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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보리밭에서 떠올린 옛 생각

 

지난 2월, 김제 근방을 여행하는 내내 내 머릿속을 사로잡은 건 끝없이 펼쳐진 보리밭과 옛친구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미 스물 몇 해 전에 불귀의 객이 되고만 고등학교 동창. 고향이 아마 김제 광활면, 아니면 청하면이었을 것이다. 김제 촌구석에서 메뚜기와 함께 논두렁을 타던 촌놈이 군산이라는 도시로 '유학'을 왔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와 한 반이 됐다. 첫인상이 늘 잠이 부족한 얼굴이었다. 게다가 성격마저 싱겁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 짓궂게 장난을 걸어도 그저 씩 한번 웃고 나면 그뿐 달리 대꾸가 없었다. 그런 친구가 내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점심때마다 벌어지는 도시락 검사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은 부족한 식량난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혼식을 장려했다. 말이 좋아서 장려지 그것은 숫제 강제였다. 먼저 음악 시간에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라는 가사를 가진 '꽁당 보리밥'이란 노래를 배우게 하는 것으로 '의식화'를 시켰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도시락 검사라는 희한한 짓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검사 결과, 보리밥이 80% 이상 섞이지 않은 도시락을 싸온 게 적발되기라도 하면 담임 선생에게 '뒈지게' 두 손바닥을 두들겨 맞아야 했다. 꽁보리밥 투성이 도시락을 싸오기에 진저리가 난 친구들은 꾀를 내었다. 겉에만 살짝 보리밥을 얹어놓고 속에는 순 쌀밥으로 채워 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들통이라도 나면 몇 배의 곤욕을 치러야 했지만,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험이었다. 요새 과일 장사들이 써먹는다는 이른바 '속박이'이라는 것도 그렇게 생겨난 건지 모른다.

 

어느 날 교련 시간에 '은폐'와 '엄폐'를 배웠다. 그때 우리들의 도시락 싸기는 은폐일까, 엄폐일까. 이런 교실 안 풍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순 꽁보리밥만 싸오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그 김제 친구였다. 보리밥에 대한 결코 물리지 않는 순정이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이다.

 

1학년 가을께부터, 나는 차츰 실존주의 철학에 빠져들고 있었다. "고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면서도 병이 아니다"라는 말로 고독에 대한 무책임한 처방전을 썼던 키에르케고르를 만났고, "신은 죽었다"라는 정보 아닌 확인 불가능한 첩보를 들려준 니체를 알게 되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난 이미 충실한 '니체교도'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친구 중엔 날 교회로 전도하려고 혈안인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는 또 '분식의 날'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날은 밥 대신 빵을 싸가야 했다. 본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나는 아예 빵을 싸가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 때가 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렁각시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내 책상 위에 수북이 빵을 쌓아놓은 뒤 사라지곤 했다.

 

우렁각시들의 대부분은 풋내나는 '할렐루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남보다 힘줄이 하나 더 있는 친구들이다. 결국 난 아직도 신의 사망 사실을 믿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을 계몽(?)한다는 명목으로 한 교회를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먼 훗날, 김아무개가 민자당에 입당하면서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라고 호언장담 했을 때, 난 내 영혼의 지적 재산권이 침해당하는 듯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건 명백한 표절이다.

 

교회를 나갔더니, 어럽쇼! 그 김제 친구가 벌써 터줏대감으로 터를 잡고 앉아서 '달고 오묘한' 말씀의 만나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첫날부터 그 말씀의 만나가 전혀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녀석이란 말을 듣기 싫어서 거의 2년 동안을 다녔다. '간다 간다 하면서 애기 셋 낳고 간다'던 옛말이 딱 맞아떨어진 경우라고나 할까.

 

 

그렇게 해서 난 김제 친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와 가정사를 놓고 얘기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우리 우정의 한계였다. 졸업 후 그는 전북대학교 사범대학으로 진학했다. 3학년이 되자, 그 친구가 학생군사교육단 (ROTC)에 지원했다는 소식을 풍편에 전해 들었다. 유신 치하에서 ROTC란 바보티시란 별칭으로 통했다. 왜 이 친구가 ROTC가 됐을까. 짧은 의문이 스쳐갔지만, 그뿐이었다.

 

그해 여름 방학 때, 누군가에게서 "그가 죽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높은 산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하강 훈련을 받다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영결식은 전북대 교문 앞에서 치러졌다고 한다. 영결식에 다녀왔다는 친구에게서 들으니, 가장 슬피 울던 사람은 그의 부모가 아니라 그의 누나였다고 한다. 왜 누나가 훨씬 더 슬퍼했던 것일까?

 

일찍이 '희생'의 무가치함을 깨닫다

 

그는 4남매 중 장남이었다고 한다. 비록 가난하긴 헀지만 아들 차등두지 않고 공평하게 가르친다면 4형제가 각기 중학교 정도는 졸업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형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누나는 어떻게든지 남동생만은 대학까지 가르쳐야겠다는 일념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공장으로 들어가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동생의 학비를 댔다. 그런 자신의 희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 그 애달픔이 오죽했으랴. 그의 누나는 울다가 나중엔 실신해 버렸다고 한다.

 

옛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곰곰히 생각하면, 지난 시절 우리나라 누이들의 희생이 오롯이 담긴 말이다. 그 시절에는 누나가 동생의 학비를 벌어 가르친다는 것은 미덕이 아니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보편적인 일에 지나지 않았다. 누군가 다른 이를 위해 거름이 된다는 것은 거룩하다. 그러나 그의 누나의 경우처럼 보람 없는 희생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한참 뒤에야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난 '희생'의 의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했다. 내 욕망을 포기하고 타 존재를 위해 거름이 된다는 행위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타인을 위한 희생이란 극단적 이기심에서 얼마나 멀리 비켜 서 있는가. 어쩌면 희생이란 자신의 작은 욕망을 폐기하는 대신 타인을 통해 더 큰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전략적 행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거름이 되어 타 존재를 키우는 삶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그마저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전 존재를 건 희생은 당사자에게 얼마나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인가를 생각할 따름이다. 한 존재의 희생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제아무리 크다 한들 그건 무가치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겐 너무 '개인'이 없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는 더 없이 냉소적인 목소리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한다. 생을 지나면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장한 삶인가.

 

재온이, 잘 있는가. 자네가 사는 시왕산에도 곧 봄이 온다든가. 나이드니, 이곳의 삶도 점점 적막해져 간다네. 자네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가자니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불렀던 단가 '추억'이 부표처럼 떠오르네. 그가 사랑했지만, 스물세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기생 김산호수를 그리며 만든 노래라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헌디혼은 어디로 행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던가/ 그리 쉽게 가려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무덤터에다 택실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님은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 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보리오 - 임방울의 단가 '추억' 일부

 

세상을 오래 사니, 이런 노래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나이가 됐다네. 이만 줄이겠네, 총총.


태그:#만경평야 ,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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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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