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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에페스에 있는 켈수스도서관은 역사를 통털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에서 보면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뒷면은 3층이다. 3층건물의 앞면을 2층으로 장식해 전면 전체가 빠짐없이 화려하게 장식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기둥 2개씩 짝을 이뤄 2층을 받치면 그 위에서 다시 2개씩의 기둥을 위로 구성했다. 이런 것이 모두 4개 있으니 기둥은 8개다.

앞면은 2층 전체는 3층의 도서관이다. 오른쪽 문은 아고라로 통하는 동문이다. 도서관이 저렇게 아름다워도 공부가 될지 걱정된다.
▲ 에세스의 켈수스 도서관 앞면은 2층 전체는 3층의 도서관이다. 오른쪽 문은 아고라로 통하는 동문이다. 도서관이 저렇게 아름다워도 공부가 될지 걱정된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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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뒷쪽에 벽을 만들고 짝을 이룬 2개의 기둥 벽면마다 조각상을 세웠다. 위로 쭉쭉 뻗은 기둥과 옆으로 연결하고 있는 2층과 지붕의 도리와 삼각형의 박공들이 적당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층 기둥이 2층 기둥보다 높고 굵어 전체적 상승감 속에서도 일정한 안정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3세기 경, 로마 제국의 전성기가 끝나고 퇴락의 길로 들어서는 시기에 지었단다. 어떤 책을 보관하고 있었고, 누구에게 개방되어 있었을까? 책만 읽었을까? 건물만 보아서는 단순히 책만 보관하고 열람하는 곳 같지는 않다. 도서관을 저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놓고 살아갔을 2000년 전 로마 사람들의 삶이 쉽게 와 닿지를 않는다. 도서관이 저렇게 아름다워서야 공부가 될지 걱정스럽다.

도서관 옆에 있는 문은 동쪽의 거대한 아고라로 들어가는 동문이란다. 도서관의 조금은 가늘고 높은 상승감에 의한 불안감을 줄이고 싶었는지, 낮고 듬직하다. 이 문은 도서관보다 훨씬 전에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 딸 율리아, 사위 아그리파를 위해 지었단다. 동문의 듬직한 모습이 옆에 있었기에 도서관을 저렇게 높고 화려하고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에페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도시 에페스의 방황을 중단시켰고, 이때부터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부인 비리아 에페스 박물관에 있는 조각상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도시 에페스의 방황을 중단시켰고, 이때부터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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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스가 가장 번영했던 시기는 아우구스투스가 황제가 된 이후 찾아온 로마의 안정기였다고 한다. 에페스에 남아 있는 수많은 도시의 건축물들이 이때 주로 세워졌다. 그래서 그런지 에페스 박물관에는 아우구스투스 가족의 조상물이 남아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 에페스

터키의 그리스 로마 유적 중에서 에페스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이 남아 있는 곳도 드물다. 그래서 터키 여행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 관광지로 에페스를 최고로 꼽는다. 에페스는 소아시아 혹은 이오니아 지역의 중심도시이기도 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활약하였다.

기원전 6세기 이 지역의 그리스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에 몰두했다. 물이라고도 했고, 4가지 원소라고도 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고 했고, 아낙사고라스는 무한으로 사고의 영역을 확대했다. 호메로스가 전쟁과 항해의 서사시에서 정리한 신의 계보를 무시했다. 이 지역의 자연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 기초는 자연과학적 인식이었다.

왼쪽 위는 아폴론, 오른쪽은 제우스, 아래 왼쪽은 아르테미스, 오른쪽은 예실의 신이다. 신들의 의지에 따라 인간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했고,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신관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왼쪽 위는 아폴론, 오른쪽은 제우스, 아래 왼쪽은 아르테미스, 오른쪽은 예실의 신이다. 신들의 의지에 따라 인간의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으로 설명했고,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신관이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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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빙자하거나 이용하는 허구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자연과학적 인식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들의 이론이 그리스 민주정의 기초가 되고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에페스로부터 가까운 곳에 밀레투스가 있는데, 철학자들은 밀레투스 출신이 많았고, 그래서 이들을 이오니아 학파 혹은 밀레투스 학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오니아 학파의 거두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바로 에페스 출신이었다. 그는 신들을 빗대면서 권력을 장악하고 재산을 모으는 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우주의 모든 움직임은 서로 원인이 있고 그 결과로 끊임없이 변해간다고 했다. 모든 것은 변화하는데, 변화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다라고 변화를 강조했다.

