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언젠가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뜬금없이 그가 내게 물었다. "요새도 시를 쓰느냐?"라고. 나로선 아주 뜻밖의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째서 그는 내가 시를 쓴다고 생각했을까. 나 자신 시를 쓴 적도 없을뿐더러 누군가에게 시를 쓴다고 말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십 년 단위로나 한 번 정도 만나는 그에겐 나에 대한 정보가 있을 리 없다. 물론 나야 그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갖고 있지만 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뜬다.

"야, 시 쓴 거 있으면 한 번 갖고 와라. 노래로 만들어 줄게."

영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냅다 소릴 지르다시피 말했다.

"야, 요새도 시를 쓰는 미친놈이 있냐?"

함께 술을 마시던 주위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 내 껄껄 웃었다. 사실 내 말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일찍이 시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렸다.

쉽지만, 절대 천박하지는 않게 시를 쓰는 시인
그러나 어떤 이는 그렇게 죽어버린 시의 시체를 차마 흙속에 파묻지 못하고 있다. 행여나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과연 시는 살아날 것인가. 살아서 다시 우리 영혼의 양식이 돼 줄 것인가.

시를 사망 직전으로까지 내몬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비자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시의 생산자들의 무감각함과 오만함도 한 몫 거들었다는 생각이다. 문맥이 전혀 닿지 않는 두서없는 중얼거림, 턱없이 어려운 낱말, 억지로 이미지 끌어다 쓰기 등.

그러나 시의 생산자 중에서도 소비자와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시인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들의 그런 노력 덕분에 아직도 시가 땅에 묻히지 않은 것이리라. 안도현 시인이야말로 그런 시인 가운데 하나다. 그는 쉽지만 결코 천박하지 않은 시를 쓰는 시인이다.

안도현 시인이 올 1월 말에 펴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읽었다.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됨으로써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그대에게 가고 싶다>, <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뿐>,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등 여덟 권의 시집을 상자 한 바 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창비

관련사진보기


시로 쓴 추억의 레시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아홉 번째 시집이다. 3부로 나뉜 시집 속에 총 5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번 시집에선 음식에 대한 시편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수제비·무말랭이·물외냉국·닭개장·갱죽·안동식혜·국수·무밥·민어회·시락국·물메기탕·병어회와 깻잎·전어속젓·매생이국 등 숱한 음식이 등장한다. 가히 시로 쓴 레시피라 할 만하다. 시집의 첫 장을 열면 '공양'이라는 시가 마중물처럼 달려나와 반갑게 독자를 맞는다. 매우 함축적이면서 아름다운 시다.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 시 '공양' 전문

시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어느 선승이 화두라도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집 1부에 실린 시편들은 이렇게 시인이 터득한 삶의 비의를 노래한 시편들이 대부분이다. 2부에 들어가야 비로소 음식에 얽힌 추억을 본격적으로 노래한 시편들과 만날 수 있다. 음식에 얽힌 추억을 노래한 여러 시편 중에서 유독 내 가슴을 덥게 만드는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읊는 '무말랭이'란 시다.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어먹기 좋을 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꼬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 시 '무말랭이' 전문

음식이란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현재의 '나'는 누군가 만들어 준 음식으로 먹고살아서 여기에 이른 존재이다. 바꾸어 말하면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에 대한 추억이란 사실 누군가에게 빚진 기억이다.

시인처럼 나 역시 외할머니에게 그런 빚을 많이 졌다. 어머니가 아주 일찍 세상을 버리시는 바람에 남보다 훨씬 더 크게 빚을 졌다. 외가에 얽힌 추억과 관련된 시편으로는 '물외냉국'이라는 시가 한 편 더 있다.

나와 시인이 함께 추억을 공유한 시편들

나와 시인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도 있다. 시 '무밥'과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이 어릴 적에 함께 겪었던 추억을 노래한 시라면 '병어회와 깻잎' 같은 시는 어른이 된 이후에 겪는 추억을 노래한 시다.

무밥 한 그릇이
소반 위에 놓여 있다
소반이 적막하여서
무밥도 적막하여서
송송 채를 썬
흰 무의 무른 살에 스민
뜨거움도 적막하여서
무밥 옆에 댕그라니 놓인
양념간장 한 종지도
옛적에 젋은 외삼촌이
여자를 만난 것처럼
가난하게 적막하여서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시 '무밥' 전문

어릴 적 내가 가장 싫어했던 밥 종류가 바로 '무밥'이었다. 무의 물컹쿨컹하면서도 심심한 맛이 아주 싫었다. 오히려 꽁보리밥보다 더 진저리를 쳤다. 무밥은 그냥은 못 먹었다. 반드시 생채를 넣고 쓱쓱 비벼 먹어야 했다. 그토록 싫었던 무밥이나 꽁보리밥도 이젠 그리움이 되어 버렸을 만큼 숱한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고 시인처럼 양념간장에 무밥을 비빌 때 밥그릇이 내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못 되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병어회와 깻잎'이 펼쳐주는 세계는 아직도 사랑할 만한 풍경이다.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 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시 '병어회와 깻잎' 전문

좀 과장되게 말하면, 1970년대 내가 거치지 않은 군산의 선술집이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국물 있는 안주로는 콩나물국이나, 조기 찌개 등이 나왔고, 횟감으로는 병치회가 딸려 나왔다. 잘게 썰어 놓은 병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송송 썰어놓은 마늘·풋고추와 함께 싸 먹으면 아주 고소했다. 그렇다고 안주 값을 따로 받는 건 아니었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도 그토록 푸짐한 안주가 딸려 나왔으니 그것으로 한 끼 요기를 때워도 무방할 정도였다.

