름도 좋고, 한 달도 좋다고.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다는 이들은 시골 사람들처럼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사귄 스위스 사람들. 이들은 스위스의 민간 외교단이었고, 우리는 한국의 민간 외교단이었다. 이들을 통해 우리는 스위스를 알게 됐고 스위스와 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깰 수 있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다시 만날 것을 의심치 않는다. 필립의 말대로 마치 우린 자석 같으니까 말이다.

아래의 네팔 사진들은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이란 편)' 이후 연재될
'인도-네팔' 편에서도 중첩될 예정입니다.

네팔 자전거 여행 중
 네팔 자전거 여행 중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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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자전거 여행 중
 네팔 자전거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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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자전거 여행 중
 네팔 자전거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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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자전거 여행 중
 네팔 자전거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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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태그:#국이랑영아, #자전거여행, #자전거여행자, #네팔,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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