아름다운 로마 최전성기 유적들

그리스 시대를 지나 알렉산더의 정복으로 건설된 헬레니즘 시대에 에페스는 알렉산더의 부하였던 리시마코스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에페스는 항구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리시마코스는 도시를 계곡으로 이전해서 수많은 시설들을 건설했고, 로마시대에는 이런 시설들이 개축 보수되고 필요에 따라 더 생기면서 로마도시가 되어갔다.

아름다운 입구를 가진 신전이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청동으로 만든 황제상도 대단히 사실적이다. 로마의 최전성기 때의 황제다.
▲ 하드리아누스 신전과 하드리아누스 상 아름다운 입구를 가진 신전이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의 청동으로 만든 황제상도 대단히 사실적이다. 로마의 최전성기 때의 황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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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출입구에서 도서관으로 가는 중에 하드리아누스 신전도 대단히 멋들어진다. 2중의 문인데, 앞 문의 아치는 비어 있고, 뒷문의 아치는 메워 의미 있는 부조를 잔뜩 해넣었다.  앞의 열린 공간의 문을 거쳐 뒷문 네모진 문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문 좌우에 있는 섬세한 부조들은 아마도 복제품이고 원래 것은 에페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삼촌이었던 트리아누스 황제의 제위를 물려받았는데, 로마의 영토를 확장하고 부강하게 만들었던 대표적인 황제였다고 한다. 당시 황제는 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그래서 로마의 도시에는 신전과 동일한 수준의 황제 신전이 있었던 것이다.

분수대의 일부가남아 있다. 황제가 올 때면 앞의 물길에 포도주를 부어 흘러넘치게 했단다. 환영의 의미로 붉은 카펫을 까는 것은 여기서 유래했단다.
▲ 트리아누스 분수대와 트리아누스 황제 분수대의 일부가남아 있다. 황제가 올 때면 앞의 물길에 포도주를 부어 흘러넘치게 했단다. 환영의 의미로 붉은 카펫을 까는 것은 여기서 유래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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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제위 기간 동안 자신에게 제위를 물려준 트리아누스를 위한 기념분수대를 만들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바로 옆에 있다. 분수대는 전면의 짧은 기둥과 뒷면의 벽과 그 벽 위에 대리석 기둥과 지붕 하나만 남아 옛날 모습을 상상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앞쪽에 옆으로 물길이 나 있는데, 황제가 행차하는 날이면 그 물길에 포도주를 부어 흘러넘치게 한단다. 황제를 환영한다는 뜻인데, 이것이 붉은 카페의 시작이 되었단다. 하기야 이런 시골 구석에 로마 황제가 자주 올 리는 없고, 오는 경우에 황제의 호감을 사거나 원성을 듣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노예는 얼마든지 잡아 올 수 있고, 약탈물은 흘러넘쳤으니 말이다.

유곽까지 있는 생활 공간

인류 최초의 광고라나. 남자들을 꼬드기는 창녀들의 광고라는데, 영 믿기지 않는다. 아래 공동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 유곽 광고와 화장실 인류 최초의 광고라나. 남자들을 꼬드기는 창녀들의 광고라는데, 영 믿기지 않는다. 아래 공동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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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주변에는 부자들의 집이 많이 있다. 온천수로 도시에 공급되고 부자들의 집은 목욕탕이 딸린 화려한 집이었을 거다. 잔존하는 건물로만 보아서는 부자동네의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부자동네 맞은 편에는 부르텔이라는 유곽이 있었고, 그 쪽에는 공동화장실도 있다.

항구가 가까이 있어 뱃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유곽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항구로 나가는 길 바닥에 '사랑을 나누려면 유곽으로 오라'는 광고 문구가 새겨져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새긴 그림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발 그림만 해도 그렇다. 발이 향한 방향으로 오면 된다는 의미라고 하기도 하고, 발이 이것보다 큰 사람 즉 어른만 오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공동화장실의 모습도 재미있다. 대리석에 구멍을 뚫고 일을 볼 수 있게 했다. 한번에 46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단다. 아래에는 물이 흘러갔단다. 물이 흘러들어오는 입구가 가장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겨울에는 대리석이 매우 차, 일 보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부자들은 화장실 올 때 노예를 데리고 왔단다. 노예가 먼저 앉아 좌판을 데워 놓게 하기 위해서란다. 정말 한심하다. 노예를 데리고 다니지 말고 비데를 설치하면 되지. 쯧쯧.