시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역시 음식에 대한 추억을 노래하긴 마찬가지지만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한마디 말에서 끄집어낸 시편이다.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 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 시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전문

우리 어렸을 적엔, 시인의 아버지뿐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처럼 그 누구도 "돼지고기를 사왔다."라고 말하는 어른은 없었다. 시인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라는 말이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다고 말한다. 왜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 시절엔 돼지고기 한 근 사는데도 아주 큰 맘 먹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어머니들이 생래적으로 터득했던 자본주의의 윤리

그렇게 고기를 끊어오면 아무렇게나 구워 먹는 게 아니다. 행여라도 고기를 먹지 못하는 이웃에게 냄새가 퍼져 나가기라도 하면 먹고 싶어 할까 봐 부엌문을 꼭꼭 걸어 잠근 채 고기를 구웠다. 물론 식구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 양이 많을 땐 당연히 이웃과 나눠 먹었지만.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 나가 좋을 거 없다"라고 말씀하셨던 건 시인의 어머니뿐 아니다. 우리 할머니 역시 그러셨다.

내가 생각할 때엔 거기에 막스 베버 따위가 설파한 자본주의 윤리보다 더 위대한 자본주의 윤리가 깃들어 있다. 구조적 모순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없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픈 자를 옆에 두고서 자랑하면서 먹어선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어머니들이 생래적으로 터득했던 자본주의의 윤리였다. 시인은 결코 추억을 풀어놓는 데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머니의 입을 통해서 넌지시 그런 교훈을 던져주고 싶었던가 보다.그런가 하면 '매생이국' 같은 시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라고 음식을 통해서 사랑의 경지까지 가늠해 보기도 한다.

시집 속엔 내가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을 노래한 시편들도 더러 끼어 있다. 경상도 토속 음식인 안동식혜·닭개장·예천 태평추·갱죽 등이 그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한 번쯤 맛보고 싶다.

요리에 대한 추억은 아니지만, 시 '기러기 알'이나 '눈 많이 온 날', '조문'이나 '오래된 발자국' , '검은 리본'. '식구'  같은 시에는 삶의 폐이소스가 쓸쓸하게 묻어나는 아름다운 시편들이다.

눈 많이 온 날 장수에서 겨우 비행기재 넘어온 김 선생이 말했다, 안 선생, 내 갤로퍼가 눈길에 토끼를 치었어요, 귀가 갑자기 토끼처럼 길쭉해진 안 선생이 김 선생을 따라 나섰다 비탈진 고갯길 눈 뒤집어쓴 마른 억새 밑둥치에 토끼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옆구리에 얼룩진 핏자국을 눈발이 슬슬 가려주고 있었다, 왼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있어야지, 하고 김 선생이 말하자, 안 선생이 고개를 흔들며, 자동차에게는 측면이지만 토끼한테는 정면이었겠지요, 하고 말했다 김 선생이 머리를 긁적였고, 그러자 하늘이 토끼털처럼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괜히 짠해졌고, 토끼를 풀숲에 다시 던지고는 허청허청 고개를 내려왔다 퇴근 무렵 서무실에서 토끼탕을 끓였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그날은 정말 눈이 많이 와서 안 선생도 소주가 싸하게 생각나던 참이었다

- 시 '눈 많이 온 날' 전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7년 11·12월호의 대담에서 안도현 시인은 자신이 음식 시편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음식이라는 것은 기본은 미각이지만 음식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이 필요하고, 후각도 필요하죠. 음식을 씹을 때는 청각도 필요합니다. 모든 감각의 총결집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욕망이 한데 엉켜 있지요.

시인은 시집 전편을 통해서 유년시절 아직 훼손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형상화한다. 시를 읽는 동안 추억이 따스하게 내 가슴을 데웠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그 음식들을 찾아 먹고 싶다, 라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혹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읽으려는 분들은 미리 밥을 몽땅 먹어두거나, 아니면 먹을 것을 잔뜩 앞에 둔 채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날름날름 까불던 바다가 오목거울로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곰소만으로 가을이 왔다 전어는 누가 잘라먹든 구워 먹든 상관하지 않고 몸을 다 내준 뒤에 쓰디쓴 눈송이만한 어둔 내장 한 송이를 남겨 놓으니 이것으로 담근 젓을 전어속젓이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이여, 사랑에 오랜 근신이 필요하듯이 젓갈 담근 지 석 달 후쯤 뜨거운 흰밥과 함께 먹으면 좋다

- 시 '전어속젓' 전문

덧붙이는 글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안도현/ 창작과비평사/ 2008년 1월/ 6000원



간절하게 참 철없이 -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안도현 지음, 창비(2008)


태그:#안도현 , #창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