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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곱다.”

  붉은 빛으로 우뚝하다. 지면에 딱 달라붙어 피어난 꽃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색깔이 선명하여 더욱 더 시선을 잡는다. 솜털이 난 이파리 사이에서 피어난 꽃이 세상을 새롭게 바꾸고 있었다. 한 송이가 아니다. 봄기운으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서 활짝 피어나 있다. 수줍은 듯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광대나물 꽃.

  꽃은 힘이다. 겨울을 극복한 결과이고 샘솟는 에너지다. 솟구치는 기운으로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연약해보이지만, 꽃을 보면 그 느낌이 달라진다. 봄의 정기를 확인할 수 있다. 넘치는 봄의 힘은 광대나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 모두에게 빠짐없이 전해져서 세상이 우뚝해지고 있다.

 

  꽃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다 보니, 다른 꽃들도 눈에 들어온다. 별꽃처럼 보이는 하얀 꽃도 마음에 들어온다. 앙증맞은 모습으로 피어난 꽃은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송이송이 다발로 피어나 있는 냉이 꽃도 피어나 있다. 꽃봉오리인 채로 있는 것도 있고 활짝 피어난 것도 있다.

 

  풀꽃들이 피어나 있는 위로는 산수유 꽃들이 만개해 있다. 노란 색깔로 물들여져 온통 노란 세상이다. 그 것에 취하다 보면 지표면에서 피어나 있는 꽃들은 무시되기 쉽다. 아니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산수유 꽃이 만발한 노란 우주에서 풀꽃의 존재는 미미한 것처럼 보인다.

 

  풀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산수유 꽃은 보이지 않는다. 눈높이를 나무에 맞추었을 때에는 온통 노란 세상이었다. 그런데 시선을 풀꽃으로 향하니, 이번에는 산수유 꽃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보이는 세상이 달라진다. 그 곳에 발을 내딛게 되면 다른 세상을 볼 수가 없게 된다.

 

  우주의 중심으로 나는 그래서 소중하다. 중심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있다면 부초가 되고 만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질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 우주가 중심이 되어 돌아가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가장자리는 언제나 중심의 종속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으로 내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산수유 꽃에 가려 보이지 않는 풀꽃이 되고 만다. 풀꽃이 우뚝해지는 것은 산수유의 노란 세상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중심을 바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흔들리게 되면 세상의 화려한 빛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구보다 무거운 존재가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그만큼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이다. 풀꽃이 산수유 꽃과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우주의 중심으로서 당당한 것이다. 나가 존재하기에 세상도 아름다워질 수 있으면 내가 우뚝해야 우주도 그 존재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산수유 꽃이 만들어내고 있는 노란 세상에서 붉은 빛으로 우뚝한 광대나물 꽃을 바라보면서 나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크기가 아무리 작고 볼품없이 보이는 것도 그 자체로서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풀꽃들도 봄의 정기를 받아서 활짝 꽃을 피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풀꽃 향에 취하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남 구례에서


태그:#풀꽃, #나,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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