고대로마 도시의 원형극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형극장이다. 기독교도를 맹수의 밥으로 희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 에페스의 원형극장 고대로마 도시의 원형극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원형극장이다. 기독교도를 맹수의 밥으로 희생시킨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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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로 나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거대한 원형극장이 나타난다. 아마 터키의 고대 로마도시에 수없이 많은 원형극장 중에서 수용규모가 가장 큰 극장일 것이다. 자그마치 2만4000명이나 수용할 수 있단다. 조그만 산 하나의 자락이 모두 원형극장이 되었다.

이 도시의 인구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길래 저렇게 큰 극장이 필요했을까? 드라마 공연뿐만이 아니라 검투사 시합과 맹수에 의한 기독교인 학살도 벌어졌다. 밖으로 나가는 좁은 길이 검투사나 기독교 신자들이 들어온 통로였다고 했다.

에페스는 기독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성모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스와서 살았고, 사도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성모마리아 교회도 있다. 당시는 기독교가 허용되지 않은 때라 사도 바울이 원형극장에 사람들을 비밀리에 모아놓고 포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왼쪽 고양이 양쪽 눈 색갈이 다르다. 오른쪽 고양이는 참새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 터키의 고양이들 왼쪽 고양이 양쪽 눈 색갈이 다르다. 오른쪽 고양이는 참새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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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스를 나와 점심을 먹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보챈다. 두 눈동자 다르다. '저걸 은밀히 서울까지만 살려서 데려가면 여행비가 빠지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터키에는 고양이가 참으로 많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발로 걷어차지 않고 귀여워하며 먹이를 준다. 고양이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한다.

내 옆에 앉은 또 다른 고양이는 참새를 잡겠다고 집중하고 있다. 무서운(?)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참새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찍을 수 없는 사진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개를 싫어하지 않고 먹을 걸 주는 것처럼 터키사람들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었다.

역사에 남길 이름을 위하여 방화를 하다니...

에페스 하면 또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아르테미스 신전이란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볼품없지만,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고대 어느 누군가 꼽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에 속했단다. 18m나 되는 거대한 기둥 127개로 신전을 받쳤다. 그 안에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처녀의 여신 아르테미스 신을 거대하게 세웠을 것이다.

원래 이 지역에는 키벨라라는 대모신 숭배 신앙이 강했다고 한다. 대모신 신앙이 그리스 신으로 대체되었고, 그것이 바로 아르테미스 여신이었다. 다산을 나타내려 했는지 수많은 젖가슴을 주렁주렁 단 아르테미스의 모습은 에페스 박물관에서 세 종류나 볼 수가 있다.

왼쪽 둘은 에페스 박물관에 있고, 오른쪽은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왼쪽 둘은 좀 징그럽고 오른쪽은 아름답다. 여신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 아르테미스 신상들 왼쪽 둘은 에페스 박물관에 있고, 오른쪽은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왼쪽 둘은 좀 징그럽고 오른쪽은 아름답다. 여신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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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스 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신상은 조금은 징그럽다. 젖가슴이 많다뿐이지 생김새도 완전 남자다. 신의 역할을 표현한답시고 뭔가를 잔뜩 새겨넣었다. 반면 안탈리아 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아름답다. 활과 화살을 지녔을 것으로 보이는 자태는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여인의 모습이다. 가끔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구체적 의미를 숨기고 아름다움으로 대신하는 것이 효과적일 경우가 많음을 여기서도 본다.

지금의 아르테미스 신전에는 불완전한 기둥 하나만이 덩그렇게 서 있어 황량하기 짝이 없다. 기원전 4세기 경에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기고 싶어한 어느 미치광이의 방화로 신전은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400년 후에 극동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줄 그들은 알았을 리가 없다.

에페스는 그리스 시대에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철학자들이 미신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한 곳이었다. 로마시대에는 정의와 진리를 세워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항쟁이 돋보인 곳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절대적 진리를 의미하는 신을 불합리한 우상으로 조작하여 세상의 권세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계속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1월에 터키를 15일동안 여행하였습니다. 그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태그:#에페스, #아르테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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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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